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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민석 Feb 12. 2024

과잉과 결핍

어떤 요소라도 과잉은 불행을 낳는다

부서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업무에 대한 기록을 남겨본다. (설계내용에 대한 기록은 올릴 수 없겠지만..)


부서배치를 받은 지도 3주가 넘어가고 있다. 현상설계 부서에 배치를 받아서 처음부터 업무량이 꽤나 많지만, 덕분에 업무와 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업무량이 많아서 10시 출근 10시 퇴근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일명 10 to 10인데 초반에는 점심, 저녁 먹는 시간을 제외한 10시간 동안 회사에 앉아서 계속 일만 한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적응하기 어려웠다. (10 to 10 보다도 훨씬 강도 높은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동기들도 있는데,, 모두 잘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까, 10 to 10 생활패턴에 점점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소화해 오던 작업량이 있어서 그런지 계속되는 야근이 있어도 생각보다는 할만한 거 같다는 생각에 무게중심이 실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체력이 한정적이기 때문인지, 재밌게 일을 하다가도 10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어딘가 모를 씁쓸한 기분과 허탈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지금의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지하철에서 곰곰이 생각했었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에까지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도 일이 재밌었다. 정말 미친 소리겠지만, 한 번씩 일을 하다가 팀장님이 10시에 퇴근하라고 하면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정이 넘치다가도 막상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갑자기 허탈한 기분이 밀려왔다. 속으로 혼자 이게 바로 조울증인가...? 나 조울증 초기 증상인가? 회사에 입사한지 3주 만에 조울증이 생긴 건가 싶었다. 


재밌게 일하다가 왜 퇴근만 하면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걸까. 이번 설연휴를 쉬면서 조금은 그 이유를 알게 된 거 같다. 일하는 게 재밌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야근과 주말출근이 내 일상이 될까 봐 무서웠던 거 같다. 야근이나 주말출근을 계속하는 게 무작정 싫다는 의미보다는, 일을 안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삶이 싫다는 의미에 가까운 거 같다. 약 2주 동안 업무시간인 10시부터 22시까지 12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계획을 가득 세웠으면서 막상 일이 없는 설연휴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생각보다 씁쓸했다. 일이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인가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라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찾아봤다. 휴학을 했을 때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새삼 놀라기도 했고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무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예전에 써둔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니, 이게 바로 기록의 쓸모구나 싶으면서 앞으로도 더 꾸준하게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요소라도 과잉은 불행을 낳는다." 2021년 휴학을 했을 당시 썼던 글이다. 

"어떤 요소라도 과잉은 불행을 낳는다."

2021년-2022년 1년간의 휴학이 설레면서도 불안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어떤 요소라도 과잉은 불행을 낳는다." 결국 휴학을 통한 시간의 과잉이 나를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이끌었다. 과잉이 결핍을 유발했다는 말이 정확한 것 같다. 시간의 과잉은 결국 결핍으로 돌아왔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 보니 뭘 해도 진정으로 즐길 수 없는 꺼림칙함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나의 휴학 생활은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며 그 사이 어디선가 머물며 지나갔다. 그렇게 인생의 두께가 만들어진 것 같다. 휴학을 했을 당시 질식할 것 같은 책임감을 이겨내지 못했었고, 더는 나아갈 에너지가 없었다. 이게 내 휴학의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미래를 위한 거창한 휴학의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중요한 걸 배웠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멈춰야만 진정 생각할 수 있구나.' 더는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가 없어서 멈췄지만 그 덕분에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진로이자 꿈이었지만, 그동안의 나는 주도적으로 앞으로 나아간 걸까? 아니면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떠밀려서 나아간 걸까? 쓸데없다면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 고민이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나에게 자유가 생긴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군대에 있었을 때도, 휴학을 했을 때도 말이다. 그 넘치는 시간이 전부 내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지만, 그 자유를 본인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치열한 의지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치열한 의지가 없다면 넘치는 자유에 발이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멈춘 김에 생각해 본다. 이 넘치는 자유를 온전하게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그렇게 간절했던 자유로운 하루하루가 왜 나를 조여 오는 하루가 됐는지 생각했다. 아직은 이 생각의 끝에 어떤 답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다. 이 고민의 끝에 어떤 답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생겼다.


예전에는 휴학을 하고 쉬고만 있는 내 모습에서 뒤처지고 있는 거 같은 불안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일만 하다가 쉴 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불안을 느끼다니 정말 중간이 없구나 싶다. 바보 같은 고민이 너무 많은 거 같기도 하지만, 이런 고민들이 있기에 조금 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업무시간에는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 이후에는 나를 위해 치열하게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야근을 하고 퇴근할 때 허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퇴근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야근하고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하더라도 그 잠깐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 체력을 위해 운동부터 시작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ㅎㅎ






2023년 7월에 적어둔 인생 즐기기 to do list를 오늘 다시 돌아봤는데, 정말 웃긴 게 많다. ㅋㅋㅋ 언젠가 전부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24.02.12 to do list를 추가해 본다.

To do list 추가사항 (2023.10.07)

+ 랜드서핑보드로 인천에서 학교 통학하기

+ 돌고래랑 같이 서핑하기...

+ 바다거북이랑 같이 서핑하기...

+ 전동 롱보드로 제주도 한 바퀴...

+ 스케이트보드장에 그래피티 (이건 불법인가?) 



To do list 추가사항 (2024.02.12)

+ 현상설계 프로젝트 끝나면 주말마다 웨이브파크 가서 서핑하기...

+ 평일에 칼퇴하면 바이올린 학원 가서 바이올린 연습하기...

+ 야근하고 집 가는 길에 한강에 내려서 새벽에 보드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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