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청년마을, ‘광광스토리지’ 양세은 청년 이야기
“광산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너무 뻔하잖아요.”
인생의 우여곡절을 경험하고 태백에 이주한 양세은 청년은 청년마을에서 청년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빛나는 ‘결과물’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년들 또한 자신을 발견하며 더 반짝이게 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 더 많은 청년들이 태백의 숨어 있는 빛과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빛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Q 태백에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지금 태백 이주한 지 9개월 된 큐레이터이자 ‘광광스토리지’ 청년마을 운영 파트너 양세은입니다. 홍보와 소셜미디어 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문서 관련 계약서나 협약서 같은 내용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태백을 처음 와봤어요. 그전까지 저에게 강원도는 어릴 때 가족들과 여행 다니던 바닷가, 석탄이 나오는 곳 정도로 알고 있다가 지인이 있어서 태백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어요. 청년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건 따지지 않고 바로 왔어요.
얼라이브러리(ALIVERARY) ‘기억을 모으는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를 다섯 작가들과 함께 했어요. 저는 글을 쓰며 옆에서 관찰하는 작가로 참여하며 그 과정에서 김신애 대표가 당시에 하고 있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아 이주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Q 태백 또는 청년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는 제가 더 이상 청년의 나이가 아니어서 많은 기회들이 제한되는 경험을 했어요. 지원 사업이 있더라도 청년들에게 더 기회가 많은 것 같고 저희는 누릴 수 없는 중간 세대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몇 년 외국 생활을 하다 돌아왔는데 다시 적응할 때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태백을 알게 되었을 때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시기 상으로 이런 공동체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원래 패션머천다이저(패션MD, 패션의 상품 기획에서 판매까지 담당하는 전문인)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겪었어요. 10년 뒤 2019년도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번 생 ‘뭐지?’ 황당하기까지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두 번이나 병에 걸린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사명감이 느껴졌어요.
원래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불확실하고 한정된 생의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 커뮤니티를 찾다가 암 인식 개선 및 암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활동하면서 커뮤니티가 조금은 강하고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저랑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두 번의 아픔을 겪고 단순 질병 암이 아닌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종류의 아픔을 가진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모든 생명체를 품고 아파하는 지구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나와 마침 당시에 김신애 대표가 ‘남쪽모서리’라는 커뮤니티를 구성해 청년마을을 준비한다고 들어서 태백에 오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니 항상 살던 도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이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저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긍정적이게 변화하는 것에 대해 항상 고민을 했어요. 이 일을 태백에서 더 임팩트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Q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중요한 가치는 예술 문화로 지역사회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에요. 그로 인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더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그리고 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환경을 덜 해하는 모습으로 다음 세대한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했는데 패션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IT 쪽에 취직할 때 저 혼자 양장기능사 자격증 따고 결국 패션 머천다이저가 되어 10년 정도 일을 했어요. 영국에서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예술에 대해 제가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있어요.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고 철학을 공유하고 창작자가 어떤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기본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넘어 저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무엇보다도 강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해요. 큐레이터로서도 ‘쉬운 길’을 가지 않기 위해 버텼던 이유도 이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환경도 영국에 있을 때 지역의 환경단체를 우연히 알게 돼서 자원봉사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우리가 지구를 잠시 빌려 쓰고 있는데 사람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함부로 쓰고 있어요. 우리가 다른 생명들에 해를 끼치고 그 해가 코로나와 같은 것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제가 겪은 암 또는 다른 질병과 다를 게 없어요. 그래서 환경보호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Q 앞에서 말씀하신 ‘쉬운 길로 가지 않으려고 버텼다’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패션상품기획자로 했던 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제품에 관심을 가지고 매출이 많이 나올까 고민하는 일이기에 창의적인 동시에 상업적인 일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들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제가 총괄일 때는 어떻게 하냐에 따라 사람들 월급이 달라지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갑’인 사람들을 접대하고 1%의 수수료를 어떻게든 깎아 내는 행동들을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좋아하는 패션이 창의적인 영역 안에서 머무를 수 없는 산업임을 결국 인정했고, ‘나는 이게 안 맞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좋아해서 시작했고 결과는 좋았지만 저는 돈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술기획으로 커리어를 전환했을 때도 상업적인 것들은 여전히 많았어요. 사적 소유가 기본인 상업 미술계에서 큐레이터를 했다면 안정되고 좀 더 쉽게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겠지만, 저는 아웃사이더처럼 저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해왔어요.
Q 환경과 예술이 광산문화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요?
