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May 02. 2024

팀장님은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신입사원이 내게 말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생활 속. 여느 때나 다름없이 우리 팀의 신임 팀장은 어미새처럼 일을 물어다 팀원들의 입 속으로 하나씩 넣어주고 있었다. 일을 하나씩 소화하고 있던 팀원들은 아직 기존 일들이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입 속으로 일을 넣어주는 팀장으로 인해 배가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팀원들은 이제 더 이상 안 먹어도 된다고, 배가 부르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들끼리 볼멘소리나 할 뿐이고, 팀장 뒤에서 불만만 토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3년 차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가정이 있는 나에게는 고과권자인 팀장이 준 일을 군말 없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름대로 다닌 회사생활 노하우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여 급한 대로 처리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팀장의 사정을 그런대로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경력직으로 나보다 1년 정도 늦게 이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회사가 계획하는 방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잘 갖춰놓고 있었다. 게다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이라 번번이 윗사람의 눈에 들었다. 그러다가 파격적인 인사로 인해 본인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들을 다 제치고 새롭게 생긴 팀의 신임 팀장이 된 것이다. 43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된 그는 앞 날이 창창했다. 새로운 팀은 회사의 방향과 전략에 따라 신설된 팀이므로 실적과 성과를 매번 보여줘야만 했다. 회사의 기대와 팀장의 의욕이 더해져 새로운 팀의 업무는 나날이 번창해 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팀의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경제 상황과 회사 사정으로 인해 채용이 동결되어 버린 것이다. 그 말인즉슨 기존 팀원들이 본인 업무에 더해 계속 새롭게 들어오는 업무를 할당받아 처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신입으로 들어온 97년생 후배 사원은 내 밑에서 일을 배운 지 1년이 가까워졌다. 이젠 어느 정도 회사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고, 업무도 슬슬 적응되어 가고 있을 테다. 그런 그가 어느새 업무에 차 치이고 있는 날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팀장은 그런 그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선한 업무를 물어다 그에게 던져 주고자 했다.


"이번 신규 국책과제는 우리 신입이 해볼까?"


그 말을 듣고 그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결심한 듯 팀장을 보며 말했다.


"아,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팀장은 잠시 그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해했지만, 이내 조용해진 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이따가 다시 논의해 보자고."


팀장에게 한 방 먹인 신입을 보며 다른 팀원들은 통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당당함에 놀란 눈치였다.



  며칠 후 신입과 함께 일하고 있던 중에 신입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 표정을 하며 내게 물었다.


"팀장님 말이에요... 왜 그렇게까지 일하는 거예요?"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어떤 심정인지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요새 일이 많아서 힘들지?"

"일도 일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요. 어차피 받는 돈은 똑같을 텐데... 직장인이라면 일은 최대한 적게 하고 싶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사업도 아닌데 말이죠."


신입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팀장의 사정을 조금 더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지. 근데 팀장 입장에서 보면 말이야... 최근에 새롭게 신설된 팀에 젊은 신임 팀장이 되었단 말이지. 당연히 실적 빵빵하게 내서 임원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겠어? 하나만 올라가면 되는데? 게다가 나이도 젊고 능력도 인정받고 있는데 말이야. 팀장은 지금 물 들어올 때 빠르게 노를 젓고 싶은 거야."


신입은 내 말을 듣고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며, 대화를 매듭지었다.



  회사가 채용이 동결된 상황에서 업무량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조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젠가 팀장에게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팀장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팀원들 모두의 능력도 그렇게 똑같이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업무 역량은 차이가 있고, 개별적으로 수준에 맞게 업무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팀장의 서포트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팀장이 의욕이 넘친다고 모든 팀원이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다 나가떨어지는 인원이 발생하면, 오히려 조직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회사가 채용 문을 활짝 열 때에 맞춰 업무를 확대해 인원을 확보하며 조직을 키우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만,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팀장의 브레이크를 누가 대신 밟아줄 수 있을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9년 동안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가 이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