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토포필리아(Topophilia)

by 한나

너는 이곳 창가에 앉아있다. 얼마만인지.

너는 너의 지층을 확인하러 이곳까지 온 것이다.

긴 시간, 바닷속에서 말없이 퇴적된 지층은 어느새 너의 일부가 되었다. 그 지층을 용기 있게 내려다보기 위해 너는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카페의 창가는 여전했다. 탁 트인 유리로 된 창에 네가 좋아하는 벚나무들의 가지가 보인다. 이곳은 사색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아래로는 산책로가 보이고, 각각의 서사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 뛰거나 걷는다. 너는 벚나무와 산책로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길 좋아했지. 그 사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넌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


이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아마 너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렸던 시절의 너를, 날것을 뱉어내던 너를 마주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사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카페의 공기, 음악, 따뜻한 커피의 맛, 겨울의 냄새까지. 공간은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져 있는’ 순간에 생기는 미세한 불일치로 너는 조금 긴장한다.


그렇게 너는 과거의 너와 마주 앉아있다.


그리고 과거의 너에게 상자를 건네받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속엔 화려하고 날카로운 심장이 들어있다. 너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때의 심장을 확인한 순간,. 과거는 더 이상 날카롭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따뜻한 감각을 재차 확인한다. 이제는 그때 쌓인 지층이 네 기반암의 한 층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너는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너의 시간을 천천히 현재로 가져온다. 동시에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리라이팅 한다. 그렇게 너는 과거의 너와 화해한다.


탈각은 늘 이렇게 조용하게 진행된다.


어쩌면 너는 이곳에 다시 온 것이 아니라, 이곳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지개가 뜨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