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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21. 2024

부모와 아이의 '게임'을 시작하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심리 게임'을 분석하면, '굿 핏'의 답이 보인다.

게임 좋아하세요?

유치원 때는 숨바꼭질, 초등학교 때는 고무줄놀이, 중학교 때는 테트리스, 커서는 포커와 온라인 게임 등 누군가와 규칙을 정해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는 삶을 활기 있게 만들어 주죠.

게임은 왜 하는 걸까요?


저는 게임을 하며 웃고 즐기는 순간이 이길 때보다 더 큰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게임을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교류분석 이론을 정립한 에릭 번은 우리가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이유는 일종의 '인정(어루만짐, stroking)'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상대와 놀이를 하며, 우리 앞으로 친해지자던지, 우리는 좋은 친구라던지, 나를 믿고 좋아하는구나와 같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보상으로 받는다는 거죠.



그런데, 부모와 아이가 '심리게임'을 한다는 걸 아세요?


심리게임은 '보이지 않는 놀이판'이 마음에 있는 건데요.


번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숨겨진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 조작된 상호작용을 '게임'이라고 부르죠.


부모와 아이가 실제와는 다른 목적을 갖고 대화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 마음속 놀이판이 펼쳐지고 게임이 시작되는 거죠.


부모와 아이가 하는 '심리게임', 어떤 건지 궁금하시죠?      

        


주말부터 감기에 걸린 형이 월요일이 되자 몸이 아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 오늘은 아프니까 집에서 쉬어."

결석하겠다는 형의 요구에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학교에 갈 준비를 다 한 동생이 갑자기

“나도 열이 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동생의 이마에 댄 체온계는 정상보다도 온도가 낮다며 꾀병이라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만약 아이를 과보호하는 엄마라면 ‘혹시 형한테 감기가 옮았나?’라는 생각에 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잔머리가 멘사 수준을 넘는 두 아들을 키워본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 꾀를 부린다는 걸 압니다.


"열 없는데? 어서 학교 가."

"아니에요. 나도 아파요."

"그냥 갈래. 진짜 아프게 된 다음에 갈래?"


동생은 투덜거리며 자신처럼 가기 싫어하는 가방을 질질 끌며 현관을 향하죠.


동생의 "나도 열이 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겉으로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메시지를 엄마에게 전달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나에게도 형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 특혜를 주세요.’라는 진짜 목적이 숨겨져 있는 거죠.

그렇게 동생은 엄마와 게임을 하려 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맙니다.


아이는 이런 식의 '게임'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 부모의 마음을 조종하려 합니다.

물론 아이를 상대로 부모가 하는 게임은 더 많지만요.      


부모가 하는 '심리게임'의 예를 알아볼까요?


외출한 아빠는 아이에게 5시까지 집에 올 테니, 그때까지 학원숙제를 다 해놓으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알겠다고 약속을 하죠. 5시가 되자 아빠에게 전화가 옵니다.


“숙제 다 했니?”

“거의요. 근데 왜 안 오세요?”

“아마 한 시간쯤 더 걸릴 것 같아. 숙제 먼저 끝내놓고 놀아.”

“네.”     


아이는 방금 전 숙제를 시작해서 다 하려면 한 시간도 더 걸릴 걸 알지만, 한 시간이라는 보너스를 숙제를 하는 데에 다 써버리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30분만 게임하고, 나머지 30분은 숙제해야지.’


참, 찰떡같이 잘 들어맞는 계획이죠?


그런데 30분이 지나자 도어록이 열리고 아빠가 등장합니다.

아이는 부리나케 방으로 가서 숙제를 시작하지만 이미 노트는 아빠의 손이 낚아채갔죠.

"뭐야. 아직 숙제도 다 안 하고 논 거야?!"


‘너 이번에 딱 걸렸어!’     


아빠는 아이에게 게임금지명령을 내리고 태블릿을 압수합니다.

아이는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빠의 뜻대로 하죠.      


번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심리 게임을 ‘너 이번에 딱 걸렸어.’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너 이번에 딱 걸렸어.'게임에서 부모와 아이의 내면에선 어떤 대화가 이뤄지는지 알아볼까요?  

