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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도치 Aug 27. 2022

미친 연구 뒤에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를 읽고

원래 대학 전공수업은 듣고 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난 국문과에서 들었던 모든 강의의 첫 수업은 기억나는 편이다. 교수님이 ‘모더니티란 무엇인가?’라는 문구를 띄워놓고 정작 모더니티가 진짜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모더니티에 대한 이러저러한 논쟁이 있었다고만 얘기해 주실 뿐이었다.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수업에 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 한 구석에 박제되어 있다. 


인문학 특유의 수업이 첫 번째 고비였다면, 단언컨대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라는 책을 만난 것이 두 번째 고비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연구 방법의 기본은 알려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아차 싶었다. 역시나 여기도 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 해외 체류 연구자에 대한 환상 부수기

이 책은 독자를 위한 약간의 낭만과 예비 연구자를 위한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묘사한다. 태국 편에서는 감시가 삼엄한 지역일수록 연구자의 동선이 좁아진다는 현실이, 이스라엘 편에서는 우범지역의 심각한 치안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뒤에는 현지인의 온기 또한 존재한다. 치앙콩의 가게 주인과 네베셰아난의 아파트 룸메이트는 어느 날 지구에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은 외부인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전체적으로 연구자가 처한 상황과 해외 연구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 좀 더 할애한 듯하다. 책 속 연구자들은 연구자 자신이 현지조사의 도구가 된다는 문화 인류학 연구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수행한다. 연구 집단에 시간을 들여 적응하고 인포먼트와 꽤 오랫동안 라포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돌발상황은 해당 국가기관의 행정처리 문제, 비자 문제, 금전 문제, 재난, 정치적 불안, 성범죄, 현지인의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 등 끝이 없다. 심지어 그중엔 연구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연구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장애물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 주제를 포괄적으로 설정하고 현지로 갔다가 막상 현지조사를 시작하자 주제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져 범위를 좁히거나 연구 방향을 수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인포먼트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이 생겨 연구 주제를 완전히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2. 연구도 미쳐야 할 수 있다?

연구자의 기행은 연구 논문의 질과 비례하는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12명의 연구자가 현장 연구를 하는 과정은 기이하면서도 위험천만하다. 홍콩인 연구를 위해 홍등가 근처에 숙소를 얻는가 하면 베네수엘라 연구자는 빈민 연구를 목적으로 바리오(우범지역)를 거침없이 누비고 다닌다. 어떤 연구자는 원전 사고가 터진 뒤에도 일본을 떠나지 않는 광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들은 자신을 연구 도구로써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외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조사 국가로 떠나거나 인포먼트와의 대화를 위해 하루 종일 차를 마시는 연구자의 경우는 양반으로 보일 정도이다. 


3. 연구자들의 속사정

그러나 정작 내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중용에 대한 믿음이 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다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과 거리 두기를 전혀 하지 않고 어떨 때는 아예 연구 대상이 진행하는 사회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왜 연구를 단순히 관찰에서 끝내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연구와 사회활동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그들의 고민도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같았다. 엄은희 연구자는 필리핀 라푸라푸섬 편에서 ‘내가 쓴 한글 논문을 들고 그들을 찾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자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의도적인 거리 두기의 파괴는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을 경계하고 사람과 문화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기 위함이라는 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연구 대상에게 시종일관 온정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참여 관찰이 가져오는 단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현실적 한계고 다른 하나는 안전의 문제다. 


4. 참여 관찰 연구의 한계

이 책에서 연구자들은 저마다 참여 관찰의 경계를 고민한다. 일본의 비혼 돌봄자를 조사했던 연구자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에 몰입해 언젠가부터 인터뷰가 아니라 상담과 조언을 하게 된 경험을 얘기한다. 필리핀의 광산 개발 지역을 조사한 연구자는 환경오염의 피해를 입을 주민을 위해 자신이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는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인류학자는 조사를 마친 뒤 현장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연구가 끝난 뒤에도 인포먼트들과 현지인들의 인생은 그 현장에서 계속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연구자가 연구 대상과 라포를 형성한다 한들 연구가 끝나는 동시에 그 관계도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연구 대상의 삶과 관계가 단 하나의 논문을 위해 소비되는 것이다. 


정말 참여 관찰은 가능할까? 만약 논문이 현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해도 이것은 뉴스 보도나 금전적 구제라는 수단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경우에 따라 체감상 신분이 불분명한 인류학자보다는 저널리스트나 사회활동가의 존재가 더 고마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참여 관찰의 맹점일 수도 있지만 논문의 한계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참여 관찰이라는 방법이 ‘참여’보다는 ‘관찰’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5. 연구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폭력

사실 참여 관찰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현장에서 일어날 모든 변수를 연구자가 오롯이 떠안는 것이다. 인포먼트와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은 서로 사생활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이다. 연구자는 바쁜 현지인에게 매번 인터뷰를 부탁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에 인포먼트가 개입하는 것을 일정 부분 허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준은 아주 모호해서 그런 행동이 연구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주는지-예를 들면 단순한 호의인지 범죄에 가까운 것인지-구분하는 것은 힘들다. 


이란을 조사했던 연구자는 현지의 저명한 교수를 중요한 인포먼트로 여기고 다가갔다가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일본의 노인 문제를 연구하러 노인을 인터뷰하는 중에 언어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이 외에도 연구자를 자신의 지인과 중매결혼시키려 시도하는 등 사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오지랖을 연구자는 현지조사 기간 동안 감내해야 했다. 


이 책의 연구자들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안전보다는 현지인이 입을 피해나 연구자의 윤리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학습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인류학자는 참여 관찰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난무하는 타국에서 연구자는 오직 연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가?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라고 믿는 나에게는 이런 연구 방법이 연구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으로 다가온다. 해외 연구자의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6. 책의 한계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에 실린 연구들의 공통점은 성공한 연구라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라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성공한 연구가 있다면 실패한 연구도 있을 것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보여주는 성공 신화 같은 케이스보다는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실패담을 엮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실패담에서도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연구 담은 포함 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지금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이고 오프라인 공간만큼 사람이 많이 몰리고 그 사람의 수만큼 실시간으로 다양한 관계가 탄생하는 곳이 온라인 공간이다. 책 속 연구자들이 현지 조사를 진행한 시점이 대부분 2010년을 전후로 하는데 이 시기면 국내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도 남을 시기이다. 심지어 연구자 중 한 명이 조사한 2014년 홍콩 우산혁명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게릴라 시위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SNS의 힘 덕분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온라인 공간에 대한 관심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나에게 많은 질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는 세상이 정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인류학의 매력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이 드라마 같은 12편의 무용담은 연구자들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할애해 만든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이다. 그녀들의 고군분투기를 읽으며 나도 같이 울고 웃었던 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연구 선배이자 인생의 개척자인 그녀들의 열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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