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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pr 03. 2024

낙법은 요즘도 수련 중

그래도 마법보다야 낙법이 더 쉽겠지


내 첫 웹소설은 왼쪽 다리에 깁스했을 때 탄생했다. 지금보다 한참 어린 내가 파주의 어느 도자기 미술관에서 일할 때였다. 130만 원 남짓한 월급에 연 이율 7%짜리 학자금은 줄어들 줄 모르고, 서로를 시기 질투하는 상사들의 뒷담화 배틀은 꿈속에서도 나올 지경이었다. 회사 기숙사엔 하필 그 상사들 중 한 명이 살아 숙소로 돌아가는 게 야근하러 가는 길 같았다. 나는 퇴근하면 밥과 술로 배를 채우고 남자 친구의 손을 붙든 채 커다란 비트로 쿵쿵 울려대는 홍대나 이태원의 지하를 쏘다니곤 했다. 정신도, 육체도 소화가 필요했다. 몸이라도 실컷 떨어줘야 직장 스트레스와 집 없는 설움이 한 톨 털어졌다.


(사진=박인정)


이상하다고 느낀 건 다음 날이었다. 내리막길을 걷는데 왼쪽 무릎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뭔가 분리되어 뚝딱대는 느낌. 사실 그 감각은 낯설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수련회 때 빗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졌었던 때와 지금의 감각이 유사하다는 걸 부슬비에 속절없이 젖어가는 머리로 서서히 깨달아갔다. 그 길로 나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얇게 실눈을 떴다. 흠. 왼쪽 무릎뼈 끄트머리에 금이 갔군요. 얼마나 작은지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 실금이었다.


1cm도 되지 않는 조각 난 무릎뼈 때문에 결국 난 허벅지까지 통깁스하고 말았다. 부주의가 초래한 결과였다. 그날따라 나는 밑창이 닳은 통굽 샌들을 신고 있었고, 댄스 플로어엔 하필 누가 음료를 쏟아 마찰력이 빙판 급이었다. 마치 춤추듯 넘어졌던 것 같다. 당시 함께 있던 남자 친구는 다리에 붕대를 감은 날 부축해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도 내가 언제 어떻게 무릎을 다쳤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휴, 그건 말이 안 되죠. 깁스했어도 발권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장님의 말에 웬일로 과장과 대리의 의견이 일치했다. 건물이 두 채에다 직원은 10명이 안 되는 사설 미술관에서 티켓 발권과 도슨트를 담당하던 내가 갑자기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니 권고사직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는 돌아갈 집이 없는데요. 본가에서 잘 요양하고 쾌차하라는 관장님의 말에 아마 저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메던 낡은 루카스 가방만 줄곧 메고 다니는데, 어쩐 일인지 나를 모자람 없는 집안의 자식으로 알고 있던 미술관 사람들이 그제야 내 사정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권고사직은 슬그머니 한 달짜리 무급 휴가로 변경되었다.


출근길의 풍경. 파주의 벚꽃은 언제나 서울의 벚꽃이 지고 나서 피었다. (사진=박인정)


나는 붕대를 칭칭 감은 왼쪽 다리와 함께 파주 외곽의 회사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거라도 하라며 관장님이 건넨 수장고 DB 정리는 이틀 만에 끝냈다. 그러자 28일이 남았다.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방 한 칸에서에서 할 일이라곤 딱히 없었다. 책 읽는 것도 지쳐 쓰기로 작정한 게 그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박자가 두루 갖춰진 환경이었다. 밖은 못 나가고, 시간은 많고, 유흥과 환락의 도시는 멀고.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멀쩡해 차마 버리지 못했던 삼성 매직 스테이션에 딸린 노후한 키보드를 석고 붕대 위에 올려놓고 두드리니 하루가 후딱 갔다. 유치하고, 뻔하고, 어설프고. 침대 아래 비축해 놓은 오뚜기 즉석 죽을 하나씩 해치우며 나는 줄줄이 문장을 늘려나갔다. 오롯이 내가 만드는 세상을 이리 붙였다 저리 떼어가며 가뿐히 한 달을 넘겼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이젠 4세대 맥북과 11인치 아이패드와 함께다. 미술관을 그만두고 미국을 오가는 동안 글은 몇 편 더 썼다. 계약금 500만 원을 떼어먹힐 뻔하기도 하고, 내가 쓴 글이 파스텔 톤 삽화와 함께 월간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슬럼프는 밥때처럼, 영감은 가뭄에 콩 나듯이 온다. 이젠 업이 된 글쓰기는 쓰면 쓸수록 어렵고 외롭고 또 불안해 나는 종종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위태롭게 춤추던 때로 되돌아간다. 이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잖아. 강렬한 비트에 실컷 몸과 마음을 털어내고 계단을 오르는 내 다리는 멀쩡하다. 날이 밝자 낡지만 튼튼한 루카스 가방을 메고 힘차게 회사까지 걸어간다.


매직 스테이션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나는 머릿속에서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 밤잠을 설치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뒤통수가 불룩한 브라운관 모니터 앞에 앉아 몇 줄을 끼적인다. 그러다 점점 모니터 안으로 들어간다. 밤을 새워서 주인공들의 사연을 손 보고, 대사를 붙여준다. 콜라주 하듯 자꾸만 명사를 자르고 붙이는 바람에 주격조사와 보조사가 엉망인 글로도 뻔뻔하게 유료 연재를 한다. 난 확신한다. 다리를 다치지 않았어도 언젠가 글쓴이가 되었을 거라고. 계속 투고하고, 매번 떨어져도 울지 말고 일어나 한 번 더 퇴고하기 위해 내면의 굳은살을 차근차근 쌓았을 거라고.


(사진=박인정)


소설 쓰는 문우들과 함께 미술관을 찾은 날,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관장님은 선뜻 미술관 소개를 해 주셨다. 중요 인사나 단체 손님이 아니면 직접 나서지 않는 관장님을 알기에 나는 무척 감사했다. 클럽 투어도 같이 해 주고, 춤추다 무릎이 나간 여자 친구에게 도가니탕을 배달해 주던 마음이 바다인 남자 친구는 이제 내 남편이 되었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남편의 세계와 내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교집합이 많아 우리는 가끔 서로의 한쪽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똑바로 써라. 틀리지 말고. 도자기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자 관장님은 그렇게 말했다. 진작 다 나았으니 똑바른 자세로 쓰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글은 어떻게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맞다고 믿는 말을 틀리지 않게끔 고칠 뿐이다.


곧 공모전 마감일이다. 더 고친 소설이 더 나은 소설이길 바라며 나는 n번째 투고하러 우체국으로 향한다. 부디 이번에도 잘 떨어지기를. 나는 낙선을 낙법으로 받아칠 자세를 잡는다. 그렇게 오늘도 단단한 살을 늘려간다.



*영월매일에서 연재하는 칼럼을 각색했습니다.

http://www.yeongwol-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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