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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Oct 19. 2022

27. 주부는 홀로 성립할 수 없다.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27. 주부는 홀로 성립할 수 없다.      



이유를 막론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두 존재 주부와 백수. 이 둘의 차이는 뭘까. 얼마 전 지나가다 읽은 어떤 글에서는 살림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하냐에 따라 다르다던데. 정말 그런 양적 차이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백수가 살림을 적극적으로 하면 주부가 되나? 아니, 주부는 누구를 위해 살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내려진다.   


주부는 홀로 성립할 수 없다. 동거인을 위해 가사노동에 종사해야 비로소 주부라 할 수 있다. 비서가 모시는 임원 없이 존재할 수 없듯, 집주인 없는 집에 집사가 있을 수 없듯, 주부도 보필하는 가족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1인 가구는 아무리 살림을 열심히 한들 부지런한 백수일지언정 주부가 될 수 없다.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정의하지 못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불안하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계속해서 외부로부터 부여 받아야만 한다.    


어지러운 집안을 방치하면 주부로서의 입지가 평가 절하될까 불안하다.

비상금을 조성하려 애쓰는 주부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싶다.

자녀에게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는 주부는 자녀가 곁을 떠날 때 자신의 정체성이 희박해질까 두렵다.      



과거에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일단 전업주부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고 지위도 확고했다. 주부는 물론 가장도 가족으로부터 정체성을 부여받는 경우도 많았다. 한때 은퇴 후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는 가장이 사회 이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꿈의 다양성이었다. 소위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인적자원이 중요시되면서 우리는 모두 다양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남녀를 불문한 대학 진학률 상승, 사회 진출 확대 등과 더불어 장래희망란에서 전업주부의 지분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다양한 꿈을 품고,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던 이들에게 주부의 삶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나의 불행도 여기에 기인한다. 현재의 처지가 비자발적임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포부와 꿈을 붙잡으면서, 작은 일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벌여가면서, 존재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발악한다.   


내가 주부의 타이틀을 떼는 날, 나는 과연 만족스러울까. 주부 앞의 ‘비자발적’이라는 수식어를 떼는 날, 그 계기가 포기나 좌절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아직 선택권은 있는 것인지.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있는 힘껏 갈팡질팡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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