    


아빠는 아이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걸 오래전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아빠는 아이의 잘못이 들통나기를 기다리죠.

마침내 아이가 약속을 어기고 숙제를 하지 않은 채 게임을 한 사실을 알게 되자, 아빠는 그동안 쌓였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합니다.      


“네가 이렇게 약속을 어기니까, 아빠가 화를 내지!”     


아빠는 아이의 잘못을 고쳐주기 위함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사실은 어릴 적부터 당해온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싶었던 겁니다.


'나를 무시한다고 가만 두지 않겠어.'

아빠는 자신의 마음속 어두운 부분을 건든 아들을 탓하며, 정작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울컥하는 심정의 원인'을 회피하는 거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이 다반사죠.

부모는 '너 내가 오래 참았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짜증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기 위해 적절한 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작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이란 걸 알지 못한 채로요.


아이와 이런 게임을 자주 하는 부모는 어린 시절 잘못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너 이번에 딱 걸렸어.'게임을 하는 부모에게 지적과 비난을 자주 받거나, 짓궂은 친구들에게 무시와 놀림을 받았던 상처 때문에, 아이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도 '너 이번에 딱 걸렸어.'게임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아이는 왜 심리게임을 할까요?     


에릭 번은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친밀함의 획득’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함을 느끼면, 이를 통해 원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거죠.


열이 난다고 꾀병을 부리는 아이가 엄마와 게임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학교에 가지 않게 되면, 아이는 보상을 얻는 겁니다.      


이러한 심리게임은 파괴적일 수도 있고 건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하며 자신과 타인을 긍정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보상을 얻으면 삶이 행복해지겠지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을 이용하거나 비난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면, 비극적인 인생의 시나리오가 탄생하는 거니까요.


만약 아이와 건전하지 않은 '심리게임'을 하고 있다면?


번은 건전하지 않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게임의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율성'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율성'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금 현재의 삶을 살아가며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말하는 능력을 갖는 것을 의미하죠. 이런 사람은 솔직하고 진실되게 상대와 만나고 교류합니다.


자율성을 가진 부모는 아이와 상호작용을 할 때 다른 목적을 숨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진짜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으며 친밀한 관계를 이루려 하죠.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도록 유도한 뒤 아이를 벌주며 ‘너 이번에 딱 걸렸어.’라는 게임을 하는 것보단,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빠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속이 상하고 화가 나. 아빠는 네가 거짓말을 해도 여러 번 믿고 기다렸는데, 네가 또 약속을 어기니 너를 믿고 좋아하는 아빠 마음을 네가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운하거든. 숙제하기 싫은 건 아는데 그건 네가 어렵고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앞으로는 미루지 말고 제때 해보자.”    

 

물론 아이가 게임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조종하려 하면, 부모도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진실된 말과 행동 대신, 아이를 원하는 대로 바꾸기 위한 게임을 구상하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다짐이 서게 되는 거죠.


그런데,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순진하고 천진난만했던 그때, 우리는 의도를 숨긴 채 상대를 조종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죠.


오래 걸리고 더 많은 심리 에너지가 사용되지만, 테트리스 한판을 깨겠다고 일주일 용돈을 다 써버린 후 찾아오는 공허함을 떠올리면, 이긴다는 게 생각보다 별다른 보상이나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이와의 게임에서 이기고 싶으세요?

아이를 내 마음대로 움직여서 얻게 되는 보상보다, 아이의 두 눈을 보며 진실된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부모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게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아이와의 진짜 행복한 관계를 위해 '그냥 네가 좋아.'라고 조건 없이 사랑했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아이와 만나보세요.


마음속 게임판을 접고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 아이를 만나보세요.


그렇게 아이와 진솔하게 친밀감을 나누며 대화한다면, 숨겨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심리 게임의 종료 버튼을 누르게 되겠죠?    


참고문헌

Berne, E. (2009). 심리 게임-교류 분석으로 읽는 인간관계의 뒷면(조혜정 역). 서울: 교양인.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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