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이태원의 접점
믿을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지고 일주일. 책임의 소재는 여전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고, 연이은 책임 회피와 가벼운 언행에 분노를 넘어 허탈할 지경이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과 궁금증은 다양한 가설을 양산하고 있고, 그 중 어느 것이 사실일지, 모두 다 거짓일지, 또는 모든 것이 진실일지 점점 더 알 방법이 없어지고 있다.
무척 고통스러운 사실은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불과 수년 전에 겪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두 장소에서 일어난 두 번의 끔찍한 참사에는 너무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
1. 예상하지 못했다.
이 두 번의 참사는 안타깝게도 전혀 예상되지 못했다. 참사를 예방할 책임이 있는 이들? 아니,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그러했다.
다양한 이유로 제주도를 향하는 배에 몸을 실은 이들이 있었다. 국내 최대의 휴양지로 떠나면서 그중 누가 이런 사고를 예상이나 했을까. 매 순간이 즐거우리라 기대했던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이런 비극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적어도 승객 중에 그러한 비극을 예상하고 대비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창밖에 보이는 해경의 움직임에 그들은 믿고 기다렸다.
할로윈의 기원, 의미 따위는 제쳐놓고, 그날 이태원에 모인 이들은 모두 축제를 즐기러 그곳에 나왔다. 제각기 공들여 분장하고,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그곳에 모였다. 코로나 통제가 끝나고 몇 년 만에 다시 나선 거리에서 누가 그런 사태를 예상했을까. 경찰, 공무원 그 누구도 상황을 통제하지 않고 방치하리라고는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들은 그렇게 예상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비극에 휘말려버렸다. 바로 ‘예상했으나 무시해버린’ 누군가로 인해.
2. 예상했으나 무시해버렸다.
모두를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사실 중 하나는 이러한 사태들이 사전에 충분히 예상되었었다는 사실이다.
무리한 개조 증축, 화물 과적, 과속 운행 등.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예상되는 원인 모두가 사전 예방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각에 분명한 책임소재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각기 책임을 맡은 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금씩 자기 일에 소홀했고, 그 소홀함이 쌓이고 쌓여 사고를 낳았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이전에 집계된 할로윈 행사 규모, 거리두기 이후 급격히 확대된 여타 행사 및 축제의 규모들을 토대로 이번 이태원의 규모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지하철 무정차, 도로 통제, 보행로 통제 등 대응 방법도 이미 다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무시하였고, 그 책임은 결국 죄 없는 시민의 몫이 되었다.
각 사건을 둘러싼 책임소재의 수만큼 의혹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의혹을 키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사태의 충격과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3. 의혹의 원인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사실이나 대상에 대해 의혹을 키우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의혹이 불신과 분노로 커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충격의 크기이다. 사안이 중요하지 않고 사소하다면, 구태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아이의 어설픈 거짓말을 눈감아 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대로 해당 사안이 중요하고, 여타의 참사와 같이 그 피해와 충격이 클 경우, 어떠한 설명을 들어도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미 드러난 사실들로 불신이 커진 뒤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둘째는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현실에서는 말재주보다는 태도에 따라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다. 백 마디의 구차한 변명이, 한 마디의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 중할 수 없다. 오히려 사소한 일도 변명과 거짓말로 덮으려 하면 필요 이상의 의심과 오해가 생겨난다. 아이의 서툰 거짓말도 지나치게 반복되면 죄가 되듯이 말이다.
두 사태 모두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의혹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미 의혹이 적정선에서 종식되기에는 너무 늦은듯하다.
4. 부디 이번에는 달랐으면 하는 단 한 가지
위의 사실 외에도 세월호와 이태원의 공통점은 너무나 많다. 늑장 대처, 늦고 불충분한 사과, 정치계의 책임 공방, 말실수, 행동 실수, 특정 세력에게 떠넘기기까지. 하지만 부디 이번만큼은 달랐으면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켜보는 우리의 태도이다.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시시각각 변화하였다. 안타까운 피해자와 과잉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 세력 사이를 오가야만 했다. 한때는 대통령 후보와 광화문 광장에 서며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대우 받았지만, 이후에는 죽은 자식으로 장사한다는 끔찍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
정치인이 실망스러운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같은 시민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부디, 이번 만은 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5. 무엇보다 슬픈 공통점
끝으로, 세월호와 이태원의 가장 안타까운 공통점은 무척 슬픈 우연에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주요 피해자였던 고등학생들이 8년 뒤 지금은 이태원의 주요 피해자였던 20대가 되었다.
세월호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 않았음에도 당시 고등학생들이 느낀 우울감, 스트레스, 트라우마는 상당했다. 그랬던 그들이 또 다른 심적 위기에 놓이게 되어 무척이나 우려스럽다.
우울감의 전염은 우리 생각보다 크고 빠르며, 그 여파도 생각보다 크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인생을 살던 세월호처럼, 이태원처럼,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허무감, 위기감 등이 반영된 증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어렵지 않게 보인다.
부디 우리 손닿는 주변이라도 잘 살피고 보듬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