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이과 아닙니다. 경제학 전공 아닙니다. 일부 사실관계는 틀릴 수 있지만 큰 관점에서 이런 맥락도 있구나, 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서 판다는 거짓말
1. 전기차는 (미래에) 친환경적(이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산업이 하는 거짓말에 속고 산다. 최근 몇 년 가장 거품 낀 거짓말은 5g 기술과 전기차였다. 오늘은 전기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전기차가 친환경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사실 단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눈앞에서 매연을 뿜지 않는다는 것. 배터리가 어떤 물질들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그 배터리를 채우는 전기는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중요하지 않다. 시야에서 멀어지면 의식에서도 멀어지는 법이니까.
화석 연료 중심의 전기 생산과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주원료의 가공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기에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중 무엇이 더 탄소를 많이 내뿜는지 비교 분석하는 연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넘쳐나는 탄소가스와 기후 위기라는 배경 아래 친환경 차라는 명찰을 달고 등장한 전기차. 하지만 친환경은 엄밀히 말하면 현재가 아닌 미래 희망사항이다. 전기차가 진정한 친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첫째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전기 생산 증가이며, 둘째는 배터리 기술 혁신을 통한 탄소 배출량 감소이다.
심지어 그 희망사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적 에너지 공급 문제로 인해 더욱 지연될 예정이다. 유럽 각국은 과거 효율성과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폐지했던 각종 화석연료의 생산을 재검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그들은 왜 준비도 안된 전기차를 하필 지금 파는 것일까? 시장이 확장되어야 그만큼 더 빨리 친환경적이 되므로 지금은 그 과도기다, 라는 설명도 물론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시점에서 접근해보려고 한다.
위 칼럼의 주장처럼 전기차가 점진적으로 친환경적이 되리라는 주장에는 신빙성이 있다. 실제로 상당수 인력과 자금이 쏟아지고 있으니까. 지난 세월 인류의 투자와 연구가 모두 빛을 본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발견, 발명 중 투자 없이 성사된 것도 드무니까. 하지만 그 노력은 순전히 ‘친환경 전기차’를 확보하기 위한 초록빛 노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주 치열한 산업간 영역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2. IT, 자동차를 탐하다.
최초로 상용화된 양산형 자동차는 19세기 후반 ‘토머스 파커’에 의해 개발된 전기차였다. 내연기관차는 이보다 5년 뒤에 출시되었지만 20세기 초 원유가격이 낮아지면서 전기차는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밀려났다.
순수 전기차의 재등장은 사실상 테슬라가 주도하였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의 최대 관건 중 하나인 배터리를 기가팩토리로 돌파하고자 했다. 비록 예상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꾸준히 확대된 테슬라의 배터리 생산량, 그에 따른 생산단가 감소는 현재 테슬라가 현재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처음 테슬라가 등장했을 때 기존의 자동차 생산 기업들은 대게가 코웃음 쳤다. 자동차라는 결과물은 같아 보여도 전기차는 사실상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충전 인프라, 배터리 생산 단가, 그리고 자동차라는 완성품을 만드는 누적된 노하우까지. 전기차 기업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우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예측되었었다.
실제로 그 예상은 대체로 맞아 떨어졌다. 테슬라는 초기 배터리 생산 목표치 미달, 완제품의 각종 하자 문제로 꽤 난항을 겪었다. 더불어 우리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뛰어들었던 후발주자들이 대부분 시장에서 탈락했다. 전기차가 배터리에 모터랑 바퀴만 달면 되는 줄 알고 뛰어들었던 수많은 배터리, 모터 전문 기업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초창기 어려움을 버텨낸 전기차가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건 각국 정부의 전기차 인프라 확대 지원 정책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정책은 다양한 IT 기업의 로비를 통한 기후협약으로 만들어졌다.
본래라면 특정 산업에 몰두해온 기업이 단기간에 다른 산업에 뛰어들기란 무척 어렵다. 상당한 기간의 연구, 기술 개발, 설비 투자, 마케팅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기차의 등장으로 IT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테슬라와 중국의 몇 기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신생 전기차 기업이 탈락한 지금, 기존 완성차 회사들도 전기차 모델을 속속 내놓으며 언뜻 자동차 시장 점유율에서 선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기존 완성차 기업이 전기차를 암만 팔아도 실제 이윤을 남기는 건 IT 기업이다.
배터리, 반도체, 회로, 모터, 심지어는 소프트웨어까지. 완성차는 그저 겉 껍데기 만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기업의 독주를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전기차를 팔고는 있지만, 사실상 전기차의 판매 이윤은 다양한 IT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
3. 수소전기차, 이유 있는 고집
현대차의 시장 변화 대응은 대게 선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현대차가 미래 예측을 잘해서? 앞서나간다는 이미지를 갖고 싶어서? 아니, 그들이 뒤처지고 있어서가 정답이다. 현대차가 지난 십 수년 간 해외 시장 안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이 얻은 건 ‘저렴한 차’라는 이미지 뿐이다. 꾸준히 자기 할 일만 하는데도 여전히 잘나가는 굴지의 자동차 기업들의 뒤를 쫓기 위해서라도 현대차는 시장의 변화에 미리 대응해야만 했다.
