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Jul 19. 2024

나의 불안에 대하여

인사이드아웃 2를 보고...

  무더운 토요일.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9시까지 여름성경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서다. 5살이 되고나서부터 혼자서 많은 걸 할 줄 알게 된 아이는 오늘이 기대된다는 듯 부모가 깨우지 않고도 벌떡 일어났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선 아내와 나는 아이와 함께 교회에 갈 준비를 빠르게 마쳤다. 교회는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늦지 않고 9시에 맞춰 딱 도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아이들 행사가 많았는데, 점심 먹고 끝나는 시간이 1시 반이었다. 부모에게는 4시간 반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긴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전부터 이 자유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를 성경학교 선생님께 맡기고 우린 빠르게 차를 타고 영화관으로 이동했다. 아이가 있을 때 하기 힘든 일들을 하기로 마음먹은 우리는 결국 영화를 보고 회전초밥집을 간 뒤 코인노래방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 첫 번째 스케줄이 바로 최근 개봉한 <인사이드아웃 2>를 보는 것이다. 아내와 영화관에서 영화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아득했다. 아이가 어릴 때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교대로 한 명씩 보고 왔던 기억이 있는데, 둘이 함께 본 마지막 영화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아웃 1>은 연애 초기에 함께 본 기억이 있다. 9년 만에 개봉한 2탄은 우리 부부가 만나온 세월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팝콘을 샀다. 오랜만에 영화관에 오니 달콤한 캐러멜 팝콘이 먹고 싶어졌다. 살찔까 봐 가장 작은 사이즈로 구매해서 아내와 나눠 먹기로 했다. 팝콘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광고를 보며 다 먹어주는 것이 국룰이다. 왜냐하면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했다. 영화관에 오니 광고마저 재미있어 집중하느라 하마터면 팝콘을 다 못 먹을 뻔 하긴 했다. 겨우 다 먹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이번 <인사이드아웃 2>에서는 1편과는 다르게 못 보던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를 겪게 되면서 오는 불안, 당황, 따분함, 부러움과 같은 감정들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으로 다루는 감정은 불안인데, 주인공은 불안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과정을 겪는다. 사춘기를 이미 겪은 어른들은 충분히 공감했을 내용이다. 심지어 아내는 옆에서 울고 있었는데, 어떤 감정인지 어림짐작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아내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고, 나 또한 울컥하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디즈니 만화답게 결국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어른들에겐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특히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겐 더욱 그러했으리라. 극심한 사회 경쟁 시스템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불안이 높다. 사춘기 때만 높은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회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좁다. 학생 땐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취업은 대기업, 집은 강남, 취미는 골프다. 모두들 똑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자들을 밟고 올라가고 있다. 올라가는 길에 발목이 잡힐까 불안하고, 나도 뒤쳐질까 불안하다.


  38살의 어른인 나의 불안도 살펴볼까. 우선 회사에서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을까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나이 먹고 회사에서 나오면 동등한 업계로 재취업이 힘들고,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식으로 정년을 늘려 나가야만 한다. 아니면 사업이나 장사를 해야 하는데, 자영업 폐업률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 또한 어렵다. 국민연금도 믿을 수 없고 노인 빈곤율이 최악인 상황에서 과연 내 노후는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사회 시스템이 할 수 없다면, 스스로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 그럼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돈을 모아야만 하지만, 자식에게 대부분의 돈이 들어간다. 아직 5살이큰돈은 안 들어가지만, 나 또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사교육 몇 가지를 당연하게 고민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시스템에서 배우는 과정만을 믿고 맡기는 경우가 없다. 아이가 내 삶을 대물림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실한 교육과 노후 보장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불안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영화 속 '불안이'가 여러 가지 상황을 예상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에 크게 공감을 하는 이유다.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마음 놓고 살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었으리라.


  재밌는 건 라일리의 엄마는 '슬픔이'가 메인 컨트롤러고 라일리의 아빠는 '버럭이'가 메인 컨트롤러다. 영화 속에서는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 중산층 부모에게 '불안이'는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잊힌 친구 같은 존재일 뿐이다. 미국 엄마는 아이들과의 공감과 아이로 인한 희생으로 인해 슬픔의 감정이 높고, 미국 아빠는 여러 환경 속에서 가정을 지켜야 하므로 화가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부모는 어떨까. 아마도 슬픔이나 버럭보다는 불안이 메인 컨트롤러가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불안이'를 쉽게 보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 속 교훈처럼 걱정은 조금 더 내려놓고 현재를 조금 더 즐기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의 불안이 무엇이고, 개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영화를 보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초밥을 몇 접시 흡입 한 나는 그래도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