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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여산 May 26. 2023

초대받지 못한 이유

유리글방 9기

나에게는 이상적인 결혼식이 있다. 비싼 호텔에서 하지 않아도 좋고, 생화 꽃장식이 없어도, 반짝이는 드레스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는 사람들만 참석해야 한다. 식장이 가득 차지 않더라도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주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고 싶다. 그럼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삼촌,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만 오는 조용한 결혼식이 될 것이다. 단출한 스몰웨딩이다. 스몰웨딩이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든다고 하긴 하지만,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딱히 아깝지 않은 돈일 테다.


“엄마. 나는 결혼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삼촌(아빠 동생) 빼고는 다른 친척들 아무도 안 왔으면 좋겠어.”


성대한 - 실은 한국사회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 결혼식을 티비로 보며 내가 말했다.


“이모들이랑 외삼촌들은 괜찮지?”

“싫어. 삼촌(아빠 동생)만. “


애초에 이모들이랑 외삼촌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엄마는 삼남 사녀 중 막내딸이다. 엄마에게는 이모들과 외삼촌들이 소중한 형제들이지만, 나에게는 그냥 엄마의 언니와 엄마의 오빠들일뿐이다.


“너 진짜 이기적이다.”


이기적인가, 나? 외가 쪽 친척들이 오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사촌 언니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큰 채로 둘러보는 결혼식은 내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엄마가 골라준 아동용 드레스를 입고 어른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던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보였다. 학생 신분이어도 결혼식이 허례허식이라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허례허식이라도, 결혼식은 본래 축하하기 위해 오는 자리 아닌가. 외가 친척들 사이에 앉아 보았던 언니의 결혼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본격적으로 재고 따지는 자리였다. 결혼식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평가 대상이었다. 언니가 살을 얼마나 뺐다, 드레스가 어떻다, 남편 직업이, 직장이, 예비 시부모가, 식장이, 식사가, 주차가, 등등등. 우리가 사촌언니랑 생판 남인 것도 아니고 나름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 있는 사람들인데 이렇게까지 ’축하‘가 없을 수가 있다니.


결혼식에서는 좀 다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 사실 ‘친척’이라는 이름 하에 대놓고 재단당하는 경험은 익숙하다. 나는 친척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남과 같은 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이니 딱히 생각 없이 말해도 되는 사이쯤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으나, 진짜 자기 자식처럼 소중하거나 사랑을 주는 대상은 아니었다. 차라리 남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이어도 못할 말을 가족끼리 하는 안부인사나 걱정이라는 명목으로 서슴없이 내뱉기 때문이다.


나는 장장 24년을 무쌍으로 버텼다. ‘버텼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대한민국에서 예쁘지 않은 무쌍으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난과 역경을 견뎌야 한다. 나는 내 눈에 만족한다는데 주변에서는 내가 내 눈에 불만족하기를 원했다. 특히 명절마다. “저는 지금 제 모습이 좋은데요.”라는 말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대한민국 명절 말고 또 언제 가능할까. ‘집안 어른’들이기 때문에, ‘손윗사람’이기 때문에 그 정도 평가는 ‘나를 생각해서 하는 걱정’이 되었다.


무쌍을 무슨 지조처럼 지키던 내가 쌍꺼풀 수술을 결심하게 된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단골 네일숍에 갔다가 네일숍 사장님이 곧 쌍꺼풀 수술을 한다고 말을 꺼냈다. 사장님이 쌍수할 계획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딱히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안 해도 되는데, 할 거면 취업 전에 하는 게 낫죠. 할 거면.”


당시 나는 임용고시에 1차부터 낙방해서 넉넉잡아 4~5개월가량이 비었던 백수였다. ‘취업 전’이라는 단어가 내 뇌리에 꽂혔다. 어쩌면 임용고시에 떨어진 게 쌍수를 위한 환상의 타이밍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취업하면 더 못하니까, 기왕 시간도 비었겠다 네일숍을 나오자마자 바로 성형후기 어플을 깔았다. 삼 일 동안 핸드폰만 붙잡고 괜찮아 보이는 병원들의 리스트를 뽑은 뒤, 그 주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 다섯 군데의 병원들을 순방했다. 날짜를 언제로 생각하냐는 상담실장의 말에 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한 제일 빨리요.”


네일숍에서의 대화가 끝난 지 2주 만에 나는 수술을 마쳤다.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이제 쌍꺼풀 수술 해야 된다는 소리 안 들어도 되겠지. 명절마다 이모들이 나를 둘러싸고 앞 트임을 해야 한다, 눈매교정을 해야 한다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그 사실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그제야 나는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 집안 어른들과 눈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무쌍으로 버티는 데 실패했지만, 그리고 그들의 말에 굴복하고야 말았지만, 왜인지 어딘가 당당해진 것이다.


그러나 쌍꺼풀 수술 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끝났어도 내 모습은 그들에게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왼쪽이 더 풀렸다느니, 너무 얇게 되었다느니 하는 쌍꺼풀 상태에 대한 중간점검과 더불어, 머리 스타일이 안 어울린다던가 살이 더 쪘다던가 하며 외려 그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가족의 연이라는 게 참 질기다는 말. 그건 부모나 형제 말고도, 가족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스러울 정도의 촌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각종 경조사마다 만나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말들을 ‘어른들이 젊은이들과 대화하려고 기울이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를 실감하게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나이 많은 사촌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너 예전에는 진짜 좀 아니었는데 되게 예뻐졌네?” 그것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꺼낸 말이 아니라 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깜짝 놀라며 한 말이었다. 자기 딴에는 칭찬이랍시고 말한 것 같다. 내가 그 말이 기분 나쁘다고 하면 이해할 수나 있을지. 때때로 무식함은 죄가 된다. 잘못된 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몇 년 전에는 “너 정도면 어디서 뒤떨어지는 외모는 아니지~“라고 했던 일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오빠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못생긴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담으로 그 오빠가 차라리 잘생겼으면 내가 이렇게 화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오빠도 멀뚱히 서 있다 난데없이 외모 평가를 들어봤었더라면. 그럼 오빠도 지금보다는 더 자기 관리를 했으려나.


쌍꺼풀 수술은 어떻게 보면 내 얼굴에 있는 눈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또 다른 눈까지 커지게 한 수술인지도 모르겠다. 일 년에 두 번씩 재단당하던 무쌍 눈이 사라진 후 몇 가지 사실들이 선명해졌다. 이 사람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고, 끊임없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찾을 것이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은 들을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쌍꺼풀 수술을 한 것처럼 그들의 말을 수용한 이후 받는 인정과 칭찬은 그다지 기쁘지 않다는 것. 내 외모에 대한 또 다른 평가를 말하기 위한 빌드업처럼 느껴져 오히려 불쾌하기만 하다.


예방주사 마냥 정기적으로 내 모습이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 주입당하다 보면 더 단단해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강제적이고 타의적이었지만 정신교육 같은 역할을 했나 보다. 지금까지도 친척들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외모에 대한 평가와 -원한 적 없는- 해결책들을 여과 없이 말하지만, 이젠 웃으며 한 귀로 흘린다. ‘지는.’이라고 속으로 말한다. 나를 대하는 잣대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대할 수 없을 테니, 나름 논리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인사하려고 서 있는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머리가 어떻다 눈이 어떻다 말하는 모습은 꽤나 추하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짐한다. 내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에 분노하고, 상해버린 기분을 어찌할 줄 모르던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내 결혼식에서 명확히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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