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는 것도, 그 비를 맞이하는 것도 결국 우산을 든 사람의 몫
“혹시 남는 우산이 있다면 빌릴 수 있을까요?”
눈보라를 헤치고 마포구의 어느 레지던스 호텔에 도착한 날, 나는 안내대로 가서 물었다. 14시간이 걸린 댈러스 발 비행기에서 내려 대충 캐리어만 부리고 나오는 길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궂고 배는 고픈데 우산이 없어 빌리기로 했다. 호텔 직원이 건넨 것은 비닐우산이었다. 작년에도 어디선가 빌렸고 한 때는 내 것이었던 우산과 꼭 닮은 천원 몇 장짜리 장우산. 내가 체크인 할 때 만해도 커다란 캐리어에 우산을 챙겨 호텔에서 퇴실하는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오늘과 달리 아무것도 내리지 않아 버려지거나 잊힌 우산은 분명히 있었고, 난 그중 하나를 원했다.
한국은 비와 눈이 잦은 나라다. 여름엔 장마가 길고, 겨울엔 폭설이 내리기 일쑤라 우산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반면에 내가 6년을 살았던 미국 애리조나는 몬순 시즌을 제외하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텍사스도 큰 비는 드물다. 눈은 겨울에 한 두 번 정도 내릴 뿐이다.
비가 흔한 지역에서도 우산 쓴 미국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고담 시티의 영감이 된 시티 오브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 주에서 잠시 대학을 다닌 남편은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갖춘 모양새로 해외 유학생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모자나 후드를 대충 뒤집어쓰고 우중 산책하듯 쏘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미국인이라고 했다.
“네가 입을지 몰라 혹시나 해서 가져왔어.”
영국인 남편과 영국에 살다 잠시 돌아온 J는 밭은 숨을 내쉬는 내게 우의를 내밀었다. 네모반듯하게 접힌, 수영을 하러 다운타운으로 나갈 때 그가 이따금 걸치던 것이었다. 운무가 어룽어룽 깔린 바다가 한 눈에 내다보이는 곳에서 J가 건넨 빨간색 우의가 해처럼 쨍했다.
J는 영국인들도 웬만한 비에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샌님처럼 보여서, 바람은 세고 강우량은 적어서, 단지 귀찮아서. 우산을 쓰지 않은 이유야 가지각색이겠으나 한국에서처럼 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고 배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안개비, 이슬비, 가랑비, 그러다 꽃비. 벽화마을에서 내려와 바다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이제 막 매화가 피어나는 섬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그 모습을 변모했다. 손잡이가 불편한 J의 2단 우산이 빗물 먹은 해풍을 이기지 못해 홀랑 뒤집어지자 우리는 차라리 대머리가 되기로 했다. 잎사귀를 낮게 드리운 매화나무와 몸집이 큰 오동나무가 굵은 빗줄기를 걸러줘 이른 꽃구경이 수월했다. 걸릴 것 없이 탁 트인 시야에 섬의 등대는 보란 듯 희고 매화는 연지 같았다. 오늘 이 비를 맞고 내일 더 피어날 봉우리가 얼마나 예쁠지 이미 본 것 같았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비를 만났다. 어떤 비는 견딜 만했고, 어떤 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거세 우산을 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났다. 신발을 젖게 하고, 새로 산 바지에 얼룩을 만드는 비를 업신여긴 적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빗방울만 떨어져도 일단 우산을 펼쳐 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바람에 홀랑 뒤집어진 우산에 호탕하게 웃던 J를 따라 걸으며 해묵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우산이 아닌 두 팔을 벌리던 때로 되돌아갔다. 하룻밤 신세진 J의 집에서 코를 골 정도로 까무룩 단잠에 들었다.
6개월 만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나는 버려지거나 잊힌 우산을 들고 다시 도시로 향한다. 도시의 먼지 섞인 비마저 내겐 반가운 단비다. 추적추적 내리던 단비는 어느 새 함박눈이 된다. 난 슬그머니 우산을 접고 눈을 들어 올린다. 그렇게 오늘도 대머리가 되기로 한다.
*영월매일에서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