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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짱 May 01. 2023

<코스모스>를 읽는 엔지니어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시작하며


어릴 적 서너 살쯤 되었을까, 어머니와 함께 어둑 껌해진 길을 걸을 때였다. 당시 부산이었지만 가로등도 별로 없고 집도 지금처럼 조밀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 앞에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불현듯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저기 봐, 별똥별이다."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올려다봤는데 내가 본 것은 별똥별의 길게 드리운 꼬리의 여운이었다. 하지만 매우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다."

그 말에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봤지만 다시 보지 못했다. 계속 쳐다봤으면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별똥별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내가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첫 번째 기억이다. 당시 나는 우주의 변화에는 신적인 어떤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소원을 들어주시겠지.


누구나 우주에 관련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어릴 적부터 아득한 우주에서 외계 악당이 쳐들어 오는 것은 흔한 주제다. 물론 "ET"는 친구 외계인으로 왔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주하면 신비로운 세상이나 지구를 침범하려는 정복자의 느낌이 든다.

달 탐사선을 올려 보낸다거나 화성에 이주해서 살 수 있게 된다는 뉴스를 접하면 '이제 우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그냥 간단한 희망 정도? 어느덧 가까운 미래에 우주여행도 가능하다고 하니 그렇게 까마득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사실 우주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상 생활을 하다 탄생 별자리를 묻는 경우도 있고, 최소한 나의 별자리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뉴스에서 가끔 옛날 위성이 낙하에 따른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일식, 월식 또는 혜성 관련 내용은 메인 뉴스가 되기도 한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보이저 1, 2호가 목성, 토성을 탐사하면 새로운 위성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뉴스 토픽으로 나오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는 우주와 관련된 것들이 은근히 가까이 있다. 각 나라 국기에 천체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국기도 천체를 의미하고 미국 국기도 별이 들어간다. 동남아, 남미 국가들 국기에도 별이 들어가고 이슬람 국가는 초승달을 많이 사용한다. 그 외에도 많은 국가에서 천체나 태양, 별이 새겨져 있다. 

 

중세 대항해시대 이전에 중국 명나라 환관 정화는 유럽보다 훨씬 큰 규모의 선단을 이끌고 5차례에 걸쳐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세계의 주도권은 중국이 아닌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유럽으로 넘어가고 중국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며 후에 유럽에 치욕을 당했다. 기술이나 경제적으로 훨씬 앞선 중국이지만 정체된 사회가 되었고 대양으로 뻗어 나간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지역의 자원을 약탈하며 중국도 그들에게 힘없이 무너지는 역사를 겪었다.


우주을 향한 국가들이 과거 대항해 시대같은 의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수한 기술이 나와서 부국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은 있을 것이다. 이를 지원하는 회사는 자신들의 우수성을 보이고 싶을 것이고 과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이 우주에서도 성립이 되는지 증명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원리도 알게 될 것이다. 옛날 석기 시대 부족단위의 사회는 우주에 대한 지식은 태양과 달에 의한 시간 개념과 계절에 따른 기후변화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을 돌고 있는 달 뿐만 아니라 화성으로 사람을 이주시키는 계획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사람이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다.   


이런 우주에 대한 내용을 대중화에 앞장서서 친숙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 과학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 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이다. 칼 세이건은 TV 다큐시리즈로 『코스모스』를 제작했고 이 유명세를 힘입어 1980년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과학책으로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지금 지구에서의 지식도 완전하지 않은 데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무엇보다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인류의 미래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 것이다. 다중 행성 종이 되거나 한 행성에 국한된 채로 남아 결국 멸종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 일론 머스크


일상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의 존재감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라는 의구심은 한없이 소외감을 들게 하고 커다란 회사, 국가, 지구를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지금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도 힘든데 우주의 생명체에 관심이나 가질 이유가 있을까? 하물며 화성, 목성이 어떤지 관심을 왜 가져야 하나? 

역시나 나하고는 먼 이야기다. 이런 우주 이야기는 차라리 SF영화에서 나오는 '문폴'같은 이야기가 더 현실감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우주 이야기를 왜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 주는 책이 지금 소개할 『코스모스』다. 


