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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Aug 19. 2022

미국 병원에 깃든 동양인 차별의 역사

앤 패디먼 <리아의 나라>를 읽고

  ‘리아의 ‘나라’는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으로서 한 가족의 희생과 그 가족이 속한 민족의 희생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이주민 문화와 정착지 문화의 충돌은 미국에서 리 부부의 어린 딸 리아가 간질 투병하는 표면적 서사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이 책이 미국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며 출간 이후에도 의료계에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매개물로 사용된 사실 때문에 단순히 미국 의료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 당시는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인종적 편견과 그것이 동양인 이주민을 차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시기였다.




1. 몽족과 미국 의료진


  당시 머세드 병원은 1970년대 말부터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동양인 환자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공공 의료보험 지원은 줄어들었으며, 부유한 환자들은 더 멀리 있는 더 크고 시설이 완비된 병원으로 갔기 때문이다. 늘 적자에 시달렸던 머세드 군립병원은 통역자 고용도 줄였다. 전문 통역사 대신 몽족을 청소부나 간호 보조로 채용해 근무 시간에 통역을 시켰다. 그런데 하필 리아가 실려온 날에는 응급실에 통역자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당직 의사는 리 부부에게 증상의 원인이나 환자의 병력에 대해 제대로 물을 수 없었고, 이것은 머세드 의료진이 패혈증을 폐렴으로 오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태의 원인은 단순히 통역자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진이 문화적 소통을 배제한 채 몽족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에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치료 과정에서도 담당의는 리 부부가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약 투여를 거부하는지, 왜 리아에게 제때 약을 줄 수 없었는지, 왜 의사보다 치 넹(무당)을 더 신뢰하는지, 심지어 간질을 왜 심각한 질병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축복으로 생각하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머세드 병원 의료진은 리아를 돌볼 물질적 준비뿐 아니라 타 인종에 대해 이해할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저자는 리아가 병원에 처음으로 실려온 날부터 리 부부와 의료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사실 이전의 병원 상황을 고려하면-1880년대에는 중국인 이민 반대법을, 1920년대에는 일본인 이민 반대법을 제정했던 미국의 이주민 차별 역사를 고려하면-리아가 머세드 군립병원에 오기 전부터 이런 참사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앤 패디먼이 이 갈등을 ‘충돌’이라 표현한 것만큼 둘의 대립은 대등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셰리 오트너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 다른 문화가 ‘조우’하는 상황이다. 문화는 애초에 서로 위계를 형성하며 마주친다는 것이다. 리아의 간질 횟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사태에 이르자 병원 측은 이 일의 책임을 리 부부에게 물어 아동 학대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몽족에게 오진을 내릴 여지가 아주 많은 치료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원인을 환자의 보호자에게서 찾은 것이다. 


  사실 리 부부는 병원에 출입하는 순간부터 두 가지 층위의 차별을 받았다. 하나는 병원 특유의 위계에서 작용하는 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그동안의 역사에서 그들이 구현한 문화적 서열에서 기인하는 차별이었다. 과연 환자를 통제하는 것을 전제로 치료를 하는 병원의 방식을 몽족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가 치료라는 목적 아래 훼손되는 상황을 몽족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픈 사람을 보듬어 주는 치 넹의 존재를 기억하는 푸아와 나오 카오는 간질 치료를 위해 리아의 몸속에 관을 삽입하는 의사를 이해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의료진은 푸아에게 리아를 돌보지 못한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녀에게 병원의 존재와 치료 방식에 대해 설명할 의무를 임의적으로 포기했지만 푸아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리 부부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이해하는 것과 상관없이 길고 힘든 치료를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서 미국인은 자유롭게 누리는 자기표현의 권리를 몽족은 부여받지 못하고 침묵을 요구받는 상황으로 귀결된 것이다. 리 부부와 머세드 군립병원은 과연 대등하게 ‘충돌’했는가?


  그러나 이 사태가 안타까운 이유는 리아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이들이 각자 자신의 신념과 직업윤리를 가지고 그녀를 치료했다는 것에 있다. 응급실 담당의 댄은 리아 이전에도 몽족 환자를 만났던 일이 있어 몽족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닐과 페기는 충분히 리아에게 헌신적이었으며, 병원은 이 난민 가족에게 공공의료 보험제도를 적용해 모든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리아의 뇌사 판정은 관련자들의 선의가 조금씩 모인 결과인 것이다. 그들의 직업윤리 안에서는 어떤 사정이 있든 간에 부모가 아이에게 약을 복용시키지 않으면 아동 학대이고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치료나 수술 거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직업윤리의 반대급부에 있는 ‘칼질을 안 하며’ ‘그 사람들의 몸’을 존중하는 로저 파이프는 ‘그만그만한 의사’ 일뿐이다. 철저히 미국식 의료관행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과 환자의 신체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는 사람은 선의가 발동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2. '통증'에 대한 미국인과 몽족의 관점


