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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Mar 09. 2023

뉴스 바깥에서, '진짜' 중국 이야기(2)

슈퍼히어로를 원하는 사회와 청년 기업가들의 줄다리기 게임

*이 글은 <문턱의 청년들> 9장과 <민간중국> 8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취업의 문턱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니 이미 그렇다. 그래서 일명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년은 두 가지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하나는 남다른 스펙을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가성비 좋은 대안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창업이다. 마침 기업 입장에서도 자격증 일색인 지원서보다 기업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한 지원자가 더 매력적인 자원으로 보인다. 커리어적으로 경험은 많은데 나이는 어리고, 사회 경험은 없는 속칭 '말 잘 들을 것 같은', 그래서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부려도 아무 말 못 할 것 같은 사람이 기업에게는 늘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업은 청년이 직접 기업을 운영해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환상적인 성공 서사에 매료되기도 하고, 기업인의 삶 자체를 내면화해 개인의 발전 동력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창업'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주체들에는 기업과 대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있다. 한국과 중국 양 정부는 오래된 고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치솟는 청년 실업률과 각종 사회문제가 산적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고 청년을 국가 성장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양국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취업이 절실한 청년의 눈을 창업으로 돌려 그들의 힘으로 사회 혁신 기업을 운영하며 그들 스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청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문제 해결의 책임을 국가로부터 넘겨받는다. 결국 국가 발전과 문제 해결 모두 청년이 해나간다는 결말이 탄생한다. 




<문턱의 청년들> 9장은 중국의 선전과 한국의 서울 성수동에서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청년들이 각국의 기성세대와 사회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발전과 자기 계발 서사에 어떻게 대항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기업의 성공 서사를 내면화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스타트업 청년들이 창업 초기에 사회운동가보다는 기업인의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이후에 그들에게 지워질 사회적 책임이라는 무게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고, 동시에 소셜 벤처라는 단어와 상통하는 기업인의 이미지를 부각할 수 있어서 선택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왜 그들의 인터뷰에서 기업인의 사업적 성공과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지 십분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창업이라는 세계를 통해 청년을 보는 것이 청년의 삶에서 발전, 성공, 자기 계발, 꿈 등의 단어를 제거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청년을 그저 불쌍해하거나 나약한 존재로 축소시키는 시선보다야 낫지만 반대로 청년은 발전하지 않고, 꿈이 없으며, 자기 계발에 관심이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표상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취업으로 해결이 안 되니 창업을 독려하는 양국 정부의 태도는 나쁘게 말하면 자유를 명분으로 청년을 방임하는, 일종의 시장주의적 행태로 느껴진다. 성수동에 스타트업 청년들이 있다면 반대로 고용 안정을 쫓아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간 청년들도 있는데, 도전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전자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청년은 언제까지 꿈을 가지고, 도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걸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는 언제까지 청년의 몫이어야 하는 걸까?


더 나아가 과연 스타트업이 사회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지 아니면 ‘이용’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단지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회적 기업이 전자를 소망하지만 결국은 후자가 되거나, 아예 처음부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적합한 사회적 의제를 선택하는 모습만을 책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문턱의 청년들>에서 이미 창업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이 도구화되는 현실을 기술했지만 나는 창업 또한 결국 취업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도구화되는 현실을 주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물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나 기업이 창업을 욕망하는 청년을 그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면서 청년이 자신의 취업을 위해 창업을 이용하는 것에는 관대하지 못하고 심지어 비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간주되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청년과 정부의 처지에서 나온 이 기묘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흥미롭다. 서로의 의도를 숨기고 눈치를 살피는 이 창업의 세계가.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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