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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Nov 22. 2022

젊은 황반변성들의 슬픔

27살과 33살의 대담

1년 전,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 과정 중에 있던 신규 공무원 몇 명이 우리 기관에 현장실습을 나왔다. 아쉽게도 내 연차와 일정이 맞물려 직접 지도를 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중 한 명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면담을 신청해 왔다. 그 이유는 그도 나와 같은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상태인 선배가 기관에 있다는 이야기에 그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게 면담을 신청해 온 것이다.


그는 여느 신규 공무원들이 할 법한, 임용 전의 막연한 두려움(내가 잘할 수 있을까?)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사회초년생으로서의 고민(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을 털어놓았고, 나는 'ㅇㅇ 그래 다 잘 될 거야~ 넌 잘할 것 같아~'라는 식의 라이프니츠적 낙관주의로 답변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도 나와 같은 황반변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만 6살 때부터 황반변성이 발현되어 20년 차에 접어든 황반변성 선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도 나도 같은 소속이라는 테두리 안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점에 기뻤던 것 같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면담을 마쳤고 그는 얼마 후 타 기관에 신규 임용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같이 밥 먹자고. 나는 순순히 OK를 날렸다.

1년 만에 만난 그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만 1년을 일했으니 그도 이제 직장 이야기로 나와 말이 좀 통하게 되어,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보다 5년 더 일한 나의 경험을 듣고 싶어 했다. 아직 자신에게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의 행적과 어려움과 그에 대한 대처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래도 선배로서 'ㅇㅇ 그래도 할만했어~ 너도 잘할 것 같아~'식의 라이프니츠적 낙관주의를 다시 펼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고민은 대부분 '눈'과 '업무'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잘 안 보여서 겪었던 어려움, 잘 안 보여서 어떤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했다든지, 잘 안 보여서 보고서의 오타가 자주 난다든지. 비장애인들이 들으면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공감'은 못하는 이야기.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본(아직도 하고 있는) 나는 이해도 되고 당연히 공감도 되었다. 안타깝게도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줄 수는 없었지만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들어주는 것만ㄷ으로도 그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나도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지 11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의, 나와 비슷한 상태의 친구를 만나기랑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후배가 나에게 꽤나 소중한 인연인 것 같다. 황반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황반변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어려움을 겪는 동지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새로운 황반변성 3, 황반변성 4를 만나 다양하게 이야기 나누는 미래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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