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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ug 29. 2024

55364에서 55454로.

우리 학교이야기.

교사 80명에 담임 50 비담임 30명인 우리 학교. 오늘 교직원 명단 스크롤을 몇 번씩 올렸다 내렸다 했다.

혹시 도움을 요청할 이가 있을까 싶어서.


며칠 전부터 슬슬 아프겠다 싶더니 아침부터 오한이 돋았다.

팔부터 시작된 근육통에 감기몸살이 왔구나 했다. 아니나 다를까 38도.


급한 마음에 코로나 키트로 음성임을 확인하고 출근을 했다.

문제는 집에 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1. 병가로 조퇴를 하면 다음날부터 빠진 수업을 메꾸어야 한다. 보강 따윈 없다. 이해한다. 악용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니.

2. 목요일 창의적 체험시간 두 시간이 오롯이 담임시간이다. 그래 이해한다. 담임수당 받으니까.

3. 3일 연속 병가가 아니면 대신 수업에 들어가 주시는 선생님께 보강비도 지급되지 않는다. 부탁하지 말란 이야기.


그리하여 나는 오늘 수업 여섯 개를 버텨야 한다. 

친한 선생님께 부탁할 만도 하지만, 사실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엄연히 담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 분위기이다. 

부담임이 아닌 2 담임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학교 분위기에 기겁하였으니, 뜬금없는 6,7교시를 아무런 연고 없는 이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스크롤을 몇 번씩 올렸다 내려도, 흔쾌히 담임시간 2시간을 맡아줄 이는 없었다. 그럴 수 있어. 비담임인 대신 그들은 업무지원팀이니. 담임시간 2시간은 나의 몫이니까.


그래도

따뜻하고 공정했던 학교가 그리웠다.

어째 글만 쓰다 보면 향수병 타령이냐 싶겠느냐만, 이건 나의 탓이라기보다는 거대학교의 단점이라고 본다.


그저 아플 때 만이라도 마음 편히 집에 갈 수 있는 학교.

2 담임이면 당연히 업무의 반을 가져가주고, 돕는 게 아닌 함께 담임업무를 나눠하는 학교.

누군가 떠난다면 슬프고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과 함께 이별할 줄 아는 학교.


모듈러에 난 창으로 본 학교는. 마치 거대한 수용소 같았다. 

그저 무탈하게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곳.

인간적인 따뜻함과 동료 간의 의지와 기댈 수 있음을 바랄 수 없는 곳.

내가 버텨야 할 곳.


아파서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그리워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선택에 따른 후회 때문인지.

코끝이 시큰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어쩌면 집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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