2년 뒤 2024년쯤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광산인 태백 광산이 폐광이 돼요. 이건 굉장히 큰 이슈이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커요. 그 와중에 얼마 전 한 광업소에서 한 분이 매몰되셔서 돌아가시는 사고가 있었어요. 더군다나 광업이 자연환경적인 산업은 아닌 상황에서 환경 얘기를 하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이고 임팩트일까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태백 사람도 아니어서 더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큰 활동보다는 혼자 조용히 산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등 제가 하는 활동들을 포스팅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셨고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얼마 전 현직 광부님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인식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태백 황지천에서 아무도 물놀이를 안 해요. 그게 처음에 왔을 때 너무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옛날 광산에서 작업에 이용한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 황지천 물이 검정색이었고 지역 사람들에게 아직 그 인식이 남아있더라고요. 지금은 철저하게 정화처리 후 흘려보내서 물이 깨끗해요. 공식적으로 수질 검사를 했고 2급수가 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물놀이는 태백 밖에서’라는 강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광업소에서도 환경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최근에 환경 모임을 만들었어요. 조심스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필요한 자원을 아낌없이 나눠준 지구에게 빚을 갚는 일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렇기에 광산도시인 태백에서 더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태백이 마지막 남은 훼손이 적은 지역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그래서 지켜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강렬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광산문화를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예술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광산의 이미지 말고도 광산마을의 사람들의 이야기, 광산마을의 자연 등 소재로 연결 지어 볼 생각이에요. 생생한 스토리텔링을 해줄 지역작가들 뿐만 아니라 태백이라는 매력적인 환경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외부의 예술가들과의 작업도 가능하죠
Q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강하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의미를 어떻게 찾았는 지로 저의 이전 삶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대다수의 도시청년처럼 일을 무척 많이 했어요. 2년 동안 휴가 한 번 안 낼 정도로 삶의 90%가 일이었던 시기, 그리고 암 판정을 받고 이 악물고 치료했을 때. 그렇게 완치 판정을 받아 회사로 복귀했지만 극심한 좌절감을 마주하게 되어 우울증에 빠졌어요. 분명 치료는 잘 되었다고 하지만 저는 언제 죽을지 너무 불안했고 더 이상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저 만을 위해 살았어요. 매일 오가닉 음식만 먹고 백화점에서 살다시피 쇼핑을 하고.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어떤 계기로 회사에 불쑥 사표를 내고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미쳤다고 그랬지만 저는 절박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갤러리에서 ‘오필리어(Ophelia)’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여자의 평온한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제가 힘들어서 나쁜 생각까지 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그 여자의 눈빛을 다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술기획 쪽으로 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도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만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어요. 스스로 메시지도 던져보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털어놓아보고 심지어 철학관도 찾아갔어요. 그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됐던 게 그림 하나로 절망의 시간을 벗어났던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양한 힘듦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앞으로는 그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되었죠.
Q 그 일을 어떻게 확장해서 실행하게 되셨나요?
우연히 한 펍에서 한국전에서 싸웠던 영국 군인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듣게 되며
‘인생에서 강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까’에 포커스가 맞춰졌던 것 같아요.
직접적인 심리 치료가 아닌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미술관을 가거나 어떤 프로그램들을 함으로써 예술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궁금했고 이런 논문까지 쓰게 되며 알게 되었어요.
전달되는 메시지도 있겠지만 제가 경험했던 것처럼 개인적인 인터랙션이나 교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집단에서 공유했을 때 힘이 생기며 다양한 기능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나는 이걸 평생 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사적 영역의 미술보다는 공유하는 미술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이나 커뮤니티 기반의 아트 프로젝트, 공공미술 프로젝트들 중심으로 실행해왔습니다. 현재는 이곳 장성에서 "2022 소소한 동네 연구"의 지원을 받아 공공미술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나눔 받은 의류를 활용해서 주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하고 있고요. 결과물은 동네의 구조물에 설치미술 형태로 나오게 될 예정입니다.
Q 광광스토리지가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광산프로듀스 2기 외지 청년 중에는 가야금을 하는 팀이 있었어요. 1기 졸업식 공연 초대 공연자로 원래 오셨는데 그 경험으로 태백이 좋아 2기 참여자로 오신 거예요.
한 분은 무형문화재 가야금 병창 이수자이고 또 한 분은 버클리음대에서 타악기 전공하신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이에요. 그 두 분이 저희 태백 청년마을의 음악적인 아쉬움을 채워주고 싶다고 해서 리더 연희 님이 가야금 클래스를 열었어요. 그때 제가 ‘태백아라리’라는 곡을 처음으로 들었는데 광산이랑 관련 없는 사람들이 태백이라는 곳에 모여 전통적인 악기를 통해 그 문화를 느끼고 예술을 경험한다는 게 광광스토리지가 찾는 새로운 광산문화가 아닐까 싶어요.
반면에 태백 청년들 중 초를 만드는 청년, 유리 공예를 하는 청년들도 있는데 이 분들도 청년마을에 참여하면서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광광스토리지가 태백에 줄 수 있는 긍정 임팩트가 아닐까 생각해요.
