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건물 안으로 들어온 그림자가 유난히 붉다 오늘은.
길게 변형된 창틀의 형태가 눈이 부시다. 너는 눈을 조금 찌푸린다. 잊고 있던 미간의 주름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눈을 찌푸린 채로 시집을 한 손에 들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른다.
턱이 높은 계단 때문인지 이 건물에 오고나서부터는 무릎이 종종 아프다. 너는 으레 나이 탓을 하겠지만, 건물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무릎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시름 놓는다.
곧장 드르륵 하고 사무실의 문을 연다.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네 자리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앉는다. 떨어진 일조량으로 건물과 창밖풍경이 변한다. 인상주의의 한 화가처럼 그 광경을 눈에 담아본다. 모든 색에 붉은색을 덧입힌다.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채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침착해야만 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 위해 너는 오른쪽 목덜미를 만져본다. 꿈에서 항상 만져지던 커다란 총자국은 없다. 그 구멍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깊고 컸다. 총을 맞은 지는 꽤 된 것 같다.
지난봄이었나, 꿈속에서의 너는 이 건물의 작은 현관에 딸린 세 칸짜리 계단에 웅크리고 있었고, 누군가 총을 겨눴다. 그 일은 매우 순식간이어서 너는 미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꿈이라서가 아니었다. 사방으로 튀는 피 냄새는 생생하게 맡았기 때문이다.
너에게 총구를 겨눌만한 사람을 너는 손을 꼽아보았다. 열손가락이 넘어갔다. 네가 송두리째 모든 걸 빼앗은 이, 네가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 이, 네가 미치도록 멸시한 이, 네가 뜀틀처럼 뛰어넘어 선 이, 네가 뒤통수를 친 그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중에는 너의 가장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가 울고 싶을 때마다 꿀꿀거리며 꼬마돼지 흉내를 내며 너를 웃게 했던 사람이다. 넌 그 사람이 네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널 보지 않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술래를 등지는 사람처럼.
너는 확인해야만 했다. 너의 목에 구멍을 낸 사람을.
조립식 건물이 밤에 잠식되기를 기다렸다. 모든 이들이 잠든 후에 너는 살금살금 총을 맞았던 자리를 찾아 삐걱거리는 계단을 다시금 내려갔다. 아까의 붉은 채광대신 흐릿한 네 그림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현관 밖은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불면의 거칠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밤이었다. 두려움과 기시감에 불안해하는 너를 알아봐 주는 이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런 불안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결국 건물밖의 세 칸짜리 계단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총구를 겨눌만한 곳을 눈으로 더듬다가 문득 빨간색 건물 옥상의 환풍구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그가 서있었다. '꿀꿀'을 '꿀클'이라고 이야기했던 그 사람이.
너는 슬펐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태없이 왼쪽 목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