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터 만든 썰 ..."
2020.9.27 첫 번째 불모지장
"시작에 있어 꼭 필요한건.."
본격적으로 장터 기획을 시작한건 모아와 나 둘이었다. 모아는 독채숙소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쓰레기와 손님들이 배출한 쓰레기를 마주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숙소의 전환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독립워커의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기획자로 살아가며 경험한 틈을 채울 수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전주에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꼭 필요한 것엔 크게 2가지가 있다. 사람과 돈이다. (일의 분야, 방식, 규모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모든 일은 사람에서 시작되어 사람으로 끝나고, 프로젝트를 꾸리며 대여비, 홍보비, 인건비, 소모품 구매비 등 기본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우린 출판문화진흥원의 무정산 지원사업 인문실험을 통해 2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 당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해마다 청년 인문 실험의 목적으로 몇 가지 지원사업을 진행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 공모전이다. 선정되면 200만원의 지원금으로 지원내용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면된다. 이런 지원사업의 경우,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팀들도 곳곳에서 실행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연결된 관계는 이후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활동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나의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인건비까지 챙기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생각하던 일을 처음 실행해 볼 때에 무정산 지원사업이나 커뮤니티형 지원사업을 받아 함께 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원사업 지원서를 작성하며 장터의 이름을 정했다. '볼모지장'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는 장의 준말이기도 하고, 전주가 제로웨이스트나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부재해 불모지라 생각했기에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싶은게 뭐라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깨달은 것은, (활동의 목적과 이유를 알고, 서로 나아가고자하는 바를 공감하고 있다면) 구성원의 역량이 서로 다를 때 나오는 시너지가 크다는 것이다.
모아는 편안하고, 부담없이 사람과 연을 맺어 이어나가고, 마주한 문제를 빠르게 행동으로 해결하는 일에 탁월하다. 추진력과 실행력이 뛰어나 주로 사람들과 연결하고, 발로 뛰어 홍보하고 섭외하는 역할을 맡았다. 로컬 콘텐츠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해온 경험이 있는 나는 주로 회의를 이끌고 전반적인 기획 및 운영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홍보물을 디자인했다. 수행한 일은 다르지만 맡은 일을 각자 했다기보다는 모든 일을 함께 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적절하겠다.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고 자주 놀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일했다.
첫 회의날, 각자가 생각하는 키워드를 나누고, 앞으로 해나갈 일과 일정을 정리했다. 그 후 여러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핵심만을 추려갔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불모지장이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터 라는 것이었다. 행사를 기획하며 준비 및 운영 과정 그리고 행사장에 방문하는 셀러와 방문객이 오가는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1) 건강한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2) 쓰레기 없이 판매/구매할 수 있는 3) 기획과 실행의 모든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장터 라고 정체성을 정리하고, 행사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정리했다.
"쓰레기 만들지않고 어떻게 행사를 운영하지?"
행사 홍보를 진행할 때 바로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현수막, 포스터, 배너, 리플렛, 굿즈 제작 등.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며 의례 만드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지 고민해본 결과, 온라인 홍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소량의 포스터만 인쇄했고, 20여곳의 거점 공간을 리스트업해 부착했다. 홍보를 위한 현수막, 배너는 새로 제작하지 않고 이미 가진 것들을 활용해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제작했다. 불모지장에 관한 내용은 리플렛 없이도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카드뉴스를 제작해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려두었다.
당일 현장에서 필요한 제작물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쓸모를 다한 것들을 활용했다.
당시, 중간지원조직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일로 제작한 후 남은 포스터가 많았다. 여러 장의 포스터를 이어 끈으로 바느질하듯 연결해 포스터의 하얀 뒷면을 활용했다. 행사장 한편을 꾸밀 현수막을 만들었다.
부스명을 적을 부스별 팻말과 가격표 등은 가구 등을 제작하고 남은 목재들과 종이가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행사 당일, 셀러들이 각자의 팻말을 직접 꾸밀 수 있도록 시간을 배정했다. 부스와 부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결이 담긴 근사한 팻말과 각자 가져온 재료들로 부스가 꾸며졌다. 그덕에 장터가 더욱 빛이 났다. 알록달록.
셀러로 참여하는 분들에게 주의해야할 점을 안내했다. 세 차례의 사전 안내 메일을 전송하며 재차 당부했다.
"불모지장은 새로운 자리를 마련할 때 나오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부스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불필요한 포장 및 패키징을 지양해주세요."
"더불어 불모지장에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텀블러, 개인용기 등을 준비해올 것을 거듭 공지할 예정입니다. 행여 개인 용기를 준비해오지 않은 분들을 위한 부스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물품을 구입할 때 필요한 중고 용기/텀블러 등을 500-1,000원에 구매하여 담아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셀러 사전 안내 메일 中)
셀러와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은 요청하고, 적극적으로 대화했다. 각 셀러들과 주고받은 문자와 전화는 셀 수 없다.
[권장 용기 / 판매물품의 패키징 방식]
불모지장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포장되어있는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준비해간 용기에 담아 구매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합니다. 준비한 물품을 소비자가 구매해 가져가기 위해서 어떤 용기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제안해주세요. (만약, 사전에 패키징을 마친 상태로 소비자에게 판매될 예정이라면,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에 담아 판매할 예정인지 적어주세요.)
ex) 두유를 담아갈 350ml 이상의 텀블러를 지참해주세요.
ex) 꿀을 담아갈 유리용기를 지참해주세요 등
(셀러 사전 안내 메일 中)
행사를 끝낸 후, 측정한 쓰레기의 양이다. 쓰레기 양을 보며 생각했다.
'가능한 일이구나. 계속 할 수 있겠다.'
마켓/장터 기획은 처음이지만, 자리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행사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더 많은 노고와 노동의 투여가 필요했다. 새로 만들지 않고, 재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쓸모를 다한 것들을 수소문해 모으고 직접 손으로 가다듬어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행사 장 내의 모든 것들에 우리의 '손'이 닿지않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인 행사의 기획자인 우리 뿐아니라, 판매자와 구매자 등의 방문객 만족도가 높았다. (아, 코로나로 인한 장내 인원 제한의 여파로 몇몇의 아쉬운 피드백이 있긴했다.) 함께 장을 꾸려준 이들에 대한 든든함과 지역에서 새로운 자리를 마련했다는 보람이 컸지만, 둘이서 고민하고 실행하며 육체적, 마음적으로 힘들었다. 우리에겐 절충안과 대안이 필요했다. 힘을 빼고 할지, 구성원을 늘릴지. 우린 후자를 택했다. 모아는 환경을 고민하고,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의 필요를 말했고, 나는 전체적인 운영계획을 세우고 꼼꼼하게 살필 수 있는 경험이 있는 기획자의 필요를 말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이며, 다음 불모지장은 어떻게 꾸려질까?
* 다음 편은 'Q2. 함께 할 팀원,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나요?'로 이어집니다.
* 불모지장 인스타그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