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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Dec 29. 2022

마지막 눈 한 잎 떨어지는 찰나가
겨울의 끝이다

필링 인 터키 - 카르스

겨울만 되면 유독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터키 북동쪽, 흑해와 인접해 있으며 카프카스 생활권에 있는 도시,

카르스.

비단 겨울 뿐이던가.

다른 여행지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 특별한 인연이 이어진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스의 겨울은 나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기억의 파편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며, 신화로 재생산되는 도시가 되어 간다.


내가 사는 이곳은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았다.

작년에는 12월도 되지 않아 펑펑 내리던 눈이 올해는 씨가 말랐나 보다.

카르스의 사진을 다시 보다가 블로그에 담겨 있던 짧은 글이 있어 옮겨 본다.

겨울이 떠나는 시간이 되니 아쉽다.

늘 이런 식이다. 떠나는 것에 아쉬워하고 또다시 기다리고.

겨울을 보내기가 못내 서러운지 3월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의 도시 카르스(Kars)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터키어로 카르(Kar)는 눈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카르스는 Kars로 표기가 된다.

마치 눈의 복수형처럼 보이는 카르스는 터키에 처음으로 눈 소식을 전해주고

마지막까지 눈의 흔적을 남기는 도시다.


물론 터키어의 복수가 s로 끝나지 않기에 카르스가 카르의 복수형이란 말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우연처럼 카르스는 눈의 도시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처음 카르스를 본 것은 터키 여행 중 텔레비전에서였다. 

좀 추운 늦가을 날씨였는데 카르스는 눈의 폭탄을 맞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어른들은 차 유리의 눈을 쓸어내리는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그때서야 터키에도 눈이 내리는지 알았다.

그 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카르스를 배경으로 ‘눈’(2002년)이란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참 절묘한 지리적 배경을 아닐 수 없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민족주의 문제를 거론하기에 카르스만한 도시가 또 있을까.

카프카스 문화권이면서 러시아 건물에서 생활하고, 

그 속에 무슬림의 신앙을 바탕으로 쿠르드족의 삶을 사는 이들이 생존의 땅이 카르스였기 때문이다. 

   

논 같은 곳에 물을 채워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지하 창고가 있는 곳곳엔

겨우내 먹을 감자를 저장해 놓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특히 썰매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었다. 널빤지 몇 장을 붙여서 두꺼운 철사로 만든 썰매의 모습은 

내가 타고 놀았던 그 썰매였다.

한번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녀석의 눈빛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썰매를 양보할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야 말았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맛이 느껴질 때와, 

생경한 풍경 속에서 낯익은 추억이 떠오를 때 그 도시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카르스는 그런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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