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하던 중 몽골 사막지역에 약 2일간 큰 비가 내렸다. 군데군데 제법 큰 물 웅덩이가 생겼고 양과 소, 말 같은 가축들은 이 물에서 뛰어놀며 물을 마시고 있다. 아마 그들도 모처럼 비를 맞으며 즐거운 시절을 보냄이 틀림없으리라. 한 군데는 자동차 도로 양편에 가득 찬 물웅덩이가 도로를 침범하여 소형차는 그냥 통과가 어려운지 한편에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는 조난을 당한 자동차를 물속에서 꺼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 비는 초원의 풀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에너지로 바로 변환되나 보다. 그리고 초원은 거대한 꽃밭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눈이나 우박이 떨어진 듯 보인다. 조금 더 가면 노란 꽃 군락지도 보이고 보라색 꽃망울도 보인다. 다만 모두가 작은 꽃들 일색이다.
심지어 현지 투어 가이드도 이리 많은 고비 사막의 꽃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드물게 우호적 기후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즉 비가 제대로 와 주면 군락지의 꽃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만개를 한다. 우호적 환경은 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몇 년째 안 올 수도 있다. 비가 안 오면 사막의 꽃은 볼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지역을 이야기하면 돈드고비 지역과 툽 아이막(우리식으로 하면 도와 같은 행정지역)을 가면서 한없이 펼쳐진 꽃의 군락을 보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아침결 조금 흐린 날이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여 무슨 첫눈처럼 보이기도 했고 가을날 아침에 낀 서리처럼 보였다. 이 지역의 초원에서 나는 꽃들은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많은 색깔의 꽃은 백색이다. 노란 꽃과 보라색상의 꽃이 다음이다. 약 3 가지 정도로 다양하지는 않다. 그 꽃들은 같은 지역을 함께 나누어서 군락을 이루는 경우는 별로 없다. 몇 시간을 지나다 보면 그때는 또 다른 색상의 꽃들이 보인다.
지역에 따라 지배종 꽃이 만발하다. 다른 지역에는 또 다른 꽃 군락이 나누어진다. 차를 타고 가며 차창으로만 보기에는 도저히 만족이 안된다. 이곳을 어찌 그냥 통과를 할 수가 있나. 너무나 강한 충동이 발현했다. 한 없이 이어지는 꽃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운전기사에게 말하니 꽃이 좀 촘촘하게 핀 군락에 차를 멈추어 준다. 일행 모두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꽃 사진을 찍고 아예 들어 누워서 시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나이는 벌써 저 멀리 잊은 듯하다. 한창 꽃밭에서 이런 꽃보기를 한 후에 출발을 했다.
잠시 후에 다른 여행자 모두도 우리와 똑같이 꽃 군락을 그냥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다. 다양한 색상의 판초 의상을 입고 달리며 하늘로 점프 하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야, 얘네들, 진짜 제대로 하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 장관은 도로가 아닌 초원 구릉에서만 제대로 된 군락을 이룬다. 포장이 된 자동차 길에 진입하면 벌써 듬성 듬성해진다. 유혹 수준의 재미가 한참 떨어진다. 그런데 초원에 생기는 꽃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사막의 꽃들은 제대로 된 우기가 되어야 피고 그 기간은 무척 짧다.
아쉽게도 이내 가을이 온다. 그리고 살을 에는 무서운 추위가 닥쳐온다. 겨울은 동물은 물론이고 풀들에게도 가장 긴 고통의 시간이다. 생존을 위한 뿌리내리기에 열심히 하여 다음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단, 풀은 다시 자라나지만 꽃이 필지는 장담을 못한다. 이 풀은 우리 한국처럼 철마다 항상 피는 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 더 그들을 더 많이 바라볼 것인데 아쉽게 지나가 버렸다.
몇 주 전 신문기사에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도 꽃이 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막 중에서도 강수량이 워낙 적은 아타카마 사막은 이상 기후 덕분에 다른 해와는 달리 몇 차례의 강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여파로 꽃을 보기 힘들었던 사막이 꽃의 군락으로 변했다고 했다. 고비사막 지역에 있는 초원도 쏟아진 비의 영향을 같이 느낀 것이다. 고비사막 지역에 서식하는 풀의 높이는 기껏해야 10cm이고 조금 큰 것이 20-30cm 정도이니 얼마나 큰 꽃이 되겠는가.
또 다른 놀라움은 더 있다. 그들이 발하는 내음이다. 그들 모두가 꽃망울을 터트리니 꽃 내음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순수성이 있다. 주변 어디에도 인공의 향취나 산업화의 흔적도 없는 곳이라 모든 내음은 오직 작은 꽃에서 발하는 향이다. 함께 간 친구는 이것이 좋은 향수가 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허브향을 만들면 좋겠다고도 한다.
나이가 든 운전기사는 풀을 뜯어서 우리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분명 그 냄새는 중간중간에 차에 내려서 맡게 되는 그 초원 향취의 근원이다. 무슨 알 수 없는 풍겨오는 냄새의 진원이 바로 그 놈이다. 그는 큰 봉지에다 초원의 풀을 제법 많이 뽑아 모았다. 그리고 음식을 할 때 넣기도 한 단다. 하기야, 짐승이 수천 년간 먹는 증명된 양식이니 사람도 먹어도 아무 일 없으리라 여겨졌다.
몽골 사막을 지난해도 보았다. 그때는 초원의 풀만 한 없이 보고 왔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마치 꽃들이 프랑스 혁명기의 역동성이 분출하는 에너지를 보는 듯하다. 만개하는 꽃의 흔적을 보며 혁명기에 사람들이 작당하여 벌리는 분출 에너지 같이 전혀 다른 느낌을 본다. 자연이 벌리는 에너지는 인간이 벌리는 에너지 크기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장관에 압도하는 차이이다.
마지막으로 몽골에는 셀 수없이 많은 것들의 무리가 있다.
첫째, 밤에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보는 은하수가 무언지 알게 되었다. 오직 전 세계에서 불과 몇 군데만 있는 장관이다. 자연의 경이에 압도되는 것들이다.
둘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에 핀 풀과 꽃이 얼마나 되는지 상상이 안 간다. 조에 조를 곱한 숫자이든지, 경에 경을 곱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경의 팩토리얼(n까지의 차례곱)쯤 될까.
셋째, 초원 위에 비포장으로 이루어진 자동차 길의 숫자이다. 정해진 길이 없다. 가는 것이 바로 자동차 길이 된다. 오프로드가 그리 무식할 정도로 위험 치는 않는 구간이다. 초원에서는 베테랑 운전자도 때로 길을 잃는다. 몽골은 GPS 가 작동되지 않는 지역이다. 사방이 끝없는 지평선으로 되어있다. 그들도 방위를 제대로 못 찾는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도무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단초를 찾을 때까지 또는 다른 도로의 흔적을 찾을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한번 길이 잘못되면 미지의 초원을 30분에서 1시간 헤매야 한다. 그래서 과거서부터 몽골에서는 언제 도달하는지를 절대 묻지 않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