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의 3월

by 한나

8살 때부터 3월이면 학교를 갔다.

국민학교를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다. 학사로 졸업하고 그해 3월에도 학교로 출근을 했다. 여덟 살 이후로 지금까지 3월이면 학교로 갔다. 그 시간이 벌써 서른 해를 훨씬 넘긴다.


개학하기 일주일 전부터는 잠이 잘 안 왔다. 머릿속에 할 일들이 쌓이면 해치우기 전에 잠을 잘 못 자는 타입이다. 교탁에 좌석표 붙이기, 아이들 1인 1역 정해서 게시하기, 사물함에 번호표 달아주기, 학급규칙 세우기, 교과목 프린트 만들기, 평가계획안 구성하기, 신발장 정리해 놓기, 아이들 사진파일 걷기, 학부모님 안내글 써놓기, 맡은 업무 스캐닝하기. 말해 뭐 해.

베테랑 교사가 아닌지라 개학 전에 모든 것을 끝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올해, 서른 해만에, 처음으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아이의 입학식에 갈 수 있다니. 매번, 출근하는 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느라 우리 아이들의 입학식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오늘 아이의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다니. 마음이 뭉클하다.

아이를 여유롭게 학교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니. 아침마다 그렇게 딸을 닦달했는데.

개학식 일주일 전부터 꾸던 악몽이 사라졌고, 식구들에게 부드러워졌으며, 심지어 자발적 옷장정리를 할 지경.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시간들을 빈틈없이 메꿀까 고민하다가 2개월을 보냈다. 자동차로 치면 정비소에 들어갔나 나온 셈이다. 엔진오일, 타이어, 브레이크와 배터리 점검을 모두 마치고 엑셀을 밟기 위해 운전석에 앉았다.


어떤 방향으로 핸들을 돌릴지, 어떤 속도로 나아가야 할지는 이제 내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

정비소에서 막 나온 차처럼 번쩍거리게 살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어디가 고장 났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삶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 피곤한데도 버티던 습관,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우기던 태도, 내 아이보다 남의 아이 걱정을 먼저 하던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아 보려고 한다. 그게 내 마흔 해짜리 3월에게 해주는 작은 예의 같아서.


앞으로의 3월들은 예전처럼 ‘학년 말–방학–새 학기’로 이어지는 순환이 아니라, 조금 더 나를 포함한 원형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교실 안에서 쌓아 올린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를 위한 달리기도 소중하니까.


어쩌면 이건 거창한 새 출발이라기보다,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맞는 제대로 된 방학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이미 다 돌아간 운동장에서 혼자 늦게까지 남아 있던 아이처럼, 나는 지금 비어 있는 3월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다.

여기서 무엇을 할지, 누구와 뛰어놀지, 어느 정도 숨이 찰 때까지 달릴지는 이젠 정말 내가 정할 수 있다. 아마도 무언가에 또 매진하겠지. 그것이 논문이던, 공부이던.


그 생각을 곱씹다 보니, 서른 해만에 처음 맞는 이 3월이 조금 덜 낯설고, 조금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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