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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22. 2024

황도와 적도의 교점에서.

추분, 그 공평한 날.


24 절기를 좋아한다.

(중국에서 유래하였고 전부 한자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음력이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는데, 엄연한 황도좌표계의 경도값으로 나누어진 시기로 양력 기준에 가깝다.)

음력처럼 날짜가 들쭉날쭉 하지도 않을뿐더러,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미신과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며, 정확한 황경(經度)때문에 기후까지 척척 들어맞는다.


그중 추분은 내가 좋아하는 절기 중 하나이다.

동지로 가는 길목이며, 적도좌표계와 황도좌표계의 교점이 되는 지점이다. 선과 선이 만나 다시 점이 된다는 것. 점으로 만들어진 선이 다시 점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무엇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딱 자른 듯이 공평하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커다란 천체들의 움직임을 새삼 느끼며 다소 숙연해진다. 더불어 추분이 데려온 가을의 온도와 습도를 피부가 느낀다.

지구의 자전축의 기울임과, 타원형의 지구공전 궤도에 의해 모든 것이 변하게 된 것이다. 기단의 움직임이 그러하며, 대기 대순환이 이를 반증한다. 대기 대순환의 하부층 아래서 우리는 옹기종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조량이 감소하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할 것이고 대륙풍에 의해 우리는 또 겨울로 파묻히게 되겠지.

그 첫 번째 단추가 오늘 채워졌다.


이토록 공평한 교점의 시간에서, 이토록 평등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과연 안팎으로 균형을 맞추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해양풍에 휩쓸려 살았다면 이제 적절한 대륙풍으로 중도를 지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24 절기가 넘게 출렁여왔던 파고를 조금 잠재우고, 내면을 바라볼 차례이다. 내 파도에는 나의 선박뿐 아니라, 너의 배, 내 아이의 뗏목, 그들의 튜브 또한 함께 출렁이고 있기 때문에.


아, 오늘부터 밤의 시간이 도래하는구나.

밤이 낮을 야금야금 먹어가는 첫날밤이다.

아늑한 네가 잠식해 온다는 것을 반기며, 혼자서 작은 축배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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