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7. 여기서 지치면 나는 불효자가 되는 걸까.
전화기에 J여사가 뜨면 일단 심호흡부터 한다. 운전 중이라면 차를 세우고, 하던 일이 있다면 잠시 접어둔다. 가능하면 흡연의 준비도 해 놓는다. 이번엔 부디 한 시간 안으로 끝나주기를 바라면서.
처음에는 그래도 전개는 비슷할지언정 내용은 조금씩 달랐는데, 이제는 전개도 내용도 모두 같은 것이 반복된다. 이제는 이 대화의 끝에 J여사에게 심적인 변화가 생기거나, 내가 충분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무성의한 태도가 잘 숨겨지기만 바란다. 심지어 그 바람 만큼의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으면서.
이걸 견뎌내지 못하면 나는 불효자가 되는 걸까. 동생은 나보다 먼저 불효녀가 되었다. 동생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엄마랑 가까이 살아서, 아빠를 닮은 구석이 많아서, 이미 일상에서 받는 아픔과 피로가 많아서, 그뿐이다.
J여사와 동생이 단톡방에서 심각하게 싸운 날, 가장 먼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가 할 일이 아니다. 피해도 괜찮다. 아니, 피해라. 그래도 된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난 어디로 피할 수 있지.
지금 이 과정이 막연한 바람대로 회복의 과정이 맞을까. 고비를 넘기는 중일까, 임계점을 넘기는 중일까. 이 과정의 끝엔 뭐가 있을까, 끝이 나기는 할까.
J여사에게 늘 말한다.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당신은 그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지만 본심은, 그녀가 해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보다, 끝내 주저앉은 그녀를, 나는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는 언제까지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어떤 아픔이든 함께 끌어안을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럴 힘이 있을까. 그녀에 대한 믿음은 실상 나에 대한 불신은 아닐까. 나는 도저히 당신을 구원할 길이 없으니, 부디 당신이 스스로를 구원해 낼 힘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는 잔인한 마음은 아닐까.
가끔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건다. 그녀가 일상을 잘 견뎌내고 있는지 묻는 말의 이면에는 혹시라도 내가 갑자기 달려가야 할 위급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마음이 깔려 있을지도.
다행스럽게도 점점 연락의 빈도와 통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어쩌다 한 번 통화할 때도 일상 이야기의 비중이 늘었다. 그녀가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나의 무성의함을 눈치챈 걸까.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한 걸까.
의문과 의심으로 가득한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다시 정신을 다잡고 되새겨본다. J여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사를 살아냈고,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녔는지.
나는, J여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