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와 어린 딸. 늙은 어머니와 젊은 딸.
출근, 등교, 등원으로 모두들 바쁜 화요일 오전.
흔한 평일 아침에 가는 한가한 목욕탕은 아이가 5살 되던 무렵부터 나와 딸아이만의 특별하고 즐거운 루틴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시간에 어린이집을 땡땡이치고 집을 나섰다.
목욕탕을 좋아하는 여섯 살 딸은, 목욕 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가다가
쿵.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놓친 목욕바구니 속에 있던 샴푸, 린스, 비누, 칫솔들은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차가운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순간 넘어진 아이를 걱정하는 말보다 나무라는 말이 먼저 나와버렸다.
"목욕바구니를 들고 그렇게 뛰면 어떡해! 조심해야지!"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꾸짖은 게 미안해서, 뒤늦게 아이 손을 잡아본다.
"괜찮아? 뛰지 말고 엄마랑 손잡고 걸어가자."
엄마의 미안함을 눈치챘는지, 엄마 꾸중에 시무룩해졌던 아이의 표정이 다시 밝아진다.
동네 작은 목욕탕.
아주머니 두 분이 마침 목욕을 끝내고 나오시는 바람에, 딸아이와 나만 있었다. 노래도 부르고 샴푸로 미용실 놀이도 하며 즐겁게 목욕을 하는데, 한 모녀가 들어와서 우리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대략 40대 후반의 딸과 70대의 엄마.
동네에서 얼굴이 익숙한 분들이라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만 하고 아이를 마저 씻기는데
아이가 갑자기 얼음이 되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왜 그래?"
하고 뒤돌아 보니, 맞은편에 계신 70대 할머니가 갑자기 쭈그려 앉아서 큰 실수를 하셨고, 옆에 있던 할머니의 딸은 샴푸 중이라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놀란 나도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아구 아구"
내 목소리를 들은 그 딸이 재빨리 샴푸를 멈추고 나에게 묻는다.
"왜요 왜요??"
"아니, 할머니가.."
그 딸은 재빨리 본인 엄마를 보고 당황해서 말한다
"아.. 죄송해요.. 엄마가 치매예요."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죄송할 건 아니고요..."
오히려 내가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목욕이 끝나가던 나와 딸아이는 먼저 나왔고, 할머니와 그 딸은 뒤늦게 목욕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 할머니가 동네 마실도 자주 나오시곤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할머니 눈에 총기가 많이 사라진 게 느껴졌다.
그 딸은 목욕탕을 치우고 할머니를 케어하느라 기진맥진해 보였다.
처음엔 나도 놀라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들질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씁쓸해졌다.
딸아이가 목욕바구니를 들고뛰다가 넘어진 게 아이가 의도한 게 아니듯,
치매도 할머니가 의도한 게 아닐진대.
그런 아이의 실수를 나무랐던 내 인성이 부족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동네 할머니의 치매가 안타깝고,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