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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관복 Jan 14. 2024

아나스타샤 킴스키의 최후의 날

서산에 지는 해

소한이었지만 따스한 햇살이 그의 소나무와 돌비석, 그리고 그 밑의 겨울잔디를 애무하듯 비추고 있었고 정종 술 한 잔 같이 나눈 돗자리에 누워서 올려다본 하늘은 파 아란 동화 속의 고요한 바다 같았다.

줄을 지어 그와 이웃하고 있는 소나무들 중 단연 남편의 소나무가 가장 키가 컸고 사철 푸른 가지는 유난히 싱싱하고 억세 보였다.     


여보, 그곳에서 대장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햇살이 도탑고 푸른 하늘이 가없는 듯해도 북쪽의 송악산은 희뿌옇게 라도 보이지 않았다. 소한 1월 6일 남편의 64번째 생일이었다. 햇살이 따뜻하다고 하지만 소한 엄동설한에 그를 이 산등성이에 남기고 나와 아들은 서울로, 일상으로 향했다. 차 창밖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가장자리가 엷게 얼어있었고 벌써 서쪽하늘로 해는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갑자기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나스타샤 킴스키 최후의 날 피아노곡이 듣고 싶어졌다.

이 곡을 떠올리면 서산에 지는 해가 생각났고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면 이 곡이 생각나곤 했다.

아들의 피아노악보중 이 곡은 중국어로 "日薄西山情依依"라고 제목이 써져 있어서 나는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이 피아노곡을 항상 서산에 지는 해 곡이라고 말하곤 했다.

영어와 중국어의 이 같은 곡에 붙인 두 제목은 굳이 한글로 번역하지 않아도 그대로 영어로 말하고 중어로 말하면 같은 의미가 마음에 와닿는다.

생과 사의 경계를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비유하고 있는 듯해서 이 곡을 좋아했던가.     


남편이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가꾸고 내가 애정을 다해 쓸고 닦고 하던 시골집을 너렁청하게 그대로 두고 그와 내가 애용하던 가장집물들만 쏙 빼 가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다음날 남편의 다이어리들을 책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다가 어떤 페이지를 쑥 펼쳐보았다.  성미대로 빼곡히 매일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그의 사소한 이야기들을 스르르 흩어보다 한 곳에서 눈이 멈추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날에도 서산에 해가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머물렀던 선전의 호텔 1층에 있는 여행사에서 이미 제일 빠른 출국시간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는데 오후 10시 30분 비행기였다. 저녁식사를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와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 이렇게 우리 셋은 중국 선전의 어느 조용한 식당에 앉아있었다. 빨간 식탁보를 드리운 식탁에 우리 셋이 마주 앉아 식사를 주문하고 식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바로 그 짧으면서도 길었던 고통의 그 시간, 비로소 이별의 아픔이 가슴 한 구석으로 밀려들기 시작하더니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오늘 떠나면 언제 만나볼지 기약할 수 없는 길,  내 소중한 평양의 가족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이별의 아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낮은 소리로 외쳤다. 


우린 가요, 가야만 해요. 이미 어쩔 수가 없어요, 꼭 가야만 해요.     


선전공항 출국장, 홍콩으로 넘어가려고 섰던 그 심사장에서보다 더 가슴이 뛴다. 마치 내 온몸을 그 누군가가 집어삼키려는 듯한 그 순간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숨이 가빠서 말을 안 하려고 했다. 그냥 심사자의 얼굴만 바라본다. 내 여권 속에 아들의 인적사항이 함께 있어서 내 아들도 내 옆에 나란히 서있다. 다행히 아들은 담담한 표정이다. 역시 전산망에 잘 안 뜨는 모양,  심사시간이 길다 보통사람들보단, 언뜻 눈길을 옆줄에 서있던 남편에게 주었더니 여권을 내어 민지 몇 분 만에 심사가 끝나 앞으로 조금 나가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마치 여기서 나의 운명이 끝나 버린 것 같은 암담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 동안 웃음 띤 얼굴로 앞에 놓인 내 여권과 컴퓨터와 나와 아들을 번갈아 주시하던 심사원이 드디어 출국도장을 찍어준다. 출국심사대를 거쳐 나와 어떤 의자에 앉았는데 남편이 나의 어깨를 감싸며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한 15분간 그렇게 앉아있다 비행기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륙하는 순간 통곡을 참으며 울음을 삼켰다. 우리가 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는 선전을 떠나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며 캄캄한 밤하늘을 쉼 없이 날고 있었다. 평양에 언제 돌아갈지 기약할 수 없었던 그 밤 우리 세 식구를 태운 이 비행기는 그냥 그냥 자기 목적지를 향해 날아만 가고 있었다.  멀리 저 멀리 우리가 도착할 그 하늘아래선 또 어떤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의 다이어리들을 자기 자리로 차례로 넣어주고 겉옷을 입고 목도리를 두른 뒤 밖으로 나와 구립도서관옆길을 지나 그와 내가 자주 걷던 한강공원의 산책길을 걸으며 앞을 보며 말했다.      


여보 같이 가.     


그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혼자서 앞서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숨이 차게 빨리 걸었다. 산책길 도중 도중에 벤치가 놓여있고 지붕이 씌어진 쉼터가 있었는데 이쪽 쉼터엔 할머니들이, 저쪽 쉼터엔 할아버지들이 넘어가는 서쪽 해를 마주하고 앉아서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수런수런 조용히 대화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노인네들의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고 어떤 노인은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쉼터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내가 즐겨 걷던 산책로를 정신없이 걷다가 지는 햇볕을 쐬고 있는 노인들을 보면서 나도 서쪽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서 말했다.      


여보, 서산에 지는 해야, 당신도 보이지?     


시간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우리를 안고 18년이라는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 지금 이 한강변의 아늑한 산책길 위에 석양을 바라보는 노인들 옆에 세워놓았는데 옆에 그는 보이지 않는다.


2024년 1월 14일 일요일에 신관복 쓰다.

그를 닮은 내 손녀아기가 오늘로 벌써 128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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