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으로 모래를 퍼서 살살 흔들었더니 가는 모래들은 빠져 나가고 감자와 맛동산만 남는다. 이런 거였구나. 삽의 역할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살 골라내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수거된 것들을 비닐에 담고 공기를 뺀 다음 야무지게 묶는다. 공기가 빠져 나올 때 마지막으로 감자와 맛동산 맛이 난다. 지독한 맛이군, 한 마디 중얼거린다.
원래는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모래 속에 손을 집어넣은 다음 골라냈다. 내 사연을 들은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올렸다.
에.. 지난 번 글에서도 나와서 궁금했는데 감자 캐는 삽을 사용 안하시고 직접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캐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궁금...
바로 깨달음이 왔다. 이건 아니구나.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편하게 하고 있는 디라스에게 묻는다.
"삽으로 똥 퍼는 거지?"
"응."
"나한테 왜 안 알려줬어?"
나는 내가 받은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당연히 아는 거 아니야, 다림이 때도 손으로 한 거야?"
"응."
화장실 뚜껑 위에 놓여 있던 삽을 함부로 본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양이들은 똥을 싸고 나면 기분이 좋아서 춤을 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동물보다 한 등급 위다. 나는 똥을 싸고 나서 즐거웠던 적이 무수히 많지만 고양이들처럼 춤을 추지는 않는다. 디라스가 춤을 추는 것도 본 적 없다.
렛트는 너무도 즐거워서 화장실에서 나올 때 흙을 뿌리면서 나왔다. 처음엔 흙으로 부끄러운 걸 덮으려고 하다 실수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관찰한 결과 실수가 아니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였다. 기분이 좋아서 미치는 거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거실에 뿌려진 모래를 치우는 게 일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인간도 동물인데 우린 동물이 아니잖아, 하고 말한다. 동물과 구분하기 위해 인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인간이란 동물이 극복하지 못한 어떤 것을 극복해낸 존재라는 뜻이 아닐까. 무얼 극복한 걸까. 똥 싸고 춤을 추지 않는 것?
“언제부터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었나요?”
그런 질문에 한 학자가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참석한 사람들은 도구의 사용이거나, 직립 보행 뭐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학자는,
“부러진 갈비뼈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어째서 그게 문명의 시작이냐고 하면 부러진 갈비뼈가 붙었다는 것은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죽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건 누군가 돌보았다는 증거이며 그런 건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예였다. 한 동물이 상처 받은 동물을 돌보아서 살려낸 것이었다. 이때부터 인간이 시작된 걸로 보였다.
부러진 갈비뼈는 하나의 뿌리에서 진화해온 동물과 인간이 서로 다른 가지로 갈라져 나아가는 분기점이었던 셈이다.
키스의 기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 원시인 가족들 중에 이가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씹을 수가 없어서 씹지 않고 넘길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 대신 씹어서 그의 입으로 전달했다. 그들은 조지아의 작은 호수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가족이 키스를 발명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키스는 한곳에서 발명되어 전파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되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하나의 설을 말했을 뿐이다.
고양이는 입술이 없다. 렛트도 입술이 없다. 나는 입술이 있다. 디라스도 입술이 있다. 입술은 속살인데 인간은 속살을 밖으로 불거지게 진화를 해왔다. 왜 그랬을까. 합리적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전달할 때 충격을 덜 받는다. 고양이는 키스를 할 수 없다. 혹시 고양이끼리 키스 하는 걸 본 사람이 있으려나. 아픈 고양이를 위해 대신 음식을 씹어 입으로 전달하는 인간적인 고양이를.
화장실에서 춤을 추며 나오는 인간을 본적은 없지만 가끔 노래를 부르며 나오는 인간을 본 적이 있다. 춤을 추지 못해 노래를 부른 거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 정도라면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