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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테시아 Mar 31. 2023

푸르름의 흔적 - 이즈닉

필링 인 터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정치적인 이유로 마침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한다.

그 후 325년 니케아 공회를 통해 하나의 교리를 가지는 그리스도교를 만들기에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침례를 받지 못한 황제를 통해 기독교의 교리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니케아란 지명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와도 다름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고,

보통 사람에겐 신비한 도시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놓고 있다. 

    

시간이 흐른 듯 오스만투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고는 ‘이즈닉’이란 이름으로 바뀐다. 

언뜻 들어봤을 법한 이즈닉이란 지명이 그 옛날의 니케아다.

이름이 바뀐 도시 이즈닉은 종교의 도시에서 타일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가장 화려한 날을 맞이한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이즈닉 타일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스탄불 블루모스크에 붙어 있는 푸른빛의 타일이 이즈닉 타일이며,

지금도 유럽의 여러 궁전은 이즈닉 타일로 입혀져 있다. 

    

두 번의 화려한 시간을 보냈던 고대의 도시 니케아, 이즈닉.

타일의 푸르른 역사를 찾아간 도시는 한 마디로 흔적의 도시로 변해 있었다.

이스탄불과 불과 3시간가량 떨어진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20시간 떨어진 동부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느낌.


도시 전체가 마치 푸른 이즈닉 타일로 장식되었을 것 같은 몽환적 환상이 깨지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푸른빛 대신에 고대 도시 특유의 갈색 먼지가 여행자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무너진 성터와 이즈닉 타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은 마치 재래시장과 

대형상점이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여행자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되돌아갈 마음을 먹고 점심을 먹었다. 

이즈닉과는 이 정도의 인연으로 끝내야 할 것 같아서.

흔적, 흔적, 흔적.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 

흔적.


상상 속의 푸른빛 도시 이즈닉은 그렇게 나에게 흔적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이란 어쩌면 흔적을 찾아 떠나는 걸음걸이가 아닌가. 

누군가의 흔적이 될 수도, 무엇의 흔적이 될 수도 있는.

그 흔적들 속에서 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생각의 끝에 이르자 떠남을 잠시 뒤로 미루게 됐다.     

그리고 식당을 나와 보니 이즈닉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푸른빛의 하늘이며 푸른빛의 이즈닉 호수며 푸른빛 초등학생 교복이며, 

이즈닉은 온통 푸르름 속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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