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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Mar 07. 2023

아비들이 떠나는 시간

필링 인 터키

아비의 주름진 손을 본 적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본 아비의 손은 가늘어지고 늘어져 있었다.

붓을 들고 글을 쓰고 계시던 그의 손은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손이 아니었다.


굽어지고 좁아진 그의 어깨는 세상을 다 가졌을 법한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의 담배 냄새처럼 왜소해진 몸짓에 고개를 돌린 적이 있었다. 


세상의 아비들이 한 분씩 이 시간을 떠났다.

누군가의 아비였을, 혹 우리의 아비였을 그들이 세상의 시간을 떠났다.

늘 내 옆에 계실 것만 같았던, 

그들이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훌쩍 사라졌다. 

불현듯 찾아오는 아비들의 죽음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내 지친 어깨에 팔을 얹고, 힘껏 안아 줄 것만 같았던 존재가,

퇴근하면서 한 손에 상큼한 귤 한 봉지를 사 올 것 같았던 존재가,

세상을 떠나는 시간이 유쾌하지 않다. 


페미니스트 누군가가 아비 없는 세상을 굳이 구별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굳이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비들이 세상을 떠났기기 때문에 슬프기 때문이다. 

요즘의 시대를 아비 없는 시대라는 말을 한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아이들이 보는 것도 망각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저씨.

자신의 아이를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아저씨.

딸과 같은 아이를 안고 으슥한 모텔 골목을 들어서는 아저씨.


아비가 아비의 자리를 버린 시대는 우울하다. 

불쾌하다.


언제나 듬직하게 우리의 등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꾸짖을 것만 같았던

아비들이 세상의 시간을 떠났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그나마 눈물 나게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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