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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Oct 24. 2022

산업재해,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가.

산업재해,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가.      



들어가기 전에,
   
사실 저는 이런 글을 쓰기에 무척 모자란 사람입니다. 최근 SPC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가 이슈화되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제 부족한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이런 중대한 주제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산업재해 발생 보도는 제 양심을 자극했고, 얼룩소에서 아직까지 산업재해의 전반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글을 보지 못하여 용기를 내어 글을 적어봅니다. 다소 길고 일부 사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계신 사실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몇 해 전 제조업 산업별 노동조합 상근자로 근무했습니다. 제 업무 중 하나는 수십 개에 달하는 산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산업 재해들을 관리,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중대 재해를 겪었고, 그 사고의 직간접 피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떠올리면 아픈 기억들 뿐입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거의 모든 산업재해의 원인은 비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으로 인한 사고는 오히려 드뭅니다. 거의 모든 사고나 질병은 사전에 예측도, 예방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되는 규정, 설비, 절차, 시간 등은 기업에게 있어 모두 비용입니다.   


물론 노동자에게도 그것은 종종 번거로움입니다. 산업재해 관련 보도에서 흔히 보이는 반응 중 하나가 ‘본인이 조심했어야지’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원칙적으로(법적으로)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고, 따라서 그 번거로움을 교육, 규정 등을 통해 수행하도록 하는 것 역시 사업주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업주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특성 몇 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산업재해에 따른 사업주의 책임이 무척 적습니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 OECD 상위권에 속합니다. 올해 초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기기 전까지 산안법 위반에 따른 사망사건의 1심 재판 결과 피고인에게 징역이나 금고형이 내려진 경우는 매년 3~5건에 불과하며, 실형기간은 평균 9.3개월에 그쳤습니다. 대부분의 판결이 벌금형에 그쳤는데 벌금액은 평균 5백만 원에 불과했습니다(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안전보건정책연구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장배경과 시사점] 23p). 고급 법률 서비스를 받기 수월한 기업인들에게 중형을 피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2020년 산재 사고사망자 882명…전년比 27명 증가", 안전저널, 정태영, 2021.04.16


비록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처벌의 수위가 강해졌지만 이 역시 여러 정치적 판단을 거치며 무척 허술해졌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산재 사망자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 38%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2년 유예되었고,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입법 당시부터 여전히 미적용 대상입니다.      



2. 한국에는 숨겨지는 산업재해가 너무 많습니다.


어찌 되었든 산업재해는 사업주에게 큰 부담입니다. 대표적으로 법적인 절차(긴급조치, 현장보존, 관할 노동관서에 보고, 조사, 개선 조치 등), 소송 문제, 산재보험료 인상, 생산의 차질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주는 산업재해를 조용히 처리하고 싶고, 재해를 겪은 노동자에게 병원비, 유급휴가, 위로비 등을 지급하여 합의하려 합니다. 이런 합의를 현장에서는 흔히 ‘공상처리’라고 부릅니다.


이런 회사의 제안은 노동자에게 현실적으로 합리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정식 절차를 통해 산업  재해를 인정받고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법으로 보장된 의료비용, 휴업 급여, 장해 보상, 사망의 경우 유족 보상과 장례비 등을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공상처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잘 모릅니다.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보장이 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후유증이 심한 상해입니다. 신체 상해의 경우 당장의 외상보다 후유증이 심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러한 후유증에도 보험료를 지급하도록 되어있지만, 공상 처리는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납니다.    



둘째, 산업재해를 인정받고 보험료를 지급 받는 과정 일체가 무척 어렵고 오래 걸립니다. 산업재해에는 크게 사고와 질병이 있습니다. 상해의 경우 비교적 인과관계가 명확하지만, 현행법상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책임은 재해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거나, 아주 운 좋게 좋은 의사를 만나거나, 여유가 있어 변호사, 노무사를 개인적으로 고용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이 절차는 노동자 개인에게는 장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셋째,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신청을 하면 해당 노동관서의 역학조사 등을 거친 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해당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것이 맞는지 검토를 거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그 인과관계를 증명할 책임이 노동자 본인에게 있고, 그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암 발병사례입니다. 모든 사업장은 노동자 보호를 위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라는 문서를 작성, 관할 노동관서에 보고해야 합니다. 해당 문서에는 사업장에서 취급, 생산되는 모든 물질의 정보, 작업강도, 환경 등 작업 관련 정보들이 기술되어야 합니다. 이는 곧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주요 근거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업체들은 해당 정보가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이를 공개하면 경쟁업체에서 생산기술을 알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에서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과 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삼성은 국가 경제가 망한다며 끝내 자료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여러 입법 논의, 법원의 판결을 거치며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승인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과거 사례와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을 종합하면 여전히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을 포함한 산업재해예방법 개정의 차원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통계 발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통계결과에 대해 현장 사망 건수에 질병 사망 건수를 합산하여 터무니없이 높게 나온 잘못된 결과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산업재해 사망 통계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히 옳고, 현실적으로 그 통계마저 실제보다 상당히 축소되어 있습니다.      