"코스모스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中에서



칼 세이건은 우주에 대한 표현으로 영어 표현을 "코스모스(COSMOS)"라고 했다. 우리는 주로 "Space", "Universe"라는 의미가 더 친숙하데 말이다. Space는 좁은 의미로 태양계 내로 한정한다고 한다. 정확히는 인류가 도달 가능한 공간까지 말을 한다. 보이저 1, 2호 같은 인공위성에 의해 관측되고 그 자료를 받아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Universe는 넓은 의미의 우주이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말하는 우주가 여기 일 것이다. 그런데 코스모스는 "혼돈(Chaos)"와 상반되는 '질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주의 탄생은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로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바다에 비유했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지구의 표면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닷가 정도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제 바다에 발목을 적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코스모스』를 흥미롭게 읽게 된 것은 순수한 천문서적이라기보다는 우주를 지구의 생명체의 원리와 같이 이야기하고 인문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칼 세이건은 본래 대학전공은 생물학이었고 석사도 물리학이다. 천문학은 박사학위에서 전공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고리타분한 천문학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이어온 과학의 역사와 당시(저자가 활동하던 시기) 진행 중인 우주 탐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설명을 생물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결국은 인류애를 표현하는 복합적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고대부터 우주에 대한 연구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인류는 지금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주를 관찰하고 연구했다. 불을 처음 사용하게 된 석기시대조차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해, 달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흔적을 여러 벽화 또는 커다란 돌에 새겨 넣었다. 특히,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더욱 날씨의 변화에 대한 예측은 중요한 분야로 천문은 특정 계층만이 공유하는 지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칼 세이건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천체 연구 시작은 2500년 전 '이오니아'라는 곳이다. 왜 이오니아에서 천문과학이 시작되었을까?

이 시대는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로 문화의 전성기 시대로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수많은 사상가가 나왔고 천문 역법이 발전하여 일식은 이미 알고 있었으며 기록에서도 오늘날 확인이 되었다. 기원전 613년에는 헬리(Hally) 혜성이 북두칠성을 지나는 것도 관측을 했다. 목성, 토성, 금성, 수성 등 5개 행성의 운행 과정 기록과 물시계를 이용한 하루의 시간을 계산도 했다. 또한 대양으로 진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나침반도 이미 만들어진 시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천체 연구는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에서 관리되었고 우주관에 대해 사상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 통치를 위해 지식의 탄압이 자주 있었다는 사실도 발전을 저해한 요인이 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이오니아는 지중해 동부 구석의 해협에 있는 작은 섬이다. 하지만 이오니아는 유리한 점이 있었는데 섬들 마다 자신들의 독립적 환경에서 고립됨이 오히려 다양성을 가져다주었다. 즉, 섬마다 정치체계가 달랐고 지적 다양성을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탐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보통 거대해진 국가는 중앙집권을 위해 미신을 조장하고 사회적, 학문적 탄압을 하게 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자들은 지배층에 한정적이어야 했다. 

중국이나 인도 등 과학이 발전된 국가였지만 우주를 이미 정해진 세계로 단정하고 종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해석하려고 했지만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통일된 왕조는 이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이용을 하기만 했다. 

반면 이오니아는 다른 문명권과 교차하는 길목에 있었다. 덕분에 여러 문명을 접할 수 있었고 페니키아의 음성 알파벳 기호를 그리스어에 사용하면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글을 읽게 된다는 것은 여러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논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동부 지중해 연안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아시아, 유럽의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에 배경을 둔 사상과 수많은 신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이오니아 인들은 저마다 다른 신을 말하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같은 현상을 각기 다른 신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니 미신적 세계보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이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오니아의 뛰어난 사상가들 중에는 항해사, 농부, 직조공의 자식들이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손을 더럽히는 것은 노예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직접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일에 능했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실험하고 개발하는 연구적인 '노동'에 익숙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칼 세이건이 말하는 첫 번째 과학자는 탈레스(Tales)이다. 탈레스는 피라미드 그림자 길이와 수평선 위에 떠오르는 태양의 고도를 이용해서 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했다. 이 방법은 오늘날 달 표면에 있는 산의 높이를 재는 데에도 사용하고 있다. 3세기 후에 유클리드가 정의한 기하학의 여러 성질도 탈레스가 이미 증명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탈레스의 위대함은 발상의 대전환이다. 세상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탈레스의 동료 아낙시만드로스(Anazimandros)는 수직으로 세운 막대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관찰하여 1년의 시간 길이를 측정했고 계절의 시작과 끝도 제대로 알아냈다. 최초의 해시계를 만든 사람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은 무한히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면서 변이를 통해 다른 동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다윈의 ‘자연진화론’을 생각할 수 있었던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그 시대 인물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일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인물로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추론한 첫 번째 인물이었고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유일한 행성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우주의 한 부분임을 인정한 것이다. 

