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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한 달 안에 해야 할 일

#09 과거의 흔적을 정리하세요

by 경아로운 생각

내 방 책상 서랍을 열었다. 두꺼운 파일 속에 명함이 가득했다. 하나씩 꺼내어 펼쳐 봤다. 협력업체 사람들, 참가했던 전시회 업체 관계자들, 네모반듯한 명함이 수십, 수백 장이 넘었다. 한 장씩 넘겨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다시 연락할 일이 있을까.

퇴직하고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간만에 회사 동료한테서 연락이 왔다. 솔직히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간단히 안부를 확인한 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다 지나간 회사 얘기가 고작이었다. 불현듯 더는 연락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친한 동료들도 비슷했다. 회사에서도 각별했고 퇴직 시기도 같은 동료들과 처음 몇 달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달이 멀다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하지만 점점 연락이 줄어들었다. 특별한 안건도 없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민망했다. 그렇게 천천히 관계가 끊어졌다. 긴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이었는데 퇴직하니 남이 되어갔다.


명함 통을 다시 봤다. 이 명함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추후로는 연락할 일도 없을 테고, 연락해도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니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퇴직 후에 명함은 그냥 종잇조각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명함을 보면 감상에 빠져들었다. 회사를 떠난 지가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그 안에 적힌 사람들을 만났던 그때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인사를 나누던 당시의 분위기, 미팅 전후에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정, 일을 마치고 함께 식사했던 상황까지, 모두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떠올랐다. 명함을 뒤적이다 보면 괜스레 센티 해졌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추억이란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상기하면 할수록 나를 과거에 빠져들게 했다. 대표적으로 명함이 그랬다. 보면서 ‘그땐 좋았는데...’ 하는 아쉬움만 대뇌이게 했다. 하지만 그곳은 더는 가서도 안 되고 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큰맘 먹고 명함을 버리기로 했다. 몇 장을 남겨 둘까, 고민하다 남김없이 처분하기로 했다. 마음이 쓰라렸지만 애써 다잡았다. 인정하기는 싫었으나, 이제는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몇 번 손으로 찢은 명함을 재차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는데 울컥했다. 수십 년 삶의 잔재를 한순간에 떠나보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또 다른 서랍도 열어봤다. 그 안엔 회사 관련 물건들이 가득했다. 사원증, 다이어리, 각종 기념품들, 역시나 그득하게 들어 있었다. 사원증을 보는 데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 이름표를 달고 자랑스럽게 일했던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떠나보내자.’ 단단히 결심하고는 사원증도 버리기로 했다.

이후 회사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을 차례대로 정리하였다. 옷장에 걸려 있던 출근용 재킷, 신발장에 놓인 반짝이는 구두, 모두 처분하기에 앞서서는 고민이 되었다. 혹시나 쓸모가 있지는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내 행동을 가로막았다. 몽땅 다 처분하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희한했다. 이상하게 과거의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분명 아쉬웠는데 점점 기분이 나아졌다. 쌓여있던 미련도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버리고 나면 그리도 후련할 것을 잠시나마 움켜쥐고 있었던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주변이 정돈되자 공간이 넓어져서 두 배로 상쾌해졌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나를 옭아매는 이전의 불필요한 관계들도 훌훌 털어버릴 용기가 생겼다.

지난 흔적을 정리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퇴직은 떠나가는 게 아니라 떠나보내는 거였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었다. 명함을 버린 자리에는 새로운 관계를, 회사 물건을 버린 자리에는 새로운 물품을 끼워 넣을 자리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기대감도 자라났다. 지금부터 무엇으로 채울까. 우선은 과거에서 빠져나와 앞만 바라보자는 작은 다짐부터 담아 보았다. 결국 떠나보냄이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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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공간, 이렇게 정리하세요

· 무엇을 정리할까요

-명함, 사원증, 다이어리 등 업무 관련 사무용품을 정리하세요.

-출근용 옷, 사무실용 슬리퍼 등 회사와 연결된 생활용품도 대상입니다.

-노트북에 있는 일에 관한 자료도 포함하세요.

· 어떻게 정리할까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으세요.

-조금은 남길까 하는 마음도 접어 두세요.

-모두 다 버리기로 결심하되, 속도는 조절하셔도 됩니다.

· 정리하고 나서 무엇을 할까요

-정리 후 공간이 넓어진 것을 확인하세요.

-홀가분해진 마음도 느껴보세요.

-비워진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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