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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20. 2024

극야(極夜)의 시간

#1

꿈속의 너는 極夜의 태양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난 누군지도 모르는 네가 그리운 나머지 지구의 축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해를 찾았다. 새벽녘이 다가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내가 기다리던 정오의 시간은 희미한 새벽녘에 불과했고, 난 네가 영영 떠오르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쓰레기차가 요란하게 삑삑삑 대며 후진을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는 문득 9월이 다 지나가도록 오지 않는 가을이 야속했다. 그러다 가을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백야가 오기 전에 극야를 찾아 다시 남극으로 걸어야지.


#2

발송인 불명의 상자가 배달되었다. 나의 나락다락이 되어주겠다는 가사가 적힌 종이 한 장과, 서투른 아이의 포옹이 담겨있었다. 노랫말과 포옹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웠다.

어리둥절하는 나를 개의치 않는 아이는 상자에서 나왔다. 그리곤 곧장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나를 꽉 안아주었다. 덩달아 꼭 껴안은 아이의 등은 작고 작고 여렸다. 나에게 매달린 아이에게서 삶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버거운 무게였지만, 나를 눈물 나게 했다. 반은 너를 닮고, 반은 나를 닮은. 나의 아이였다.


#3

며칠 전 와인을 한병 가져오신 아버지는, 고가의 와인이라고 특유의 호기를 부리시며 와인을 개봉했다.

모두가 사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삶에 만취된 우리의 잔에 첨잔을 하셨다. 와인과 삶이 섞이자 먹을 수 없는 맛이 났다.

아버지는 향이 어떠냐며 재촉하셨지만, 우리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홀로 있는 밤 코르크마개를 억지로 집어넣은 그 와인을 다시 꺼냈다. 인터넷에서 와인의 가격과 산지를 굳이 잔인하게 확인한 나는 실망감과 안도감에 주저 앉았다. 와인잔을 꺼내 연거푸 두 잔을 한 자리에서 마셨다. 

취기가 올라왔다. 별것인 것들이 별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달달했던 와인은 금세 드라이 해졌다.


#4

극야 속의 택배. 그리고 와인. 오지 않는 가을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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