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장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포 Feb 02. 2023

전입기록

나는, 오규헌

시골쥐


시골쥐가 물었다

“그래도 서울이 살기 좋겠쥐?”

 

 

300/28

학교  근처  골목

들어가면  늘  해장하는  곳과  덮밥집  횟집있고

그대로  쭉가면  술집과  술집

그  맞은  편에도  술,  술,  술 온통

술,   을 지나쳐  골목  어귀  오르막길  오르면

다닥다닥붙어살고있는한칸짜리방들 

위태로운 아스팔트를 만원짜리 신발로

한참을, 아직도 한참을

헉,헉,헉,헉,헉,헉,헉,헉,헉

헉,헉,헉,헉,헉,헉,헉,헉,헉

헉,헉,헉………

운세

사주를 본다는 철학관이 보일때까지


헉,헉,헉,휴. 

한번 더

구비를 오르면 삼백에

이십팔

싸고,높고,넓고,좋은 방

살아보기는

참, 살기에는

힘겨운 곳이

 

2호선 수필


나는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을 바다 동물에 대입해 봤다.

그건 꽤 재미있는 사색이었다.

이번 역은 을지로 3가, 을지로 3가 역입니다.

유러피안 문어 커플과 망둥어 아주머니가 내리고

나간 자리에는

소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둥그런, 네모난 모양의 까만 창을

바라보며,

지하철은 사람이 가득 찬 수조일지도 몰라.

어디론가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갇혀서 돌고 있는 걸지도.


이번 역은 신촌, 신촌역입니다.

사람 떼에 휘말려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그제서야

한숨을 쉬어 보려

하지만

꾹 닫혀서 열리지 않는 아가미.

 

300/38


아침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게 차라리 다행인데 고장난 채로 움직이고 있다.

저 위에 1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내가 사는 7층에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고 내려간다

그럼 또 다시 올라오는 이번에는 문을 열어주느냐

어김없이 7층을 지나쳐 저 위에 18층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내려올 때는 고대하던 문이 열리긴 해도

엘리베이터가 인문학부건물 1층까지 가는 게 아니라서

나는 거기서 발을 구르고 있다

마치 좁은 곳에 갇혀있었다가 금방 풀려난 사람처럼 좁은 곳에서 발을 구르고 있어야만 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고장나서 내려오지 않으면 차라리 그만인데 내려와서 문을 열어놓고 가만히 서 있다.

지치고 성난 손가락으로 를 갈기면 굼뜨게 닫혔다가

층계를 눌러놓고 잠깐 숨 참는 그 사이에 문이 늘어지게 열린다.

몇번씩이나 1층에서 타서 1층에서 내리다가 갑갑해서

발을 구르며 나와 생각을 한다.

아침에는 갑갑했던 7층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갑갑한 7층으로 갑갑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니 갑갑해 뒤지겠구나. 대체 뭐가 갑갑한거지. 엘리베이터가 갑갑한건지 그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이 갑갑한건지, 나와 내 생활이 문제라서 갑갑한건지 저기 위에 7층이 갑갑한건지 그중에서도 내가 사는 좁고 음습한 방이 갑갑한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놓고 보니 갑갑갑갑갑갑갑갑갑갑한것인가보다다.


집에는 들어가 자야겠으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7층으로 올라가 있었다. 갑갑하다.

 

지압


인터넷 지도에 학교명을 검색해 둘러본다 

자주 가던 술집을 검색해보고

영영 없어져서 안타까워한다 

또 한 곳은 이름도 위치도 달라졌지만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익숙해질 리 없는 이름을 곱씹어본다.

매일같이 지나갔던 길목은 다 지워져있었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라고 한다

익숙한 이름을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발 밑으로 욱신하게 느껴지는 생소한 길의 지압은

지압인지 아니면 지압인지.


안전제일


일층 차고에는 안전제일이 있다

자동차 꽁무니와 콘크리트

뒤에 핀 여름풀 사이에서

둘 중에 어느 안전이 제일인지를 고민하고 서 있다



500/50,여름,제습기

 

에어컨을 틀면 비행기 엔진 소리가 났다

숨이 막혀서 틀 수가 있어야지

7~8월의 장마전선이 여기 방 안에까지 걸쳤다

창문은 닫혔어도 환기는 되는 것이 온난화가 진행되는 세상의 원리인가보다

고온다습하기도 해라 

습기와 땀방울이 형성한 여섯평 방 안의 기후는 정말 열대같았다

처음엔 온몸이 녹초가 된 느낌

그 다음은 세상이 변한 것 같은 공포

그리곤 차라리 겨울이 낫다거나 전에 살던 곳이 좋았다는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없는 생각들


제습기를 구매했다

방을 차지하던 열대같던 기후와 장마전선이 안녕히- 가셨다

그제서야 세상이 제자리를 찾은 듯 싶었다


장마는 일주일 뒤에 끝이 났다



서울쥐


그래서 서울쥐가 대답했다.

“그런가?”

매거진의 이전글 나와 너가 만날 수 있는 곳, 그 어디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