  미국인은 심리적인 문제와 신체적 질병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허리가 아프면 허리가 아픈 것이고, 우울하거나 상실감을 느끼면 항우울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몽족에게 통증은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구분이 모호한 개념이다. 그들은 마음이 아픈 것과 몸이 아픈 것을 모두 ‘간의 문제’로 보았다. 둘 중 어디가 아프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간이 좋지 않아서이고, 간이 좋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이 ‘혼’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몽족에게 혼은 하나의 중요한 세계관이다. 외부의 충격으로 혼이 몸에서 떠나거나 ‘다’에게 혼을 빼앗기면 사람은 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족에게는 혼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치 넹’이다. 몽족은 아프면 치 넹에게 찾아가 치료를 받는다. 치료는 특정한 약초를 짓이겨서 상처 부위에 바르거나 몸에 비비거나, 혹은 치 넹이 적당한 의식을 거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몽족은 자신의 동의 없이 팔다리를 잡힐 필요도, 특정 공간에 수용될 필요도, 의사의 지시로 옷을 벗으며 수치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여기서 통증이란 의사나 누군가가 검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 개인이 느끼는 매우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종종 병원 의료진이 환자와 인간적으로 교감하는 대신 환자의 증상만을 분석해 기계처럼 ‘이런 병에는 이런 치료, 저런 병에는 저런 약’을 처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우리는 그런 ‘감정의 문제’를 지나치는 의료 체계의 허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에는 ‘신체화 증상’ 같은 문제(평소에는 신체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 지나치게 긴장하면 일시적으로 두통이나 복통을 느끼는 증상)들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환자의 감정을 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해 향을 피운다거나 주문을 외우는 ‘치 넹’의 치료는 환자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도 보살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3. 의료 갈등 너머의 문제


  언어는 사용자의 권력에서 나오고 사용자의 권력은 문화가 가지는 위계적 질서의 영향을 받는다. 리 부부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를 묘사하기보다는 미국인의 언어로 설명되고 정의되었다. 응급실의 통역자가 부재한 것은 문화 전달자가 부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소수자가 침묵을 강요받는 것을 의미한다. 몽족은 미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두 가지의 소통 방식을 강요당하는데, 그것은 미국인의 방식을 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몽족이 그들의 언어로 자신들을 표현하는 제3의 선택지 같은 것은 처음부터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반대로 몽족이 미국인의 행동이나 문화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하거나 곡해하는 일 또한 용납되지 않았다.


  미국은 몽족을 그들 사회에 흡수시키기 위해 제도적으로 ‘미국화 작업’을 실시하는 한편 다른 소수 인종들에게 보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몽족이 의료 체계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영역에서 ‘고분고분하며 눈에 띄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잘하는 모범 소수자가 되는 것’을 요구했다. 글을 읽고 쓴다는 개념이 부재한 몽족들에게 왜 알파벳을 알아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대신에 일단 영어를 가르치고 보는 것, 희생제의를 지내기 위해 돼지를 잡는 행위를 야만적이라며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 지역 교회에서 몽족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것은 전자에 해당하며, 인구가 많은 몽족이 밀집해서 눈에 띄지 않도록 50개의 주에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들을 참전 용사로 인정해주는 것에는 관심 없지만 그들이 성실한 노동자로써 미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의료 체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몽족에 대한 미국의 차별과 배제는 리아가 MCMC에 입원하기 전부터, 즉 몽족이 미국에 입국을 하기 전에 베트남 전쟁에 동원되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참사였다. 당시 국제 협약에 따라 대외적으로는 베트남전에 개입할 명분이 없었던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비밀리에 라오스 국경에 살던 몽족에게 대리전을 치를 것을 부탁했고, 전쟁의 한 복판에서 생존을 위해 몽족은 미국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몽족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미국에 자신을 구하러 와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들이 고향에서 본 미국의 마지막 모습은 안타깝게도 라오스의 공항을 떠나는 미국행 비행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미국을 신뢰할 수 있었을까?


  몽족은 입국 이후에도 미국 사회의-백인을 비롯한 선주민에게-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급속도로 지역사회에 밀려들어왔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고 지역 사회에 이들을 밀어 넣는 이유를 시민에게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CIA의 비밀 작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는 언론에도 알리지 않았고, 이 당황스러운 사태를 나름의 방식으로 규명하기 위해 미국인은 이주민에 대한 자신들의 온갖 선입견과 풍문을 동원해 몽족을 타자화시켰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는 몽족과 난민에 대한 신뢰가 없는 미국인의 충돌은 미국 정부가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결과이다. 사회 구성원의 갈등 뒤에는 언제나 이것을 방조하거나 이용하는 국가권력이 있다. 리아의 죽음에서 병원뿐 아니라 미국 시민과 지역사회, 정부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4. 리아의 죽음, 그 이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의료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리 부부 사건은 이주민이 심지어 병원 안에서조차 문화 번역의 실패와 왜곡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지역사회에 흑역사로만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일련의 성장통을 겪은 머세드 병원과 의료계는 병원에서 환자와의 소통에 문화적 다양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많은 의대생들에게 '의료인류학'이라는 과목을 신설해 수강하도록 했다. 또 대학 내의 아시아인의 정원을 늘리는 등 타인종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가려는 여러 정책들을 시도했다. 몽족 환자의 심신 안정을 위해 '치 넹'을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투입시키고 관공서에서 그들이 몽족을 돌보도록 자리를 내주는 등의 변화들도 생겼다. 몽족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미국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오늘의 한줄 평

: 변화는 늘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자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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