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아닌 행동이 필요한 순간
‘Whales and I: 고래와 나’展
이번 전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포유류인 고래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로, '고래는 곧 인간인 나와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90여 종의 고래 중 4종 '향고래, 혹등고래, 범고래, 벨루가'에 대한 자연 과학적 특징을 알아보고, 그들의 일상적 삶을 SBS 제작진이 국내 최초 수중 8K로 촬영한 모습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고래가 처한 환경 문제를 돌아보고, 동물과의 상생 필요성 등 사회 공공의 가치를 느껴보세요.
고래의 키스부터 잠자는 모습, 아기고래가 장난치는 모습 등 다양한 고래의 일상을 최대 가로 약 15미터의 대형 스크린으로 실감 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고래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니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를 방문해 보세요. _ PARADISE ART SPACE
전시장 입구 바닥에는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관람객은 재생되는 영상 위를 걸어서 전시장으로 진입하게 된다.
'높고 가파른 것이 산과 같았다.'
조선시대 고래를 처음 본 사람들의 표현이다. 마치 움직이는 산, 혹은 산보다 더 크게 묘사된 그림에서 얼마나 장엄하고 우뚝했을지 목격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고래를 움직이는 섬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꽤나 재밌다.
고래가 수면위로 비상하는 이유로 전문가가 추측하는 세 가지. 1. 가족, 친구들에게 자신의 위치에 대한 알림 기능 2.몸에 붙은 이물질, 기생충 제거를 위한 샤워, 목욕 3.무리와의 놀이,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행동 중에서 개인적으로 3번이 정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계속해서 미디어 전시장을 다니면서 빔프로젝터만 보고 다니는 거 같다. 이번 전시장은 3개의 빔프로젝터로 미디어 영상을 재생시킨 거 같은데, 빔프로젝터가 서로 겹치는 영역을 어색하지 않게 연출하는 방법은 여전히 신기하고 궁금하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전시 또한 결국 전시를 통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멋지다.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지구를 보호하자는 전시를 기획하고, 에코백을 만들고, 굿즈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뱅크시의 [풍선 없는 소녀] 작품이 전시됐던 가벽을 리사이클링 하는 작가의 노력처럼, 구호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전시 관람이 끝나면 처음 고래 영상이 있었던 입구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봤던 고래지만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갈 때 보이는 고래의 모습은 처음 봤었던 고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모습이다. 자유롭게 헤엄치던 고래의 물장구가 이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장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의 고래 앞으로 돌아왔듯, 인간이 지구를 망치는 행위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최종적으로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고래 위로 걸음을 옮기며 다시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된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다시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지구를 위한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