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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Jun 08. 2024

초원 유목제국의 이야기(B)

( 초원조건에 적응된 생활)


유목민족의 전통습관 –


초원에서는 누가 갑일까. 유목민이 절대 갑이 아니다. 가축이 갑이다. 사람들은 갑인 가축이 원하는 대로 이동해 가며 유목생활을 유지한다. 사람이 가축에게 이끌려 간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사람과 가축의 공생관계가 이루어진다. 가축이 잘 살아야 사람도 그 덕을 보는 선순환 구조이다. 유목민족의 유일한 생산수단은 목초지와 가축이다. 가축은 주로 가족들의 소유로 구분되고 목초지는 공동의 소유로 나누어진다. 현대에서도 초원은 국가의 소유로 이용권만 허용되는 이 시스템은 몽골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물자가 한정적인 유목민들에게 외부로부터 물자공급은 가장 필수적 생존 환경이다. 초기 흉노제국에서 한나라와 우호적 관계가 이루어질 때는 상호 국경시장이 열려 물자교역이 이루어졌다. 유목경제 시스템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한 러시아의 엥겔스는 유목민족을 선천적인 교역국가로 인식하였다. 초기 유목제국이 강성할 때는 중원에서 비단, 곡물, 솜 등을 교역물자로 받아들였다.


교역은 국가 간 정상적인 물자교환의 거래인데 우호적 환경 속에서만 유지되는 환경이다. 비 우호적 관계일 때 한쪽의 생존은 다른 방식으로 유지 되는데 바로 약탈경제라 할 수 있다.

약탈은 유목민족에게 작은 의미로 보면 경제활동이고 큰 의미로는 군사적 활동을 포함한다. 본질적으로 물자가 한정된 유목세계는 농경사회와 불가분으로 교역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상품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비상수단을 강구한다. 그것이 약탈이다.


교역을 중단시키는 주체는 대부분 정착제국 쪽인데 주로 정치적 이유에서 기인하고 있다. 유목제국들은 그들이 군사적으로 강성했을 때는 침공하여 약탈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이 약화되었을 어떨 때는 화친을 구하기도 했다. 약탈을 하는 것도 강온 양면성을 구가하였다. 그럼 약탈의 대상은 무엇일까. 가축과 곡물이 주가 되었고 사람도 포함되었다.


가축을 많이 보유한 유목제국이 왜 가축을 약탈했을까. 그 주된 이유는 기후조건인데 때로 가축이 집단폐사하는 가뭄과 혹한 등이 도래하면 그 부족한 개체수를 충당해야 되었다. 가축 외에 약탈 대상은 여성과 특수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치 로마 군대들이 사비나족 여성을 약탈하던 것과 유사했다.  


유목세계에서는 한정된 인력풀로 인해 그들이 필요로 하던 특수한 수공업 기술자등을 대상으로 끌고 갔다. 한나라 초기 흉노는 중원을 침공하고 포로 약 4만 명과 70만 기의 가축을 약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약탈한 가축은 왕과 귀족 지휘관들에게 분배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국가 공유재산이 되기도 했다.


약탈품의 분배는 고대 전투 시에 모든 국가에서 가장 큰 인센티브였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떤 나라의 지휘관들은 침공을 앞둔 병사들에게 이런 희망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기면 그곳에 있는 모든 값진 황금과 예쁜 여자가 모두 너희 것이다”. 유목군대 전투 지휘자들도 침공에 성공하면 며칠간 무법적 노략질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상 귀족이나 고위 장군들이 약탈품의 분배를 주관해서 병사들의 불만이 되기도 했다.


전리품은 고대 역사를 통틀어 병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하느님의 군대라 칭하던 십자군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칭기즈칸 시대에는 전리품의 분배권을 귀족으로부터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의 전투력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큰 효과를 보았다. 귀족들은 떠나갔으나 더 많은 병사들이 희망을 찾아 모여들었다.

 




사기의 흉노 전 기록에 의하면 흉노는 상시 전시국가 체계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젊은 이들과 건강한 병사들이 더 많고 좋은 고기와 식사가 배당되었다. 그리고 노인들은 남은 음식을 먹었다고 되어 있다. 젊은 병사가 대접받는 이유는 강한 국가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다. 그래야 적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인 출신의 투항한 대신이 이를 비하하는 한의 사자에게 이렀게 말했다. “우리는 전쟁을 본분으로 한다. 노약자는 전투에 동원이 안되므로 건강한 젊은이에게 좋은 음식을 주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해서 늙은 아버지를 오래도록 생존하게 하는 것인데 어찌 노인을 가볍게 여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쟁이 우선시하는 유목 관습에 적합한 생존 전술이다. 유목인들의 현실을 감안한 합당한 생활 풍습으로 보인다.


노인과 달리 부인에 대한 대접은 조금 다르다. 유목세계에서 부인들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상시 전쟁의 풍토 속에서 남성들은 전투에 참전하면 여성들은 그동안의 가정과 부족 유목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였다. 양성 평등은 유목민족 사이에서 오래 유지된 전통이었다. 그 전통은 현재의 몽골에 이어져서 여성들이 더 많이 학업을 하고 그 결과 관리나 전문직에도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고대 유목제국에서 남성들은 기질이 사납고 거칠어 아버지나 형제간에 죽고 죽이는 살상행위가 빈번히 일어나지만, 어머니에게는 단 한 번도 위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강한 질책을 해도 절대 그 권위에 도전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취하는 취수제는 북방 유목국가에서 항상 일어나는 풍습이다. 혈족의 단결과 재산의 분할을 막는 씨족유지 제도로 널리 인식되었다. 우리의 고구려와 부여에서도 같은 제도가 유지되었다.


유목민들의 주요 식량은 가축에서 나온 고기와 유제품이다. 유제품은 효모와 결합되어 응고된 형태로 된 것이 많았다. 천연 치즈가 된다. 전투식량으로 최고의 기능을 가질 수 있었다. 마유주도 가죽부대에 넣고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신맛이 나는 술이 된다. 오래되면 도수가 더 강해진 술이 된다. 이 또한 병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료가 되었다. 그들이 체재하는 곳에서 그 전승이 이루어졌다. 러시아와 핀란드 보드카, 고려 안동소주도 그 한 예이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전통 술로서 마유주는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다.


유목민들의 주거는 중앙아시아귄에서 먼저 사용된 유르트 또는 게르라 불리는 이동식 주택이다. 가장 먼저 이동성을 배려한 것으로 어떤 때는 수레를 만들고 그 위에 게르를 올리는 방식도 이용되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 때는 상부의 주거형태를 땅에 설치한다. 여러 차례 몽골에서 게르를 이용해 보았는데 짧은 시간에 건립이 가능하고 특히 겨울 혹한을 이기는 가장 효과적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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