"업무상 사고로 사망하는 근로자는 사고성 재해자 100명 중 1명인데 비해,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하는 근로자는 업무상 질병자 10명 중 1명꼴이다. 이는 업무상 질병자의 발생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잘 보여준다." 정혜선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2015



3. 기업 제재에 대한 반대 여론이 무척 심합니다.   


현시대 한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린 원동력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소품종 대량생산, 박리다매의 수출 중심 경제구조였습니다. ‘한강의 기적’, ‘성공시대’ 신화를 신봉해온 한국 사회는 노동자보다는 기업의 편에 서기를 더 선호합니다. 각자의 계급, 계층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말이지요. 기업 친화적인 보수 주류 언론도 여기에 한 몫을 보탭니다. 사실 이 주제만으로도 할 이야기는 산더미만큼 있지만, 일단은 넘어가겠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이나 여론으로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을 강제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도 모를 구호가 기업의 방만 경영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한 장면.


4. 대기업의 지배구조 아래 대다수 기업이 안전을 위한 비용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기업 문화의 가장 독특한 특성 중 하나는 대기업 중심의 지배구조입니다. 상식적으로, 내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의 사업주라고 가정해 봅시다. 설비 투자,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우수한 품질 또는 동일 성능 대비 낮은 가격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구축된 생산체계를 통해 자동차 기업 A, B, C와 거래합니다. 당연히 부품의 단가는 여러 조건에 따라 협의하고 합의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사업 파트너를 찾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 문화는 조금 다릅니다. 나는 A 자동차 기업의 고위직 출신, 또는 고위직의 친인척입니다. 내가 만드는 부품의 원천기술과 생산설비는 A 기업이 제공한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A 기업의 수주만을 받습니다. 설사 자체적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여 다른 기업의 오퍼가 들어오더라도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A 기업의 눈 밖에 나서 아예 사업을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차라리 다행입니다. 패기 좋게 자체 연구 기술로 사업을 시작했던 중소기업 사장 ㄱ씨는 A 기업에게 기술을 탈취당하고 계약이 해지되어 피땀 흘려 세운 회사가 도산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중소기업 기술 탈취 논란”, 투데이신문, 박지수, 2016.11.25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585   


“'중소기업 기술 탈취' 현대차, 특허분쟁서 패소 확정”, 서울경제, 윤경환, 2019.7.12

https://www.sedaily.com/NewsView/1VLNZM1C97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는 물론 최근 논란이 된 SPC 등이 모두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상 지배구조로 이루어진 원청-하청 구조에서 하청기업은 스스로 수익률을 결정하거나 예산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모두 원청이 정해준 범위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대기업에 종속된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지배 아래 만들어진 하청업체는 자체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청업체에서의 산업재해를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5.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목숨을 대하는 기업의 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에서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1. 명확한 원인 규명, 2. 재발 방지 대책 수립, 3. 피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보상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우조선 하청업체의 농성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대우조선 측은 이리저리 책임을 회피하며 생산 지연으로 인한 피해액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파업 당시 대우조선이 주장했던 피해액은 약 8천억 규모였지만, 막상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갈 때는 470억만 청구하더군요. 노동자들 사정 봐주려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아무튼, 기업은 이러한 피해 규모 산정을 산업재해 상황에서도 똑같이 합니다. 사람이 죽고 다친 상황에서도 기업은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설비 재정비, 대체 노동자 투입, 조사 등 부속 조치 등에 소모되는 시간에 따른 손해. 노동부에게 인정받고 다시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안전조치. 해당 산업재해가 인정됐을 때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산업재해 건수와 그에 따른 비용 증가. 이외에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해에 대해 계속해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어떻게든 최소 비용, 최소 노력으로 사태를 수습하는데 주력합니다.    


양심이나 도의는 계산에 전혀 포함되지 않습니다. 노동자 본인이나 가족에 대한 회유와 협박, 비양심적인 책임 회피, 심지어는 사고 은폐도 일어납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며 여기 발췌한 사례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보고, 듣고, 경험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것들을 증명할 길이 없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경험하고 그 피로가 누적되고 나면 다소 심각성이 떨어지는 사안은 차라리 적정선에서 조용히 처리할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본인이나 가족에게 차마 이렇게 고단하고 긴 싸움을 시작하라고 권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족 잃은 슬픔도 아물기 전 ‘역고소’에 우는 산재 유족들”, 한겨례신문, 장예지, 2021.4.30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3394.html   


“회사가 당신의 산재를 숨기는 이유”, 시사인, 전혜원, 2015.9.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250     


 

글을 시작하면서 내가 과연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마치고 나니 분량이 너무 많아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또 너무 장황하게 쓴 나머지 제가 놓치거나 실수한 부분을 지적받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부분들이 꼭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이 부족한 글을 내놓습니다. 가능하면 저보다 더 전문적으로 쉽게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이 더 좋은 글로 나서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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