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엄마가 이혼했다, 마침내
8. 나는 J여사를 믿는다.
나는 J여사를 믿는다. 이 믿음은 관계에 근거한 막연한 희망이 아니며, 근거 없는 기대가 아니다. 나는 이미 경험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녀는 항상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과 변수들을 냉정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해내곤 했다. 주어진 상황, 활용 가능한 자원, 자신의 역량, 시간적 한계 등을 모두 종합하여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사회인으로서, 목회자 사모로서도. 비록 그 결과가 최선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녀가 짊어져야 했던 책임들을 모두 건사해내며 해냈다는 점에서 그 결과들은 최적이라 칭찬 받아 마땅했다.
이러한 그녀의 이지적인 면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빛날 때는 끝내 현재 조건으로는 극복되지 않는 과제를 맞닥뜨렸을 때였다. 포기할 법도 한 상황에서 그녀는 다시금 노력을 통해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곤 했다. 거기에는 어떤 불평도 불만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해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때는 97년, 짧은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선에 복귀한 J여사가 마주친 장벽은 무려 컴퓨터였다. 그녀가 일선을 떠났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투입된 이 미지의 기계는 과거의 방식을 모두 갈아치울 기세로 업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은 직장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생각해보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우리 집에 컴퓨터가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업무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당장 큰 출혈을 감내하면서 컴퓨터를 구매했고, 매일 밤 친동생과 장시간 통화를 하며 사용법을 배웠다. J여사와 남동생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서 제법 어려운 관계였다. 덕분에 남동생이 그녀의 서투른 배움과 늦은 진도 속도에도 감히 짜증을 부릴 수 없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는 일에 어려움이 없다.
그녀가 보여준 어떻게든 스스로 해내는 습관은 나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특히 내가 자취를 시작하고 크고 작은 살림살이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바탕이 되어주었다.
또 하나 J여사의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카리스마다. 그녀는 사회생활 중 상당 기간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내왔다. 아직 이성적인 대화가 힘든 미취학 아동을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해서는 때론 동물적인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그녀는 그 카리스마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심지어 그 카리스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처럼 구는 어른들을 상대할 때도 무척 빛이 났다. 때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사소한 문제로 담임교사와 크게 다투고 J여사가 학교로 불려온 때였다. 나는 해당 사안이 나의 잘못이라는 담임교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고, 교사가 원하는 사과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교사는 어머니를 불러오면 내가 투항하리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교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고집은 나의 모친께서 주신 DNA에 기인한다는 것을. 이 일로 오랜만에 출근을 하지 않은 J여사는 상당히 편한 복장과 발걸음으로, 한 손에는 음료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그녀의 여유를 보며 조금이나마 불안했던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마침내 삼자대면이 이루어졌을 때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애초에 나를 타박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나를 앉혀두고 이야기하자는 담임교사의 주장과,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를 두고 할 수 없다는 J여사의 교육자로서의 철학이 맞부딪혔다.
J여사의 서늘한 미소에서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공포를 느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집에 돌아왔다.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도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그녀는 별일 없었다는 태도였지만, 손에는 학교에 가져왔던 그 음료 상자가 그대로 들려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교사는 해가 바뀔 때 까지 나에게 단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내가 사소한 문제행동을 일으켜도 동일한 문제를 일으킨 다른 학생과 명확하게 차별적인 태도로 나를 방임했다. 이 차별을 다른 학우가 지적했을 때 교사는 ".....나 쟤 싫어!" 라는 놀라운 문장을 내뱉었다. 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승리의 쾌감을 느꼈다.
그날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엄마였고, 이 날의 경험은 내 자존감의 든든한 기둥 중 하나 이다. 이후에 몇 번이나 이날의 일을 물었지만, 그녀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몰래 밖에서 대화를 엿듣고 싶다.
내가 그녀를 믿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는 상황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정한 길을 굽히지 않고 뚫어내는 의지를 지녔다.
J여사는 덜 자란 아들내미가 감히 염려할만한 인물이 아니다. 아니, 설사 아들이 다 자랐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녀의 영혼은 나보다 한치는 더 클 것이다. 지금의 힘겨움도 그녀에게는 분명 딛고 일어날 조건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J여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