Q 동네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태백 분들은 청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는 거 처음 봤다고 하시며 신기해하시고 저희가 뭘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으세요. 이처럼 청년들이 모여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주민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또 도와주시려고 한다는 게 변화 중 하나예요. 한 분은 직접 담그신 고추장이나 된장 이것저것 나눠 주시기도 하시고 공간들도 편하게 사용하라고 해 주세요.
Q 청년들이 이주를 생각하는 요소는 어떤 걸까요?
저도 처음에 미술관 큐레이터로 제안을 받았을 때 보수가 크거나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태백의 매력을 보았기에 오게 되었어요. 특히 내가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저의 경우, 11명의 ‘남쪽모서리 사업단’ 분들이 모두 환대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낯선 곳이지만 어색함이 없고 편안하게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청년들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가장 현실적이자 절대적인 요소인 주거, 일자리 등은 청년마을인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게 사실 많이 없어요. 하지만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해 대신 발로 뛰고 같이 무언가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마음을 느껴서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이주를 하는 청년들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청년들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세팅만큼이나 그들을 포용하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청년의 눈으로 콘텐츠를 기획했을 때에 다른 점들이 있을까요?
광산이라고 하면 클리쉐하게 떠올리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각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했을 때는 스토리들이 담기기 시작해요. 그게 다른 점인 것 같아요. 왜 이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이런 콘텐츠를 만들게 되었는지 생각했을 때 차이가 보여요.
예를 들어, 광부도시락이요. 양은냄비에 밥과 핑크 소시지가 들어간 도시락이 여러 광산도시에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중에 광부의 딸인 청년이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갱도 안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드시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해요. 지열 때문에 너무 더워서 땀이 물처럼 쏟아지고 항상 갈증이 났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런 서사를 통해 따뜻한 국물과 한방차를 정성껏 준비해 차별화되고 스토리가 담긴 광부도시락을 만들었어요.
광산프로듀스 1기 졸업식에 오신 손님들에게 대접해 드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타지에서 온 청년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여러 결과물들을 만들었어요. 어떤 프로젝트 모임에서 주민 어르신하고 같이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분이 70 평생을 여기서 살아서 모든 게 똑같고 뻔하고 갇혀 있는 것 같았는데, 청년들이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만 해도 너무 좋다고 하시면서 어떤 거든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Q 광광스토리지가 꿈꾸는 광산문화의 모습은 어떤가요?
광산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역의 내에서도 ‘광산’의 ‘광’자도 꺼내기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숨기고 싶은 역사, ‘사고’, ‘막장 인생’ 등 긍정적이지 않은 이미지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 재탄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태백이라는 곳이 저는 좋거든요. 매력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도 들으면 아는 그런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Q 광광스토리지가 내리는 광산문화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빛을 캐어낸다'는 것이 저희 광광스토리지의 캐치프래이즈에요. 태백의 광산은 전에 많은 것들을 캐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캐낼 게 없으니까 문을 닫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 여전히 캐낼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청년의 시각으로 봤을 때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묻혀 있는 거죠. 광산뿐 아니라 청년들의 잠재력을 캐내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했을 때 더욱 빛이 날 것 같아요.
지난여름에 도시재생 센터에서 ‘시민 큐레이터’ 강의를 했는데 제가 개설한 강의가 평소에 많이 들어왔던 수업과 달라서 신청자가 많이 없었어요. 응원차 첫 수업에 민우라는 청년과 몇 명이 수업을 들었는데 그렇게 수료까지 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미술에 이렇게 관심 있는지 몰랐고 수업 중에 잠재력을 발견했다고 해요. 이런 것이 새로움을 캐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가해요.
Q 청년마을은 세은님에게 어떤 존재예요?
‘원동력, 매개체’
제가 만약 청년마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태백을 이렇게 빨리 이해하고 애정이 생길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말의 뜻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청년마을 활동을 통해서 지금의 제가 되었어요. 참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 더 운이 좋게도 운영진이라는 입장에서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저도 똑같은 이주자니까요. 그리고 저는 당당하게 청년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청년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들이 있어요. 건강하고 에너제틱하고 진취적이고 이런 것들. 하지만 청년 중에도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혹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타인이 손을 내밀어 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도 있어요. 그들도 모두 청년이고, 그 존재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인터뷰에 응하고 ‘청년의 날’ 무대에서도 이런 메시지를 자주 전하는 것은 사람들이 용기를 가졌으면 해서예요. 생각해보면 저도 아픔이 있기에 많은 민폐를 끼쳐요. 하지만 암 2관왕인 저도 사회 구성원으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잖아요. 사람들마다 할 수 있는 능력치나 형태가 다르니 다양성들이 존중되는 그런 청년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청년마을에 변화에 능동적이고 열려있는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각각의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독특한 매력이 있는 태백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