피타고라스 당시는 지구는 평탄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우주의 중심에는 질서를 잡기 위한 거대한 물질이 있고 그 주변으로 모든 행성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행성들은 둥글며 또 다른 지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심에 있는 불은 우리는 보지 못하고 반대편의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성들은 가장 완벽한 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믿었다.


지구와 지구인이 자연에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위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보편성으로 확장됐고 옆으로는 인종 차별의 철폐로까지 이어졌다.

                                           <코스모스>, 7장 밤하늘의 등뼈 中에서


천체를 알아 가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우주에서 가장 크지 않고 인간이 모든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차별의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하고 지식의 미흡함을 깨달아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부족함을 채워나가게 만들어 준다. 고대인들이 바라볼 수 있는 우주관이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실로 매우 창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후 과학의 침체기를 걷게 된다. 과학의 지식을 특권층의 소유권으로 생각했고 문제를 생각은 하되 관측하거나 실험을 하는 행위는 노예의 근성이라며 천한 취급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철학자가 나왔으나 신비주의적 과학관과 이론에 근거한 설명을 하는 풍조는 이어져 왔다. 

그래도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다시 인류의 지식이 집대성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외래문화를 존중했고 개방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대도서관과 박물관을 건설했다. 그 도서관에는 당시 인류의 모든 지적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었다. 당시 50만여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만일 이 유산이 유지되었다면 과거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수많은 궁금증들이 모두 풀렸을지 모르고 건축부터 의료,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칼 세이건은 이때부터 연구가 이어 오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현대의 과학은 고대 세계가 알고 있던 과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자료에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가 빠진 듯 여기저기 뚫려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도서 대여증 하나만 남아 있었더라면 과거의 수수께끼들을 많이 밝혀낼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바빌론의 사제인 베로소스가 쓴 3권짜리 세계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작품은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천지 창조부터 대홍수까지를 다루는 제1권에서 베로소스는 그 기간을 43만 2000년으로 잡았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연대기보다 100여 배나 긴 기간이다. 나는 그 책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해서 지금도 견딜 수가 없다. 

                                               -<코스모스> 제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中에서-


이 시대가 지식을 활발히 탐구하는 고대의 마지막 시기일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하지 정오에 시에네 지방에서는 막대기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 실험을 하여 증명하였다. 그는 대학자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라는 사람이다. 만일 이 책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관측과 실험의 결과들이 연결되어 계속적인 발전을 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지식은 얼마나 넓고 깊어졌을까? 중요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시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자료는 어느 정도의 기준에서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방대한 자료는 당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도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형태로 자주 이행되어 왔다. 

이런 현상이 발생되는 원인은 지식은 특정 계층만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진 시민은 지배층에게는 부담이다. 모든 혁명은 지식층에서 나오게 되느다는 것을 고대부터 지배층들은 알고 있었다.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우주의 원형 궤도에 대한 이론은 2세기 무렵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과학적으로 정리가 된다. 그가 주장한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모든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과학적 원리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눈으로 관측이 된 현상을 풀어내기 위한 추론일 뿐이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은 현상에 대한 일시적 설명은 될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즉, 당장의 현상에 대한 설명을 위한 추측이 그로 인해 발생되는 다른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에 따라 또 다른 추론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의 행성 운동 궤도는 꽤 복잡하다. 

