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열기에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초파리 및 작은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면 집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던 길다란 물건을 꺼낸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전기 파리채다. 건전지가 수명을 다했는지 몇 번 눌러보며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벌레를 향해 휘두른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냄새. 여름은 늘 벌레와의 전쟁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열심히 치워도 여름의 부엌에는 늘 초파리 군단이 함께한다. 인터넷에서 초파리 덫을 여러 개 사봤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집 파리들은 그 물건에 관심이 없다. 싱크대에서 동시에 여러갈래로 흩어지는 초파리 군단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조용히 전기파리채를 든다. 파리채엔 듬성듬성 구멍이 나있다 보니 작은 초파리들을 한 번에 잡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도 요령이 생긴 나는 그들의 동선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이제는 능숙하게 잘 잡곤 한다. 때로는 한 번에 열 마리씩 잡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매우 큰 뿌듯함을 느낀다.
여름의 손님은 모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 손님은 한여름이 아닌 늦가을에 창궐하는 편이다. 바깥의 추위를 피해 실내로 어떻게든 기어들어 오려는 손님들을 전기파리채로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다행히 집 인테리어를 올 화이트로 해놓아서 그들을 찾기는 수월한 편이다. 다만 가을의 끝자락까지 살아남은 모기는 한층 더 독하기 때문에 전기 파리채로 그들을 지지는 와중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한 번에 기절하지 않고 오랜 시간 버티기 때문이다. 살겠다고 꿈틀거리는 모기의 마지막을 지켜 보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내 피를 내어줄 수는 없기에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지켜보고, 처리한다.
옷을 두겹 세겹 입어야 하는 계절이 오면 전기 파리채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잊혀진다.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내년 여름에는 그게 어디갔더라 하고 온 집안을 뒤지고 있겠지.
안녕, 나의 여름 도우미. 올해는 너를 조금 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