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N GOGH THE IMMERSIVE EXPERIENCE ]
계속되던 야근과 주말 출근 끝에 프로젝트 휴가를 받았다. 프로젝트 휴가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강도로 계속 일한다면 3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넉다운 될 거 같았는데... 프로젝트 휴가를 받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 정도면 할만하지!! 이런 맛에 현상설계를 하나보다. (심지어 당선까지 됐다)
프로젝트 휴가를 받은 김에, 평소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갔었던 전시를 보고 왔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빈센트 반고흐의 전시 [반고흐 더 이머시브] 대학생 때부터 미디어 파사드, 미디어 아트, VR과 같은 요소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관심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미디어와 관련된 공간을 건축적으로 바라본다면 아무것도 없는 큐브 공간에 미디어 파사드와 빔프로젝터만 있으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미디어와 관련된 공간을 건축보다는 설비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생각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았던 거 같다. (나도 미디어 관련 공간이 설비에 가까운 영역이 맞는 거 같긴 한데, 이러한 영역 또한 건축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 시절 미래의 학교를 주제로 설계를 진행했을 당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VR 기기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미래의 교실이라고 주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의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수업을 각자 집에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학교 공간은 미래의 새로운 VR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로 비대면 줌 수업이 본격화된 요즘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등장하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온라인 수업이 가능한 방법이 존재하더라도 오프라인 수업을 두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던 거 같다. 그 밖에도 빈 교실에 VR 기기 하나 두고 공간계획을 끝냈으니 도면에서도 뭔가를 표현할 게 없었다. 건축계획적으로 봤을 때 내가 계획한 것은 책상과 의자로 가득하던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비워내고 VR 기기만을 추가한 게 전부였던 설계였다. 그렇게 설계를 끝냈었다. 정말 그게 미래의 교실이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다. 지금이라면 뭐라도 있어 보이도록 만들었을 거 같은데. 그때는 멍청했던 건지 순수했던 건지,, ㅋㅋㅋ (사실 귀찮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었지만, 당시에 정말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스스로 정말 파격적인 컨셉이었다며 만족했었던 거 같다. ㅎㅎ
그런데 실제로 요즘 미술관에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VR 기기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번 [반고흐 더 이머시브] 전시장에서도 VR 기기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학교랑 미술관의 결이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모습이 실제로 만들어졌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상상하며 돌아봤는데 생각보다 썩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옆에서 안내요원이 지켜보고 있더라도, 타인에게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서 VR 기기를 쓰기가 꺼려진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 같다. VR 기기를 쓰면 다른 차원의 공간을 경험하게 되지만, 현실의 내 몸이 타인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그런지 VR 속 공간에 완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조금은 불안한 느낌이 강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방문했을 때 내 주변에 VR 기기를 쓰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내가 VR 체험을 하게 되면 타인의 시선에 저런 모습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VR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 뭐 이런 모습까지도 일종의 전시라면 전시겠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더 수준 높은 몰입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VR 기기 속 공간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VR을 직접 쓰는 현실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코인노래방처럼 되는 모습은 너무 폐쇄적일 거 같고... 적절한 프라이빗을 보장받으면서 개방적이면 좋겠다는 느낌...말은 참 쉬운데... ㅎ)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데 나는 글을 쓰게 되면 서론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같다. ㅎㅎ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반고흐 더 이머시브] 전시 후기를 남겨보겠다.!
처음부터 아쉬운 부분을 말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전시 입장권 판매 방식에서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일반 입장권을 나이 혹은 단체 여부에 따라 나눠서 결제하는 방식은 이해가 갔지만 플렉스 입장권이라고 따로 만들어서 일반 입장권보다 비싸게 파는 것을 보고 뭐지? 싶었다. 일단 이름부터 없어 보여서 마음에 안 들었다. 도대체 플렉스 입장권이 뭐길래 돈을 더 받는 건지 알아봤다.
일반 입장권은 본인이 입장할 시간을 사전에 미리 정해서 예약한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는 반면, 플렉스 입장권은 입장시간을 따로 예약하지 않는 방식이다. 돈을 더 내는 대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시간이든지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다. 코로나 이전의 미술관을 생각해 보면 사실 미술관을 예약하고 간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거 같은데, 요즘 들어 미술관이 너무 상업적인 마케팅을 당연하다는 듯 펼치고 있는 거 같아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다. 전시장의 쾌적함을 위해서 입장시간과 인원에 제한을 두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거기에 이어 돈을 더 지불하면 아무런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판매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금전만능주의를 광고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뭐든지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속에서 잠시 여유를 찾기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조차 돈을 더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다면 세상이 너무 갑갑하지 않을까. 미술관만큼은 그냥 도시를 거닐다 들어갈 수 있고, 잠시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는데 'VIP 입장권'이다. VIP 입장권은 앞에서 말했던 VR 체험이 포함(일반 입장권을 결제한 사람이 VR 체험을 원할 경우 현장에서 4,000원 결제) 되고 VR 체험 이용자가 많은 경우 VIP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이 우선권을 가진다고 한다. 감성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신중해야 하는 예술계에서 이런 방식의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관람객의 VR 체험률이 낮아서 입장권을 분리했다고 보더라도 VIP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전시 관람의 우선권을 준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오늘 반고흐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에 방문한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 아이들이 이런 입장 방식을 보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만은 배우지 않았기를 바란다. 플렉스 입장권이나 VIP 입장권으로 입장해서 좋았다는 사람들의 리뷰를 보며 내가 현실과 동떨어져 혼자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조금은 걱정 됐던 하루였다.
앞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을 신나게 말했지만... 전시 자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이런 규모의 미디어 공간 작업에 꼭 한번 참여해 보고 싶을 정도로. 특히 영상으로 제작된 미디어 아트여서 그런지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분열증을 표현한 부분들의 전달력이 정말 높아서 인상적이었다. 추가로 반 고흐의 그림으로만 이 정도의 영상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아티스트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스크린 뒤에서 노력한 사람들도 반고흐만큼의 명성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람했던 전시였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아마 별 것 아닐지도 몰라
물론 나야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별을 볼 때면 언제나 꿈꾸게 돼
난 스스로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걸까?
늙어서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게 되는 걸까?..
러빙 빈센트_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고흐 그에게 있어서 성공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까지 걸어서 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물리적인 제약 없이 끝없이 걸어간다면 언젠가 밤하늘에 떠있는 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은 저명한 사실이지만 인간의 수명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 바닥 중의 바닥의 삶을 살았던 빈센트에게 있어 성공이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현재는 인간의 수명을 다한 빈센트가 하루빨리 원하던 별까지 도달해서 평온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미 도착했다면 더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