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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그놀리아 Aug 17. 2022

배신감에서 희망 찾기

유희열의 표절 논란에 관한 짧은 글

망설여진다.

집에서 어딘가로 나설 때면 언제나 멜론의 플레이리스트로 들어갔다. 토이의 7집 앨범 "Da capo"의 모든 곡들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좋은 사람>과 <희열이가 준 선물>, <안녕 나의 사랑> 등 많은 곡들이 들어 있는 플레이리스트까지 따로 만들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그 플레이리스트가 어느샌가 듣기 망설여진다.


<좋은 사람> 전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일렉 기타로 멜로디를 구성한 그 곡은 흥겹고 정겹고 또한 처연하다.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상기시켜주니까. 그때 가졌던 설렘과 자괴감까지 모두 생각나게 하니까. 하지만 전주가 끝나고 김형중의 아련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다음 노래로 넘겨버린다. 어째서인지 듣기가 싫다. 들으면 이 곡을 영원히 싫어할 수 없을 테니까.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으니까.


오늘도 유튜브에 들어간다. 이때다 싶어 신나게 표절 곡들을 올리는 렉카충들. 댓글들은 하나같이 공격적이다. 물론 반박도 해봤다. 표절이든 아니든 조금만 비슷하면 그냥 까내리니까. 너무 열받아서 그랬다. 그의 모든 곡이 표절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작곡 준비생으로서의 음악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댓글에 직접 들어가 답글을 단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지금 당장도 들어가 반박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싫다. 너무 힘드니까. 심지어 그중의 몇 곡은 나 또한 표절인 것 같으니까.


<희열이가 준 선물>은 아직도 가끔씩 피아노로 연주도 한다.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곡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유명한 곡은 아니니까. 당당하게 칠 수 있다. 그 곡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면 마치 아픈 사랑을 끝내야 하는데 끝내지 못하는 기분이다. 나는 짝사랑밖에 해본 적이 없는데. 3년 동안 한 사람만을 좋아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는 것 같은데. 유희열의 곡을 들으면 그 사랑마저 아파온다. 그냥 내가 하고 있던 사랑이 아픈 사랑이었을 수도.


학교에 가는 길은 가끔 비가 오기도 한다. 겨울이나 이른 봄이 되면 학교에 갈 때는 아직 어둑어둑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여름날에 학교를 가게 된다면, 대체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햇빛은 인위적으로 세워진 건물들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학교가 끝나고 피아노 학원을 가는데, 가끔 하루의 스케줄이 피아노 학원으로 마무리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한강에 간다. 걸어서 30분이 넘는 거리이지만 그래도 간다. 성산대교 북단에 마련된 운치 있는 곳이 있다. 노을이 질 때면 그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저녁 즈음에 그곳을 지나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을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다.


나는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이나 저녁에 한강에서나, 꼭 한 번은 듣는 곡이 있다. 토이의 7집 Da capo에 수록된 곡 <우리>라는 곡이다. 이 곡은 지금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는 곡이다. 난 노래를 만드는, 뭐 그런 일들을 하니까. 게으르고 철도 안 드니까. 가장 중요한 건 이 곡은 표절 논란이 없으니까. 요즘은 학교 가는 길에 토이의 플레이리스트를 듣지 않고, 입시생이라 저녁에 한강에 갈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사이사이에 어딘가 이동할 일이 생긴다면, 꼭 이 노래를 듣는다. 가령 학원에 가는 길이나 서점에 가는 길이면 언제나 한 번은 듣는다. 이 곡은 유희열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노래처럼 들린다. 그 모든 게 꿈이 아니었기를, 멀리 가지 않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 그 자신도 그랬기에 이런 노래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유희열이 지금까지 이런 마인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아니라면 꼭 옛날로 돌아가길 바란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지 않을 그때로, 오로지 뮤지션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완벽히 충족시킨 그때로, 그가 진짜 천재 작곡가였을 그때로. 영원히 초심을 잃지 않게. 우리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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