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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May 24. 2023

#20. 가임기 여성의 출산 포기 사유

대한민국 출생율은 오르지 못할거에요.

"자기야,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3.6억이 든대!"

"오, 우리는 3.6억 아꼈다! 두 명이면 7.2억 세이브네!"


 저출산 관련 기사를 읽은 우리의 최근 반응이다. 나와 남자친구는 딩크로 살기로 작정한, 결혼은 안 했어도 양가의 허락 아래 같이 산지 3년 차, 만난 지는 7년 차인 준부부(?)이다.


우리는 이미 부모님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때 남자 측 부모님의 반응은 "그래도...."였고, 여자 측 부모님의 반응은 "그래 잘 생각했어. 둘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였다. 비단 부모님뿐만이랴. 남자의 친구들을 만나면 "너무 예뻐. 너무너무 예뻐. 낳는 게 좋아."였지만, 여자의 아는 언니들은 "그냥 둘이 행복하면 둘이서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물론 아이는 너무너무 예뻐!"였다.


바로 이 대목이, 딩크를 마음먹은 첫 번째 이유다. 아무리 남녀가 비슷해졌다지만, 육아와 가사의 무게는 대부분 엄마 쪽이 무겁게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벌써부터 억울했다. 내가 집에서 옥신각신 애를 보고 있는 동안(물론 그것도 행복한 일인 것은 자명하지만) 애인은 회사생활을 하고 나름의 그만의 성장이나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갖는 게 싫었다. '같이 낳았는데 왜 나만?'라는 생각이 낳기도 전부터 들기 시작한 거다. 아이를 기르는 게 [인간 성장의 끝]이라고 하지만, 그 캐치프레이즈가 마음을 확 사로잡진 못한 모양이다.

언니들의 남편들도 늘 최선을 다한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분들이다.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애를 낳을 생각 없게 만든 두 번째 이유는, 지금의 내가 이 삶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고 매분 매초가 비관적이거나 또는 빚이 쌓였다거나 그렇겠는가. 남들만큼 적당히 받는 월급, 귀여운 우리 집 반려 동물들, 식물이 많은 따뜻한 집, 잘 나가는 차, 무려 사랑하는 애인도 곁에 있지만, 선뜻 누군가에게 "나랑 삶 바꿔봐. 진짜 너무 괜찮아. 재밌어. 살만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이를 낳으면 높은 확률로 나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 매일 2호선 출근길에 도대체 이게 사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점점 더 심해지는 미세먼지에 알레르기 약을 먹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처럼 운 좋게 좋은 애인을 만나서 위안을 얻을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사람 잘못 만날 확률이 높을까? 후자의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인생을 추천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커플의 아이는 이렇게 생길 거라고 했다.


세 번째는, '한없이 남과 비교해 대는 한국의 분위기를 나도 결국 거스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사회는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1년에 한 번씩 회사를 바꾸고 있는 나조차도, 나이 많은 회사 이사님에게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는 소리를 듣고서 "아,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드는데. 자녀를 낳으면 영락없이 남 애의 학원, 남 애의 학습지에 맞출 것 같았다.

 
중학교부터는 학원으로 성적 상위권 유지, 고등학교 때는 국영수 중심의 공부, 인서울 대학교 진학, 그 이후 인턴 및 유명 대외활동, 대기업 취업, 결혼. 애를 이렇게 키우게, 아니 이렇게 만들어 낼 것 같았다.

 

기성세대가 은근히 잘못짚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저출산의 이유가 무조건 '집'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다.

"미경(기혼, 29살)아, 너 혹시 강남에 집 준다고 하면 애 낳을래?"

"매매돼? ㅋㅋ 근데 강남에 두채 준다고 해도 생각 없어"

"어? 그래?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해. "


1억을 준대도, 2억을 준다 해도 낳을 생각이 없다. 왜냐면 비교하는 사회 풍토에서는 주택도 비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애를 낳아서 집을 준다 하면, 또 그것마저 천박하게 아파트 브랜드 뒤에 단어를 붙이겠지. (남자들은 모르겠으나, 내 주변 또래 여자들은 다 똑같이 대답한다.)


예? 저는 여기서 더 이상 뺄 시간이 없는데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없다. 지금도 강아지 산책, 출근, 운동, 글쓰기를 하면 하루가 빠듯하게 끝난다. 자녀를 낳으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건 자명한데 당장은 포기할 수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이를 낳고 싶다 한다던데... 애인이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한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뒤늦게 찾았고 이제 전념하고 싶어 하는데, 만약 자녀를 갖는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해야 하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녀야 하니까. 그도 하고 싶은게 많아서 낳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출산율은 절대 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이유만도 아니고, 사회적 이유만인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이유만도 아닌 모든게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를 낳고 싶게 만드는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좋겠다. '이런 세상 한번 살아볼 만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내 아이를 품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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