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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May 25. 2023

#21. 퇴사를 목전에 두고 우울한 사람

그동안 땅에 잔뜩 끌리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지껏 5번째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들에 대해 소상히, 그리고 자세히 썼었다. 주구장창 '하등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고, 얼마나 보람 없이 일을 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쓰여있었다.


어제, 실 근무 이후, 잔여 소진을 사용할 테니 승인해 달라는 결재를 올렸다. 실제론 6월 9일까지 출근하지만, 연차를 쓰면 6월 30일이니, 심지어 월급 한 번을 더 받을 수 있는 샘인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퇴사의 첫 시작인데, 마음이 울적했다. 도대체 왜 내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이런 휴가 신청서는 처음이야 정말로! 15일을 풀로 쓰다니!


정확하게는 패배감이었다. 본인이 원했고, 내가 내 발로 나가는 거지만, 그래도 버티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서운함이나 속상함이 몰려왔다. 자책감도 살짝 보태서. 10년간 회사에서 굳건히 버티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덧 직급을 하나씩 올려가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친구들을 보며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싶다.


자유로움이나 행복함이 아닌 패배감이 들다니, 미련 같은 건 남기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일까?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해볼만큼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동기부여 어쩌고 보람 어쩌고 하는 거 아냐?"

 "야, 너 해볼만큼 해봤어? 네가 뭐가 힘들어서, 엄살이고 그만두겠다고 해?"

머릿속에서 이런 의문들이 자꾸 맴돌았다.


그러다, 밤길을 걷다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내가 언제 대충 산 적이 있었나?"


단언컨대 없다. 고등학교 때도 중환자실에 다녀오는 수술을 겪으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생님도 혀를 내둘러었고, 대학교 때는 성적 장학금을 받는 게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녔다. 특히 과제는 항상 날밤 새며 공들여서 그런지, 졸업한 지 4년이 되어가는데도 리포트를 올려놓은 사이트에서 포인트로 치킨을 사 먹을 수 있다. 꽤나 힘들다던 간호대에서 1000시간 실습을 나가면서도 새벽 오픈 알바를 성실히 해냈다. 스스로도 자부할 수 있었다. 일은 어떤가, 그동안 모든 회사에서 2인분 몫을 해왔으며 남들보다 일을 많이 해서 서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

녹록치 않았고, 열심히 살았다.


"아닌데, 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게 되자,

그제야, '오죽 싫었으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을까'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진짜  안 맞는 옷이었구나. 땅에 끌리는 바짓가랑이를 잡아내느라 고작 한 걸음도 버거웠구나. 남들은 나한테 '노오오오력이 부족했지 않냐'는 경솔한 질문을 해도, 적어도 나는 나한테 모질 필요 없었는데, 그동안 충분히 잘해왔으니까, 스스로를 조금 더 믿어보려 한다. 더 잘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한적한 광화문을 걸으면서 부단히 살아왔던 내가 떠올랐다. 대학교 등하굣길이어서, 더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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