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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24. 2024

꿀꿀과 꿀클


조립식 건물 안으로 들어온 그림자가 유난히 붉다 오늘은. 

길게 변형된 창틀의 형태가 눈이 부시다. 너는 눈을 조금 찌푸린다. 잊고 있던 미간의 주름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눈을 찌푸린 채로 시집을 한 손에 들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른다. 

턱이 높은 계단 때문인지 이 건물에 오고나서부터는 무릎이 종종 아프다. 너는 으레 나이 탓을 하겠지만, 건물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무릎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시름 놓는다.


곧장 드르륵 하고 사무실의 문을 연다.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네 자리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앉는다. 떨어진 일조량으로 건물과 창밖풍경이 변한다. 인상주의의 한 화가처럼 그 광경을 눈에 담아본다. 모든 색에 붉은색을 덧입힌다.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채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침착해야만 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 위해 너는 오른쪽 목덜미를 만져본다. 꿈에서 항상 만져지던 커다란 총자국은 없다. 그 구멍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깊고 컸다. 총을 맞은 지는 꽤 된 것 같다. 

지난봄이었나, 꿈속에서의 너는 이 건물의 작은 현관에 딸린 세 칸짜리 계단에 웅크리고 있었고, 누군가 총을 겨눴다. 그 일은 매우 순식간이어서 너는 미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꿈이라서가 아니었다. 사방으로 튀는 피 냄새는 생생하게 맡았기 때문이다.


너에게 총구를 겨눌만한 사람을 너는 손을 꼽아보았다. 열손가락이 넘어갔다. 네가 송두리째 모든 걸 빼앗은 이, 네가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 이, 네가 미치도록 멸시한 이, 네가 뜀틀처럼 뛰어넘어 선 이, 네가 뒤통수를 친 그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중에는 너의 가장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가 울고 싶을 때마다 꿀꿀거리며 꼬마돼지 흉내를 내며 너를 웃게 했던 사람이다. 넌 그 사람이 네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널 보지 않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술래를 등지는 사람처럼.


너는 확인해야만 했다. 너의 목에 구멍을 낸 사람을.


조립식 건물이 밤에 잠식되기를 기다렸다. 모든 이들이 잠든 후에 너는 살금살금 총을 맞았던 자리를 찾아 삐걱거리는 계단을 다시금 내려갔다. 아까의 붉은 채광대신 흐릿한 네 그림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현관 밖은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불면의 거칠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밤이었다. 두려움과 기시감에 불안해하는 너를 알아봐 주는 이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런 불안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결국 건물밖의 세 칸짜리 계단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총구를 겨눌만한 곳을 눈으로 더듬다가 문득 빨간색 건물 옥상의 환풍구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그가 서있었다. '꿀꿀'을 '꿀클'이라고 이야기했던 그 사람이.

너는 슬펐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태없이 왼쪽 목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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