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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Jan 20. 2024

양산 안적암에서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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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희미해진 언젠가 겨울에 하얀 눈 보기가 참 귀한 여기 따뜻한 남쪽 꽤 높은 산 위에 눈이 살포시 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좁은 산 길을 오늘 타고 온 이 자동차를 운전해서 여기 이 깊은 산속 작은 암자(庵子)를 찾았었다.

이런저런 저 아랫동네의 크고 또 작은 일들을 속 깊은 친구에게 되뇌듯 말하고 싶어 온 기억이 말이다.

듣기만 해도 되는데,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그런 친구 같은 이를 만나러 여기 또 겨울비가 손이 시리도록 오는 토요일 이른 오후에 올라왔다.

눈이 아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자동차 지붕을 일정하지는 않지만 정겹게 떨어져 들리는 빗소리도 괜찮다.

고요하게 흩어져 따뜻한 기온에 금세 녹아 소리도 없이 흘러 또 흩어지는 눈보다는 아프지 않아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경남 양산(梁山)의 천성산 안적암(千聖山 安寂庵)이다.

천성산 안적암(千聖山 安寂庵)

편안할 안(安)에 고요할 적(寂)


뜻 그대로 편안하고 또 고요하다.

나름대로 다들 바쁘고 힘든 세상사에서 가장 필요한 뜻이 아닐까 싶어 여러 번 입으로 되뇌고 있다.


역시 천성산(千聖山)이 나오는 걸 보면 신라 원효대사께서 창건하신 암자(庵子)인 게 틀림없을 거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조선시대에  중창한 기록도 보이긴 하지만 이다.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대웅전(大雄殿)으로 오르려고 하니, 처마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백구 한 마리 사람이 그리운 건지 낯선 이가 신경 쓰이는 건지 연신 고개 돌려 쳐다보고 있다.

처마밑 비를 피하고 있는 백구

애써 피하던 비도 다 뿌리치고 내려와 비 맞아가며  연신 꼬리를 흔드는 걸 보니, 반가운 듯하여 다행스럽긴 하다.

아마 오늘 본 외지 사람은 내가 처음인 것 같아 나도 그 부담스러운 관심이 싫지는 않다.

늘 가지고 다니던 강아지 간식을 오늘 깜빡한 게 그저 미안할 뿐이지만 말이다.


전각(殿閣)은 대웅전(大雄殿) 하나가 전부인 듯 한 아주 작은 암자이다.

그래도 늘 절집에서 보던 대웅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흥미롭다.

대웅전(大雄殿)

공포(包)에 기둥하나인 단정한 주심포 양식(柱心包 樣式)에 날렵한 팔작(八作) 지붕이 늘 눈에 익은 조선시대 양반집처럼 보이더니, 부처님을 모신법당과 스님들 거주하는 방이 한 지붕에 방만 따로 위치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설명에는 조선후기 양반집 양식이라고 한다.

정말 그냥 옛날 집에 온 느낌 그대로다.


좁은 산길과 겨울비로 인해 토요일 오후 작은 산사는 온통 빗소리로 고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편안하다.

가끔씩 백구만이 고요를 잠시 흔들고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다.


먼 옛날 외할머니 집 툇마루 같은 대웅전에 앉고 싶었지만, 겨울비와 찬바람이 허락하지 않아 대웅전 안에서 여래(如來)와 추운 줄도 모르고 짧지 않은 눈 맞춤을 나누고 있다.


전각이라고 대웅전 하나인데, 허전함은 딱히 느낄 수가 없다.


떨어지는 비로 그 공간의 허전함이 희석되고, 빗소리로 또 그 공간을 채우고, 바람으로 또 남은 공간을 채우고, 하얀 개 한 마리로, 그 개의 반가운 짖음으로, 그 짖음의 대상인 나마저도 채우고 나니, 더 이상 허전함은 있을 수 없다.

비 내리는 냄새, 찬 겨울바람이 지나가는 냄새, 빗물이 모여 흙과 함께 조금씩 산아래로 흘러가는 냄새, 여래 앞 거의 다 타버린 작은 향의 가녀린 냄새로도 가득 채워져 있다.

또 이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오면 빨강, 노랑의 꽃향기가 내리는 빗소리에 스민 향, 스치는 바람향을 대신해서 채울 것이다.


너무 채워져 이제는 또다시 빈 곳이 필요해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비어 보이는 허전함은 단지 눈의 인지(認知)였을 뿐, 귀는 또 코는 그리고 머릿속은 가득가득 채워지고 있어 전각 하나뿐임의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은 거다.

안적암(安寂庵)

왜 많이 가지고서도 마음 한 곳의 허전함이 남아 있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다행스럽다.

허전함,  빈 공간 속에서도 수 없이 많이 채워짐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하니, 역으로 수 없이 많이 채워짐 속에서 허전함이 남을 수도 있다는 건 어쩜 당연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다.



또 보이는 것만 그저 보기만 하고, 듣지도 또 느끼지도 못하니 늘 허전함만 남을 수밖에 없는 거였던 게 틀림없다.


가장 직관적인 본다는 것에서 조금의 비어 있음도 허전함으로 느껴질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더 채워짐을 보고 싶은 욕심을 부리니 힘들어지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비었다고 보이는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도 있고, 바람도 있고, 향기도 있고, 고요도 있고, 사랑도, 그리고 또 알지 못하는 이의 배려마저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승방(僧房)에 걸린 사자후(獅子吼)

그래서 그 각각의 허전함들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음악으로, 조각으로, 춤으로, 노래로, 글로, 요리로, 스마트폰의 게임으로, 운동으로 우리는 우리를  채우려고 또 달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빈 곳이 많아야 채울 것들을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스친다.

그래서 큰 어른들께서 그토록 비움을 강조하셨고, 또 빈 것과 채움이 다르지 않다고 하신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아직 여러 욕심들비우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채움에 끝내 연연하고 있으니 한없는 부끄러움은 변함이 없다.

또 여러 가지 바람들을 여기 이곳 산사에서 소리 내어 바라고 있으니 말이다.


절집 일주문을 나오는데, 비는 계속 절 밖 높은 산을 아직도 다 채우고 있다.

나머지 공간도 옅은 안개를 머금고서 연신 또 채우면서 말이다.


한참을 앉아 여러 생각에 잠기다 내려갈 때가 되어 돌아 나오는데 아쉬운 듯 그 백구 소리 내 짖으며 따라 나온다.

일주문 밖까지 그 비를 맞으며 배웅하는 걸 보면 그 백구(왜 이름을 묻지 않았을까! 다음에 꼭 물어봐야겠다)는 사람이 그리운 게 맞다.

다음에는 꼭 강아지간식을 가지고 와서 이 녀석 그리움을 간식으로라도 달래주어야겠다.


한참을 내려온 산 아래 동네는 너무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산사의 백구같이 반기는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아 또다시 허전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저 산 위 친구 같은 백구가 내 마음에 채워져 있어 든든해진다.


그저 반갑게 짖고, 짧은 배웅을 받았지만 내 마음은 가득 채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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