전기차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현대차는 두 가지 선택을 취했다. 첫 번째는 '우리도 전기차 만들자'였다. 기존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를 우습게 여기며 생산이 늦어졌던 반면, 현대차는 일찍이 전기차 생산에 뛰어들며 비교적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했다. 현대차는 전기차의 절대 극복 될 수 없는 세 가지 단점 탓에 내연기관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 확신에 따른 두 번째 선택이 바로 수소전기차 생산이다.
전기차의 극복되기 가장 어려운 단점 세 가지는 바로 배터리의 용량에 따른 운행거리의 한계, 충전 속도, 그리고 마진율이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에 따라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의 최대 운행거리가 500km를 넘어서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카달로그 상 성능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으며 사용 환경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충전 인프라 역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으나 최근에는 그 확장세가 한 풀 꺾였고, 충전 속도는 여전히 급속이라도 2시간 내외가 소모된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이 기술의 진보로 극복 되더라도 끝내 극복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마진율이다. 비록 전기차 시장의 확대로 IT 기업은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지만, 반대로 자동차 기업이 IT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전기차를 만드는 이상 완성차 기업은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된다.
추가로 현대차만의 특수한 사정이 뒤따른다. 현대차는 다른 자동차 기업과는 다르게 부품업체와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부품업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이 회사, 저 회사와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현대에 의해 설립되고, 현대의 부품만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부품업체가 상당하다. 이러한 지배구조는 원가 절감과 유연한 시장 대응에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운명 공동체로서 이들의 생계를 어느 정도 책임져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전기차로 인해 이 지배 구조가 위협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구조적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내연기관차의 부품 수는 약 2~3만 개에 달하지만, 전기차는 약 1만여 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전기차는 부품의 마모도 적어서 AS도 상당히 줄어든다.
절반 이상의 부품이 줄어든다는 것, 심지어 남은 절반도 대부분 IT 기업에서 사다 쓴다는 것, 이것은 곧 대다수의 부품업체가 불필요해진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해온 수많은 부품업체를 하루아침에 정리하는 것은 현대차의 결단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장 정부 차원의 개입이 이루어질 일이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현대차는 전기차도 내연기관차도 아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만 했고, 그 결론이 바로 수소전기차이다. 수소전기차는 전기로 구동 되지만, 그 구조의 복잡성 탓에 내연기관 못지않게 부품 수가 많다. 수소 충전에 걸리는 시간도 내연기관의 주유 시간만큼 짧고, 수소만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면 전기차보다도 훨씬 친환경적이다. 현대차가 수소전기차를 고집하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4. 내연기관, 전기차, 수소전기차의 삼각관계
내연기관차는 줄어들고 있고, 그 속도도 점차 빨라질 전망이다. 이미 상당수 자동차 기업이 순차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 종료 시점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그 빈 자리를 누가 채우는가이다.
전기차는 각종 기술적 문제들과 더불어 정치적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의 중국 의존도가 무척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고, 한국은 두 고래 사이 새우등이 되어 언제 어디서 터질까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반도체 생산 이슈도 있는 와중에 배터리 이슈까지 터진다면 전기차 생산은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전기차가 재등장한 초창기만 하더라도 전기차는 수소전기차로 가는 중간 다리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전기차를 위한 인프라 구축보다는 아무래도 수소전기차 기술 발전이 더 빨라 보였다. 그러나 그 예측은 조금씩 빗나가고 있다.
일단 예상보다 기술개발이 어렵다. 수소전기차의 핵심기술은 산소와 수소가 만나 전기와 물을 만드는 발전기술, 그리고 수소를 싸게 많이 만드는 기술이다. 발전의 경우 산소와 수소 사이 촉매를 현재는 백금을 이용하는데 이 가격이 무척 비싸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더디다.
수소 생산에도 전기 생산과 같은 이슈가 따라붙는다. 바로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다. 수소를 만드는 가장 흔한 방법은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것과 물을 전기분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방식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전기분해는 비효율적이다. 현재 현대차는 제철소, 화학공장 등에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활용하고 있다. 부생수소는 기존의 설비에서 나오는 부산물이기에 경제적이지만, 생산량이 극히 적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넥소의 차기 모델 출시를 조금씩 늦추고 있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도 수소전기차 사업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고 있다.
앞으로 이 셋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는 쭉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수소전기차의 제자리걸음과 전기차의 약진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