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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Jun 18. 2024

우울의 시대 교사로 사는 법


점심은 먹었니?

……

지금 가장 힘든 일이 뭐니? 

……

혹시 내가 도와줄 일 있을까?

……

아이와 대화를 이어보려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걸어보지만 아이는 아무런 반응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학기 초 정서 행동 검사를 통해 나타난 관심군 학생에 대한 상담은 해당 학생도 힘들지만 담임교사도 힘겹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답답함이 밀려온다. 심리 상담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의 심리 불안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기에 대부분 상담 교사에 의뢰하거나 외부 상담 전문가와 연결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아이를 만나면 강제로 연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뾰족한 다른 해결책도 없기에 마음이 무겁다. 

 학기 초 정서 행동 심리 검사 후 관심 학생 대상자가 발생하면 담임은 문제 상황 매뉴얼 대로 상담 일지를 작성하고 상황에 대한 기록도 남겨야 한다. 하지만 담임교사로서 힘들어지는 것은 이런 실무적 업무 때문이 아니라 힘들어하는 한 아이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지 얻어야 한 해 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에 대한 접근 방법을 알고자 상담 교사에게 조언도 구해보고 심리 상담과 관련된 책도 찾아보고 이전에 다른 아이에게 효과를 보았던 방법도 적용해 본다. 

 하지만 학생 한 명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기에 한 명에게 통한 접근이 다른 한 명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십수 년간 키워온 우리 집 아이와의 대화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길 기대하는 것이 너무 무리한 기대다. 그러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고심 끝에 준비한 비장의 카드(동화책을 이용한 대화)를 써 보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심리 치료가 필요한 학생 상황을 다루고 있는 다양한 동화책 중 아이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는 내용이 담긴 동화를 이용해 화제를 돌려 보려는 시도였다. 짧은 그림동화를 읽은 후,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의 상황을 통해서 말문을 열고, 동화 속 주인공과 자기 상황을 비교 혹은 대조해 가면서 자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과거에 만난 아이들에게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유도해 낸 나름의 비법이었던 만큼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마저도 읽기를 거부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본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어떤 시도도 하고 싶지 않고 교사의 접근을 조금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냥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눈치다. 이럴 때 솔직히 아무 대책도 없다. 그래서 일단 상담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아이에게 너를 걱정하고 있으며 네 편이 되어주려는 마음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결국 아이가 떠나간 자리에 무거운 마음의 짐 하나가 덩그렇게 놓이고 만다. 교사로서의 무력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것도 욕심이 앞선 결과라 생각해 본다. 

떠나간 아이의 마음속에서 수년간 쌓여온 마음의 응어리를 나와의 만남 몇 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작부터 어리석은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한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내 마음의 한 자리를 더 넓게 준비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이 일도 쉽지 않다. 어쩌면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교사인 나의 마음가짐을 돌보는 일일 수 있다. 우울이 전염된다는 말이 사실로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한 반에도 여럿이다. 세 명 이상의 아이들과 이런 식의 상담을 하고 나면 무거운 마음의 짐이 늪이 되어 발목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 고민을 어디 다른 곳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고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 답답한 현실이다. 더구나 마음의 어려움을 자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아이들을 목격하는 일도 빈번하기에 혹시나 더 큰 문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감에 고민의 깊이가 깊어진다. 

모르는 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많은 교사가 그렇겠지만 이런 시도를 안 해보는 것이 아니다. 대개 문제 해결의 첫출발은 아이 문제를 부모와 연계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문제 많은 아이의 뒤에는 더 크게 존재하는 부모의 벽이 있기에 그 또한 쉽지도 않다. 그나마 연락이 되고 상황을 들어주는 협조적 부모를 만나면 다행이다. 서로 걱정하는 감정의 공유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가 가정이나 본인에게 있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님의 반응을 접할 때는 대화를 이어가는 일도 벅차다. 아니 아이의 부적응 탓을 교사나 학교의 다른 친구에게 돌리려 하는 반응 앞에서는 혹 떼러 갔다가 더 큰 혹을 붙이고 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러기에 다른 누구를 의지하는 것보다 지금 겪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 앞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마음의 안식처를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울감에서 벗어날 나름의 대책인 것이다. 그 피난처가 때로는 좋은 음악일 수 있다. 어떤 날은 맛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힘겹게 느껴지는 기분을 다른 곳으로 향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 치유할 수 있는 비책도 마련한다. 누구는 회피라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내린 나만의 처방 약이다. 그 약은 바로 나 스스로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가진 습관도 잘 안 고쳐지는데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한순간에 돌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단지 힘든 아이가 자기 불안의 늪에서 언제가 손을 내밀 때 힘껏 잡아끌어 올려 줄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히 관찰하는 태도만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울의 시대에 교사로 사는 법이 아닐까? 더 좋은 해결책이 있다면 나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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