개인적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이 관측한 현상을 당시의 우주관을 근거로 설명하기 위한 나름 과학적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교인에 의해 그의 이론이 이용되었고 후대에 그의 이름은 오류의 화신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1200년 동안 이론에 대한 다른 접근이 없었다는 것도 놀랐지만 그럼에도 코페르니쿠스가 천체 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회전(지동설)해야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혁명과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피타고라스와 기원전 3세기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도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일 과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남아 후대에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했다면 더욱 빠른 과학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현대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 구조를 완성되기 까지는 행성 운동이 타원형이라고 증명한 케플러와 과학적으로 증명을 한 뉴턴으로 올 때까지 1000년 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전 피타고라스,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도 행성은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못 박았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 불완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레임을 케플러는 '천문학도 물리학의 일부다.'라고 단언하여 깨뜨렸다. 천체에 대한 해석이 점성술사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천체의 운동을 완전히 수학적으로 해석하여 완성한 사람은 그 뒤를 이은 뉴턴이었다. 

과학이 종료라는 프레임에 가두게 된다면 얼마나 오랜 기간 잘못된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전의 훌륭한 학자들도 천체를 신비주의와 미신에 의한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이를 바로 잡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오류는 금성에 대한 오해도 불러일으켰다. 처음으로 금성을 관찰한 사람은 갈릴레오다. 1609년 망원경을 통해 육안 관측을 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하얗게 밝게 빛나는 별이다. 그 빛이 두꺼운 구름에 덮혀진 것이 밝혀졌고 그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추론을 하게 된다. 

"구름이 두껍다는 것은 물이 공기 중에 많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표면은 더욱 많은 물이 있겠군. 그렇다면 표면은 늪지가 되어 있고 각종 나무가 있지 않을까? 그럼 곤충들이나 심지어 공룡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금성의 관찰에서 생물이 가득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후 과학의 발달로 직접 가보지는 않아도 대기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었다. 금성의 대기에는 이산화탄소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대기에는 수증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른 추론은 엄청나게 추운 날씨로 대기의 수증기는 얼음이 되어 표면에 있고 바다는 탄산수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소련의 무인 우주선이 선구적으로 금성에 접근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면서 진실을 맞주하게 되었다. 그곳은 엄청나게 뜨겁고 토네이도 같은 바람이 항상 불어대며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교훈은 지구도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온실효과로 인해 어떤 재앙이 벌어지게 될지 추론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인가 금성을 소개하는 장의 제목이 '천국과 지옥'이다. 


수백만 년 전 인류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지구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지구가 젊음의 격변기와 형성 초기의 격렬함에서부터 46억 년이나 되는 세월을 이미 보내고 중년기의 안정을 찾은 뒤였다. 

.....

우리의 지능과 기술이 기후와 같은 자연 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이다.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알고 보니 지구는 참으로 작고 참으로 연약한 세계이다. 지구는 좀 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존재인 것이다. 

                                                        -<코스모스> 제4장 천국과 지옥 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쩌면 선택의 기로에서 금성이나 화성 같은 운명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에 대한 방향키는 인간이 쥐고 있다. 칼 세이건의 언급한 말은 지구 환경에 대한 문제가 단순히 먼 미래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결과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결과(금성)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지구의 극단적 변화 모습을 어쩌면 금성인들이 미리 겪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  


과거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네덜란드는 첫 번째 강국이 되었다. 당시 아무도 가보지 못한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고 미지의 세계에 알 수 없는 위험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DNA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보이저 1, 2호의 우주 탐사선이 그 유산이다. 

50년, 60년 대는 소련과 미국 간 냉전 시대 우주 경쟁으로 우주에 누가 먼저 사람을 보내느냐를 겨루었고 미국의 완승 후에는 다른 목표를 찾게 되었다. 은하계의 다른 행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보이저 1호는 인간이 지구 밖으로 내보낸 물체 중 가장 멀리 있고 가장 먼 곳에서 지구를 촬영했으며 보이저 2호는 최초이자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천왕성과 해왕성을 근접 탐사를 했다. 

