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리뷰 : 재윤의 서사
(※ 본 글은 넷플릭스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재윤의 첫 등장
1화의 첫 장면은 재윤의 인터뷰로 시작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끔해 보이는, 모태솔로라고 보기엔 약간 부적절한 이미지의 청년의 등장은 시청자를 다소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재윤의 인터뷰가 진행되며 우리는 그가 모태솔로가 된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마치 복화술을 하는 듯 움직이지 않는 입술, 인터뷰 내내 가만두지 못하는 어색한 손,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 갈 곳을 잃은 눈동자, 그리고 이야기 중 꺼내는 공감하기 어려운 대화 주제.
한편으로는 흔히 요즘 여성들의 이상형이라고 하는 "너드남" 스타일로 보이긴 합니다. 훈훈한 외모와 자신만의 취향이 드러나는 대화 주제. 하지만, 재윤의 다소 답답해 보이는 모습은 여성들의 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너드남"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 듯 하기도 합니다. 재윤이 그동안 연애를 해보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하겠죠.
재윤은 그러한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대하는 데 있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알고 있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하는 의지도 확실합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완벽히 부합하면서 제작진들이 원한 "이상적인" 형태의 출연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비춰지는 재윤의 모습과 1화의 첫장면에서 보여주는 재윤의 인터뷰는 재윤이라는 인물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메이크오버, 그러나
서인국씨와 함께한 메이크오버를 통해 재윤이는 거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것처럼 변합니다. 부스스한 머리는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모이는 자리에서 먼저 말을 건네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하는 듯, 인터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는 첫인상 투표에서 무려 3표를 받으며 인기남으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몇주만에 완전히 바뀌는 것은 어려운 법, 실제 대화가 이어지며 재윤의 실제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자 앞에서면 말투와 행동이 얼어붙는가 하면, 호감을 느낀 여명에게는 이렇다할 대화도 잘 걸지 못합니다. 이에 기존에 호감을 표시했던 여성 참가자들의 호감은 점차 식어갑니다.
이어지는 실수
그런가 하면 타인을, 특히 이성을 대하는데 미숙한 재윤은 시청자와 다른 참가자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줄만한 실수들을 반복합니다. 1대1 데이트 상대를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여명이 먼저 선택되자, 남아있는 지연과 민홍 중 누가 남아있는지도 확인하지 않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를 되묻는가 하면, 마지못해 지연을 선택하는 듯한 행동을 보입니다. 처음에 재윤에게 호감을 느꼈던 지연은 상당한 서운함과 불쾌함을 느낍니다. 단 둘이 가진 식사 시간 중에도 지연에 대한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은 채 '오늘 저녁메뉴는 뭐 할 것이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온 재윤은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 그리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지연과 다시 대화하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며 사과를 전합니다.
(재윤과 지연의 대화 중)
재윤 : 그분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상처를 주는게 두려워서 좀 피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지연 : 근데 그런게 더 상처야
재윤 : 그냥 뭔가 계속 이런식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
(재윤 인터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한테는 "근거 없는 수치심"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감정을 표출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서 최대한 나대지 않으려고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남들한테 안보여줄려고 죽여왔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재윤이가 갖고 있던 내면의 감정이 드러나며 저는 재윤의 행동의 이유가 어느정도 이해되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눈치가 보여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를 피하려고 하면서 의도치 않게 실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근거 없는 수치심과 배려를 가장한 이기심
근거 없는 수치심은 다음날 이어진 여명과의 데이트에서도 나타납니다. 5일차 오전 비밀데이트에서 재윤은 여명을 선택하고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호감을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여명은 재윤의 호감을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재윤이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화도 별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 처음 재윤의 호감을 확인한 셈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명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상태였고, 이어진 비밀데이트에서 재윤은 선택받지 못합니다.
재윤은 여명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이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날 저녁 여명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오전에 말했던 것은 과장되었고, 여명에 대한 호감이 별로 크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죠.
(재윤 인터뷰)
여명씨는 이미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가있어 가지고, 잘돼 가고 있던 여명씨를 혼란스럽게 한 것 같아서 되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중략)
그렇게 말하면 여명씨가 마음이 더 편해질거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어요.
재윤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여명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여명의 마음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자신만의 생각일 뿐이죠. 여명의 마음을 고려하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에 대한 솔직하고 덤덤한 호감 표현에 좋은 감정을 느낀 여명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여명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자신이 체념하면 본인의 마음이 편해질거라고 생각한 재윤의 다소 이기적인 감정이 자초한 행동인 셈입니다.
이후의 프로그램은 서로 호감을 확인한 다른 커플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재윤의 모습은 많이 비춰지지 않지만, 재윤은 마지막 한풀이 데이트를 통해 여명에게 자신의 진심을 다시한번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고슴도치들에게 필요한 <용기>
재윤이 "근거 없는 수치심"이라고 표현한 자신의 모습에서 저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그리고 저 또한 갖고 있던 감정이 생각났습니다. 호감이 가는 상대에게 다가갔다가 행여나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상처를 받을까봐 다가가지 않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것이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눈치만 보는 것입니다.
재윤은 프로그램 초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을 숨기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나온 재윤의 행동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나온 행동이라고 하였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죠. 하지만 재윤은 용기를 내어 자신이 상처를 준 상대에게 다시 다가가 사과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민홍과 같이 편안해진 상대에게는 농담을 하거나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죠.
물론 용기를 내어 다가가더라도 거절 당할 수 있고,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 상대라면 불쾌감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 다가갈수도 없고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건 결국 자기 자신과 바꿀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재윤의 서사는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던 "한 인간의 성장"을 보는 듯하여 새로웠고 프로그램 내내 재윤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현실의 재윤이 몇주 전 연상의 이성을 만나 교제중이라고 하더군요. 재윤은 개인 SNS를 통해 '자신은 몸만 어른이 된 어린아이'였었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회고를 밝혔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 만나시는 분께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관심있게 본 다른 출연자의 시선으로 또다른 관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조망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