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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학수 Feb 25. 2024

새해 결심에서 우리가 놓치는 한 가지

목표에 도달 못 해도 실망할 필요 없어

“술을 적게 마시고, 담배를 끊고, 낯선 사람에게 황당한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여자 주인공 브리짓은 신년 가족 파티에서 새해 결심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새해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직업적 스킬을 개발하거나 나쁜 습관을 없애고자 하는 열망을 새해 결심으로 집약한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새해 결심에는 좌절이 흔히 따라다닌다. 좀 의지가 약한 사람은 새해가 10일만 지나면 예전의 자기로 돌아가며, 한두 달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들면서 세웠던 목표를 포기하고 새해 결심 자체를 망각하고 만다. 이런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면 사람들은 자신감이 줄어들고, 아예 새해 결심 자체가 쓸데없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하지도 않게 된다. 위의 사례 외에 체중을 6㎏ 줄이고, 토익 점수를 800점 넘기겠다는 등의 목표도 새해 결심의 흔한 유형이다. 그런데 그런 목표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새해 결심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목표는 가치를 지향한다.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는 것은 목표이며, 이 목표는 건강의 가치를 지향한다. 토익 점수를 800점 넘기겠다는 것은 목표이며, 이 목표는 영어 능력 개발의 가치를 지향한다. 브리짓은 새해가 되면서 일기장에 매일매일 체중과 피우는 담배 개수, 그리고 마시는 술의 양을 적는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을 제어하고자 하는 것은 목표이며, 그것은 남자로부터 관심을 받아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관계의 가치를 지향한다.


현대 사회는 목표만 지나치게 염두에 두다 보니 자주 가치와 목표를 혼동하는데, 이 둘은 다른 개념이다. 여행에 비유하면 가치는 여정의 방향이며, 목표는 여정에서 거쳐 가는 도시이다. 우리가 부산에서 서쪽으로 여행한다면 진주와 여수는 목표이며, 서쪽 방향이 가치이다. 목표는 도달할 수는 있지만, 가치는 도달할 수 없다. 모든 도시에 도달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서쪽으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여전히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하려는 목표를 한 달이 지나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건강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으며, 3일에 한 번 30분씩 운동하더라도 여전히 그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브리짓은 새해가 들며 결심한 절주와 금연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출판사에서 방송국으로 이직하는 등 다른 방식을 발견하여 매력적 여성이 되어 간다.


사람들이 각자 추구하는 가치는 다양하게 보인다. 그런데 모든 가치를 하나의 단어로 통합하면 그것은 행복이다. 무엇이 행복인지 철학사에서 크게 두 개의 입장이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이며, 다른 하나는 에피쿠로스학파이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을 쾌락이라고 간주한다. 행복에 관한 이런 사상을 쾌락주의라고 부른다. 쾌락주의자는 관능적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으로부터 산속에서 고행하는 수행자에 이르기까지 정반대로 보일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간다. 쾌락에는 종류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적극적 쾌락은 승리나 음주에서 오는 환희나 유쾌한 상태이며, 소극적 쾌락은 불안이나 고통의 부재에서 오는 덤덤한 마음 상태이다. 우리가 새해 결심처럼 목표를 높이 설정하면 달성에 실패하기 쉽고 실패에는 좌절의 고통이 따라온다. 에피쿠로스는 적극적 쾌락을 향유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목표를 낮추고 욕망을 줄여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는 인생 전략을 세웠다. 목표가 별것 없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그러면 당연히 좌절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행복을 인간적 역량의 발휘라고 간주한다.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점은 독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고 탐구하며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는 지성 즉 이성의 역량이다. 이 능력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개발하지 않고 썩히며 사는데 그런 부류의 인생은 동물의 삶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계속 지성을 개발하고 활용하며 산다. 이런 삶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지성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수록 인생은 더욱 행복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확신한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어떻든 새해 결심은 궁극적으로는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망에서 나온다. 실패가 그런 노력에 자주 동반하더라도 우리가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돌아가더라도 가는 것이고, 늦더라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부산일보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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