보이저호는 우주 바다에 대항해를 시작했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을 새롭게 알게 해 주었다. 지금은 명왕성을 지나 '태양권계'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옛날 네덜란드인들이 미지의 세계를 위해 끝이 없어 보이는 바다로 나아가듯이. 다만 보이저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보이저의 또 다른 임무는 지구 메시지를  외계 문명에 알리는 것이다. 사실 외계 문명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수천억 개의 은하에 최소한 수백만 개 행성이 지구와 유사한 환경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유사한 진화를 거친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도 높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와 발전이 우리와는 다르게 진행되어 보다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행성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 아마도 칼 세이건은 확신한 듯하다. 그의 아이디어로 보이저 안에는 인류 문명에 대한 정보를 실은 골든 레코드가 실리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칼 세이건은 분명히 외계생명체 그것도 우리 보다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진 그들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Contact)>에서 어린 엘리는 천문학자였던 아버지에게 외계생명체가 있는지 물어본다. 그때 아버지는 "이 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 밖에 없다면 그건 너무 큰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분명 그렇다. 오랫동안 인간은 깊은 바닷속은 산소가 희박하고 빛이 없어 어떠한 생명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가 환경에 맞는 진화를 거듭해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떠한 악조건에도 살아가는 생명체는 분명있다. 아마도 자연은 공간을 그냥 두지 않는 듯하다.


행성 지구가 태어날 당시와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또 다른 지구가 은하수 은하 어디에선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거기에도 우리 인류와 흡사한 어떤 생물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그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

역사와 마찬가지로 생물 현사에서도 우연이 결정적인 차이를 초래한다.

.....

p568

외계 행성에 사는 지적 생물의 생김새가 지구인을 닮았을 가능성은 거의 0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구의 경우를 보건대 유전적 다양성은 일련의 우발적 사건들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외계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우발적 사건들과 그곳 환경을 지배하는 우연적 요인들이 어떻게 지구에서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코스모스> 제11장 미래로 띄운 편지 中에서 p561~3 -


우주가 빅뱅에 의해 생겨난 것은 최소한 200억 년 전의 일이다. 우주의 수많은 먼지들이 모여 어떤 에너지에 의해 폭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지구가 생성된 것은 대략 45억 년 전이다. 우연찮게 태양과 거리가 적당했고 지각의 변화를 겪으며 물이 생성되었으며 생명체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수억 년 동안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엄청난 시간 동안 어느 작은 사건만 달라도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질 수 있다. 형태의 변화는 만일 지적 생명체라고 한다면 전혀 다른 문화적 발전을 거듭했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5개의 손가락을 가진 양팔이 있어 10진법으로 발전되었지만 손가락이 4개를 가진 팔이 세개가 있는 지적생명체라면 12진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지구에는 이미 7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도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똑같은 이는 단 한명도 없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평생 알고 지낼 수 있는 사람들도 전체 인구의 몇 % 나 알게 될까? 0.1%? 세계인구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래서 먼 타지, 특히 먼 외국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거기에 같은 학교 출신이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한다. 또 다른 연관성이 생긴다면 상대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가량 나이가 같거나, 생일이 같거나, 같은 친구를 알고 있거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주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렇게 고향이나 학교를 따질 필요가 없다. 수천조에 달하는 별 중에 지구라는 이 작은 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미 우리는 모두 이웃사촌과 같다. 이런 우연히 만들어낸 현재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관계인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서로 다름, 상대의 특이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현재사회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좁은 시야는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든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발명품들은 과거 우연이라는 사건에 따라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그 우연은 특정한 이에게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엄격한 기준으로 본다면 세상에는 완벽한 발명은 없다. 모두 과거에 발견되고 만들어진 것들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조합하여 유의미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1990년 2월 14일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는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어 전송했다. 바로 '창백한 푸른점(Pale Blue Dot)'라는 제목의 작품이다-왼쪽사진. 지구에서 태양 간 거리의 40배인 60억 km 거리에서 지구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촬영 30주년을 맞아 이에 대한 경의를 담은 리마스터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우리는 우주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저렇게 작은 먼지와 같은 지구라는 별에서 그것도 지구에서도 아주 작은 공간에 살고 있다.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누구이며 주변과 나의 관계가 어떤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칼 세이건은 이렇게 한다.


