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by 담마

정현은 근처에 있던 돌담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녀는 사원증을 걸고 나오는 사원들을 보며 불을 붙였다. 그녀의 담배 연기는 푸른 하늘로 올라가서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내려서 담배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회색 담뱃재를 보고 있었다. 담배가 타들어가면서 재는 커졌다가 결국엔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재는 형체도 남지 않았다. 김정현이라는 이름 대신 ‘양아치새끼’로 불렸던 자신처럼. 주먹이 강해질수록, 상대방을 많이 때릴수록 자신이 커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은 결국 소년원, 교도소였다. 출소된 날 교도소 앞에는 한 명밖에 없었다. 고모. 부모는 아니었다. 고모는 그녀에게 두부를 주며 차에 타라고 했다. 그녀는 고모의 집까지 가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 수도 없었다. 무언가 그녀의 성대를 끊어 놓은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건대입구역을 올려다봤다. 2번 출구에서 나온 사람들도 모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딱히 부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쪼그라든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서 발로 비볐다.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담배꽁초처럼 셀 수 없었던 찢긴 이력서. 그녀가 사회에 나와서 배운 것은 범죄자를 좋아하는 싸이코패스 사장님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신원을 조회해 본 사람들은 온갖 창의적인 핑계로 그녀를 떨어뜨렸다. 그녀가 깎여 나갈수록 아르바이트 경험은 쌓였다.
며칠 전 고모의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책임감도 없이 당일 그만두는 바람에 정현이 대신 일을 했다. 그동안의 알바 짬밥으로 다져진 빠른 손과 행동 덕분에 고모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여기 계속 다닐래?” 고모가 얇은 흰 봉투를 주면서 말했다.
정현에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취업도 안 되고, 다니던 편의점 점장도 엿같았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그날 새로운 ‘쉼’의 알바가 채워졌다. ‘대타’였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쉼의 알바’로 상승했다.
그녀는 「쉼」의 유리창을 들여다봤다. 역시 점심시간인지라 손님은 많이 앉아 있었다. 11:50 AM.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어서 냄새를 맡아봤다. 다행히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아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 하….”
카운터에 있던 고모는 정현의 얼굴을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고모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카운터를 맡긴 뒤, 창고로 가서 비닐 팩에 든 유니폼을 꺼내 왔다.
“너 온다고 해서 새 걸로 사놨어. S사이즈 맞겠지? 저기 나가서 왼쪽으로 돌면 화장실 있으니까 가서 입고 오면 돼.”
빌딩 화장실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화장실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변기에 앉은 그녀는 티셔츠를 벗었다. 그녀의 무릎에는 비닐을 벗긴 유니폼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그녀의 눈에서는 3년 전, 고모 차에서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회색 옷 팔 부분에 프린트된 ‘쉼’ 한 글자를 엄지로 쓰다듬었다.
“다 입었어? 잘 어울리네.” 고모가 그녀를 창고에 있는 거울 앞으로 끌고 가면서 말했다.
고모가 앞치마를 찾으러 고개를 숙인 틈에 정현은 허리를 양옆으로 돌려봤다. 날씬한 그녀에게 카페 유니폼은 완벽히 어울렸다. 게다가 오뚝한 콧날과 큰 눈, 또렷한 입술이 다 들어 있는 하얗고 작은 얼굴.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자, 이거 입으면 돼.”
고모가 그녀의 허리에 갈색 앞치마를 두르면서 착용법을 알려줬다.
“오늘은 커피 만드는 법만 배워. 잘할 수 있지?” 고모가 정현의 어깨를 두 번 치면서 말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른 여자 알바생에게서 에스프레소 머신, 탬핑, 블렌더, 거품기 사용법까지 속성으로 배웠다. 솔직히 반 정도는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이제 10분 남았네. 부럽다.” 고모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그냥 웃었다.
“오늘 어땠어?”
“많이 배웠고, 일도 어렵지 않고 좋았어요.”
“이게 안 어려워? 역시.” 고모가 정현의 엉덩이를 때렸다. “손에 조금만 익으면 금방 잘하겠네. 이제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아직 시간 남았는데.”
“괜찮아, 이제 손님도 별로 없고.”
“네.”
다시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녀는 쉼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사원증을 핸드백에 넣으면서 쉼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자를 봤다. 그녀는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정현은 놀라운 것을 본 사람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그 여자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