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상처 입은 어린 나' 성장시키기
우리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틈날 때마다 자신을 드러내려 하죠.
게슈탈트 접근의 창시자인 프리츠 펄스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미해결된 상태'로 남으면, 끊임없이 ‘종결 지으라는 압력’을 행사한다고 말합니다.
어릴 적 엄격하고 통제적인 아버지에게 자란 영란 씨는 7살 때 키우던 병아리가 갑자기 죽자 매우 큰 충격과 상실감을 느꼈는데, 아버지는 영란 씨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깟 병아리 한 마리 때문에 며칠을 우는 거야!”
영란 씨는 아버지로 인해 사랑했던 대상에 대한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성장하며 동물이나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죠.
중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게 된 영란 씨는 매일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집 밖에서 아버지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결혼 후 두 명의 아이를 출산했지만, 아이를 안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아이가 울 때마다 영란 씨는 머리가 깨지는 통증을 느꼈고, 아무리 울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아이는 결국 엄마를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죠.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가 장애 진단을 받고, 둘째는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등교를 거부하자, 영란 씨는 아이들이 아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마시기 시작한 술을 매일 마시게 되었기 때문이죠.
영란 씨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자신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삐약이가 죽은 것도
부모님이 이혼을 한 것도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도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죠.'
시초는 ‘병아리의 죽음’에서부터였습니다.
애착대상을 잃은 아이가 충분히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서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이 잘못된 거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는 건 병아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유아기인 아이는 사랑하지 않으면 슬픔도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동물도 사람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려 하죠.
이것이 바로 ‘둔감화’입니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나 환경을 경험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경향이죠.
행복도 고통도 즐거움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채 마치 좀비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영란 씨의 내면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병아리가 죽어도 울어선 안 돼.’
‘아이가 아프고 힘든 것 모두 내 탓이니 내가 책임져야 해.’
‘나는 무능한 엄마니 아버지처럼 알코올중독자가 될 거야.’
아버지의 유령은 영란 씨의 마음에 남아 지속적으로 영란 씨를 괴롭히며, ‘애착대상을 상실한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라는 미해결 과제를 깨닫지 못하게 한 거죠.
한쪽에서는 빨리 미해결된 과제를 해결하라는 압박과 다른 한쪽에서는 아버지의 유령의 명령을 지키라는 강압 사이에서 영란 씨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술에 의존했던 겁니다.
심리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한정적입니다.
그것을 적절한 곳에 쓰지 않고 해결해야 할 욕구를 억압하고 회피하는데 쓰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할 에너지가 남지 않게 됩니다.
영란 씨는 이제라도 미해결된 과제를 풀고 싶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게슈탈트 접근에서는 ‘알아차림’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알아차림은 나의 욕구, 감정, 생각, 이미지, 행동, 환경과 내가 처한 상황 등을 지금 여기에 가져와 마주하는 건데요.
“신체감각을 전체적으로 집중해 보십시오. 신체 모든 부위를 돌아가면서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당신의 신체를 즉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로 명확하게 정확하게 느끼십니까?
그동안 무시되었던 고통, 아픔, 통증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근육 긴장이 어떻게 되는지 느껴지십니까?
그것에 집중하시고 그것이 지속되도록 허용해 주시고 섣불리 이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긴장의 한계가 어딘지 경계를 지어 보십시오. 피부 감각을 느껴 보십시오.
당신 신체를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까?" (Perls et al., 1951)
위의 내용은 펄스가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기 위해 내담자에게 적용한 기법의 일부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신체에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다면, 신체 감각에 집중해서 통증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거죠.
알아차림이라는 방식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빈 의자 기법’을 통해 설명드릴게요.
영란 씨는 미해결 과제를 풀기 위해, 아버지와의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셔서 직접 만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빈 의자를 하나 놓고 그곳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엉켰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난 아빠가 정말 미웠어.
내가 사랑하던 삐약이가 죽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 왜 울면 안 되는데!
차라리 아빠가 삐약이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이혼한 게 나 때문이야?
왜 술 먹고 나를 때리는데. 그럴 거면 그냥 고아원에 보내지 왜 데리고 산 거야.
나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어. 엄마한테 가고 싶은데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다른 아빠들처럼 퇴근하면 같이 밥 먹고 티브이 보고 이야기 하는 게 소원이었어.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두렵고 무서워.
다 떠나고 날 버릴까 봐.
이런 말도 못 하고 아빠도 가버렸잖아.
아빠는 내가 정말 밉고 싫었어? 나는 삐약이가 죽고 엄마가 떠나도 울면 안 될 정도로 못난 딸이라서?
나도 아빠처럼 변해가는 것 같아 무서워. 나는 아빠를 용서하고 술도 그만 마시고 싶고, 애들도 더 사랑해주고 싶어.
아빠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근데 그럴 수 없잖아.
그래도 이렇게라도 말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
빈 의자 기법(empty chair technic)은 게슈탈트 치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법 중 하나입니다.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상이 있다고 가정해서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다루며 애도의 과정을 경험하는 거죠.
영란 씨는 7살로 돌아가 그동안 억압된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며, 아버지에게 차마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쏟아냈습니다.
빈 의자에 앉은 아버지에게 말하며 그녀는 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워서 평생 가슴에 담고 있던 배신감과 상처, 슬픔과 우울, 분노 등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아버지를 통해서가 아닌 그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고 수용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죠.
어쩌면 아버지의 삶도 녹록지 않았을 겁니다. 딸이라도 강하게 키우고 싶어 병아리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죠.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는 게 자신 없어 술에 의존하며 딸을 학대했는 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스스로 자괴감과 절망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나로 인해 자녀가 고통스러워하는데, 기쁘고 행복할 부모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자신의 문제에 압도되어 아이의 어려움을 들여다볼 능력도 여유도 없었던 거죠.
아버지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시도도 필요하단 겁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으니까요.
부모의 부족함이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알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 역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라며 나를 위로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영란 씨가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고 해서 고통이 즉시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다시 희망을 잃고 술에 의존하거나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신의 미해결된 과제와 접촉했던 경험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느꼈던 ‘속 시원한 감정’ 즉, 카타르시스는 오래 남기 마련이니까요.
영란 씨는 용기를 내서 다시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만나 풀어내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아버지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여기’에서 나에게 중요한 아이들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겁니다.
혹시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아직 고통받고 있다면, 빈 의자를 가져와 부모와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과거의 상처와 이별하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별한 연인처럼 갑자기 전화를 걸고 싶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싶을 때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집착입니다.
나를 붙잡고 있는 아픔을 꼭 껴안은 후 놓아주세요.
이제 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참고문헌
Clarkson, P. (2010). 게슈탈트 상담의 이론과 실제(김정규, 강차연, 김한규, 이상희 역). 서울: (주)학지사.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