p682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코스모스> 제13장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중에서 마지막 구절 -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7번째 달 탐사선을 발사에 성공했고 달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의 우주탐사가 불필요한 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구 소련이 체제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를 과도한 우주 경쟁으로 재정 파탄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라고 볼 수 없다. 구 소련의 우주 경쟁은 미국과의 양강 시대에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과 당시 시대적 체제 선전이라는 효과를 위한 자존심 싸움이었다. 미국에게 최초의 달 착륙 위치를 내주게 되자 소련은 금성을 최초로 유인 착륙 시키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정적 손실만 가져오고 성공하지 못했다(덕분에 금성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 또한 소련에 연달아 최초의 타이틀을 빼앗긴 후 아폴로11호의 성공으로 최초 유인 달착륙이라는 성과를 내고 72년 아폴로17호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달에 가지 않았다. 국가 위상이라는 목표를 더 이상 달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몇 십년만 지나면 달에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40년이 넘도록 지구 주변만 돌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리하다. 

지금은 분위기가 민간 사업자에 우주 산업이 넘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화성 이주 계획이다. 지금도 우주 여행은 민간에게 열려 있다. 물론 지구에서 100km 상공에서 잠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것과 우주 정거장에 몇 일 체류하는 경험을 하는 정도 수준이지만...


그렇다면 우주 여행을 위해 화성 이주를 위해 우주 산업이 중요한 것인가? 칼 세이건은 우주 개발에 투자에서 사용되는 1달러는 국가 경제에 7달러로 돌아온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네이비게이션의 GPS 기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원리를 설명한 뉴턴의 만유인력과 더욱 큰 우주에서의 원리를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덕분에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지구에서의 운동은 뉴턴의 법칙을 따르지만 GPS 위성은 지구보다 작은 중력으로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지구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된다. GPS 위성과 매우 작은 시간차이도 지구에서는 위치 편차가 수 km 발생된다. 이런 시간 오창를 상대성이론을 토대로 네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보정을 하여 정확한 시간과 위치를 보정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최초로 동력 비행기을 제작해서 성공한 것이 라이트형제라고 알고 있지만 동력 비행기는 이전부터 제작되었고 시험 비행도 이루어졌었다. 새뮤얼 랭글리는 라이트 형제와 같은 시대에 가장 출중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고 의회로 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동력비행기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실제 무인 동력비행에 성공한데 자신감을 얻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대형 비행기를 제작했다. 하지만 두 번의 시험을 실패하고 그로부터 9일 후,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했다. 라이트 형제는 이전에 비행기를 연구했던 개척자들의 자료를 통해 복엽형태의 날개를 가진 비행기로 설계를 했고 비행에 필요한 조정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직접 실험과 모형 시뮬레이션을 통한 데이터 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 냈다는 점이다. 새뮤얼 랭글리는 사람을 태운 무거운 물체가 공중으로 올라가기 위한 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엔진에만 집중했다. 이것은 과학자로서의 원리적인 이론에 의한 것으로 실험을 등한시한 결과였다. 

과거 이오니아에서의 실험과 관측을 토대로 이를 해석하려고 했던 과학적 접근을 등한시하고 알렉산드리아의 거대한 지식창고를 스스로 파괴한 인류가 얼마나 긴 시간 침체과 좁은 시야에 사로 잡혀 왔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시대도 분명 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바라보는 세상 만으로도 1500년이라는 정체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를 깨뜨리는 데는 큰 용기마저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코스모스'라는 큰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주변의 행성을 바라보면서 지구의 환경을 인간이 잘못 사용하면 금성과 같은 지옥같은 행성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의 화성같은 황무지같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성이나 목성 인근 위성에서 발견되는 바다와 화산을 보면서 원시 지구가 어떻게 활동을 했고 어떤 과정에서 지금의 지구를 이루었는지 알 수 있을 지 모른다. 

만일 그 과정을 알게 된다면 지구라는 별이 우리에게 선믈한 이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45억년의 과정에서 가장 좋은 우연으로 성공시킨 천국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는 지 모른다. 더 많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충족이라는 의미가 어디까지 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의미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구를 보다 잘 보존시키는 것이다.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막아야 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 또한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코스코스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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