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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Jan 28. 2024

읽히지 않는 것보다 잊히는 게 더 싫어

열네 번의 우물우물-열세 번째 긷기


산처럼 쌓인 A4용지를 생각한다.


작년, 여러 신문사에 투고를 했다. 나처럼 장편소설을 투고한 사람은 수백은 되었고 그걸 전부 모아 산을 만들었다면 아마 출판사의 천장을 뚫을 만큼 까마득하게 높았을 것이다.


깨끗하게 표백된 A4 용지 위에 내가 쓴 이야기를 인쇄해서 투고하러 가는 길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재생용지에 인쇄할 걸 뒤늦게 후회가 일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심사위원들 눈에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을까 내심 우려가 되었다.


전자책 읽기, 전자잉크 사용하기


할 수만 있다면 재생용지 위에 내 이야기를 인쇄하고 싶다. 무겁고 비싼 새 종이가 아닌, 편하게 들고 다니다 한 손으로도 들고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볍고 부담 없는 종이에. 모서리마다 접혀 공터에 버려져도 상관없다. 읽힐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나마 내 세상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장식품처럼 서재에 꽂혀 서서히 잊히는 것보단 낫다.


종이가 아깝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나무와 숲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러면 그래야 한다. 5년에 1인치씩 자라다 마침내 울창한 군락을 이루는 나무들을 본뜨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무해함일기 #C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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