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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Oct 23. 2022

28. 자기소개서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28. 자기소개서      



분명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쳐 다소 장황하더라도 내 생각을 줄줄이 열거하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상대와 내 뜻이 달랐겠거니 생각했다. 조바심 때문에 나를 숨기거나 가장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몇 차례 실패 뒤 인터넷에서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을 찾아본다. 몇몇 유의미한 팁을 적용해 글을 고친다.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팁은 그냥 지나친다. 본래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왜인지 이게 더 세련된 것 같기도 하다.   


또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뒤, 그때 그 단어가, 그 문장이 잘못이었을까. 의미 없는 후회를 하며 머리를 거칠게 긁는다. 이제는 내 생각이고 뭐고 거짓말도 잘도 쓴다.   


그러고도 또다시 몇 차례의 실패. 이제는 나를 내세울 방법도, 힘도 바닥났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의 마지막 가석방 심사가 생각난다. 어차피 내 생각 따위 안 궁금할 테니 내 시간 그만 뺐으면 좋겠다.  

 

억지로 쥐어짠 의지마저 꺾이고 나면, 이제는 나를 지지하고 응원할 방법조차 잊게 된다. 절망적이고 구차하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종종 첨삭을 부탁하던 것 망설여진다. 더이상 내 실패를 알리고 싶지 않다.   


쓰면 쓸수록 나를 갉아먹는다. 취업,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던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포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행위였으리라.   


다시 한번 스스로를 속이기로 한다. ‘너는 가치 있는 놈이야!’. ‘이 분야에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야!’. 이 엉성한 거짓말에 부디 상대도 속아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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